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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복음, 조선 천주교의 순교 열정, 21세기의 한국천주교회[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9] "한국천주교회사", 5권,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2018년 여름의 위대한 더위가 사그라질 무렵 시작된 9월은 복음을 따라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순교자 성월로 지켜졌다. 특히 9월 20일은 1984년 성인품에 오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대축일이었다.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조선 천주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성지들이 조성되었고, 서울에는 절두산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에 이어, 서소문 형장에 조성된 서소문 순교성지가 국제 순례지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의 달을 맞아 그 발자취를 기념하는 다양한 국제 행사들이 열고 순교자들의 후손으로서 그 명분을 세웠다. 

특별히 10-15일(월-토)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 승인 국제순례지로 지정되는 것을 기념하는 ‘한국순례주간’ 행사가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주관으로 실시되었다. 11일(화)에는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서 도보순례를 진행하였고, 12일(수)에는 대전교구에서 성지 순례를 하였다. 13일(목)에는 ‘아시아의 문화적 전통과 그리스도 신앙’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 이어 아시아 주교단의 공동 집전으로 기념미사를 드렸다. 그 마감은 14일(금) 아침에 서울 서소문역사공원 순교성지를 교황청 승인 순례지로 선포하는 예식과 감사 미사를 드렸다.

김수환 추기경 서임 상본. ⓒ최우혁

절두산 한국순교자박물관: 기증 특별전(50+1 Recollect) / 2018.9.1-12.30 예정

2017년 개관 50주년에 이어 기증자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전시 중이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물려받은 귀중한 유산들: 십자고상, 성경그림 예수 이야기 등, 김수환 추기경 서임 상본, 2. 함께 살아온 교회의 역사: 기도서, 서품 기념상본, 노기남 대주교 강론노트, 3. 예술가의 기도: 신앙과 연결된 내용의 작품이 있고, 특별작품으로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친필서신이 전시 중이다.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성당: 현양대회: 2018.9.2–30

“순교는 사랑의 실천입니다”라는 표제어를 정하고 순교자 현양 국악미사, 특강, 음악제, 순교복자수도회 주관으로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새남터는 새와 나무가 무성해서 “억새와 나무가 무성한 곳”, 그래서 새나무터, 새남터가 되었다. 박해시대의 14명의 성직자 순교자들 중에서 주문모, 김대건, 모방, 샤스탕 신부님, 베르뇌, 앵베르 주교 등 11명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서소문 성지: 올해의 특별 행사는 9월 14일에 서소문 형장, 그 자리에서 천주교 서울순례길 교황청승인 국제순례지 선포식이 열린 것이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보편 교회의 순례지로 선포되어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으로 순례자들을 맞아들이는 장소가 된 것이다. 서소문 형장의 그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 가면, 1416년, 태종 16년 예조에서 "사람은 사(社, 지신 사당)에서 죽인다"고 한 "서경" 기록을 토대로 "사는 (궁궐에서 볼 때) 오른편에 있으니 서소문 밖 성 밑 10리인 양천 지방, 옛 공암 북쪽으로 다시 장소를 정하소서"라고 하니, 조정에서 이를 그대로 따랐다. 이때부터 서소문 밖 형장은 서울의 대표적 형장으로 떠올랐다.

9월 14일 서소문 형장이었던 자리에서 천주교 서울순례길 교황청승인 국제순례지 선포식이 열렸다. ⓒ최우혁

따라서 서소문 형장이 조선 초기에 자리를 잡고 국사범들을 처형한 자리였음을 기억할 때, 왜 천주교 신자들이 국사범으로 처형되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왜 순교라고 불리는 고난과 죽음의 저항이 지속되었는가?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이 그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동학군 김개남 장군의 머리도 서소문 밖에 사흘 동안 달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팔도의 죄인들이 형을 당했던 그곳 옆길에서는 천주교국제순례지 선포식에 항의하는 천도교인들의 시위가 행사 내내 지속되었다.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 연구소장(루카)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에는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형이 22회, 능지처사형이 35회나 이뤄졌다. 신유박해 이승훈을 시작으로 60여 년에 걸쳐 대부분 박해시기 지도층인 84명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이 가운데 44명이 시성되었다. 이미 시성된 순교자들은 주로 기해박해(41명)와 병인박해(3명) 시기 순교자들로, 대부분 죽기까지 신앙을 고수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또 박해시기 교회사에서 지도층으로 활동한 경우가 많다. 천주교인들은 주로 참형에 처해졌고, 특별한 경우엔 능지처사형을 받았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혹형 중 혹형을 받으며 순교자들은 '기쁘게'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 옆길에서 천주교국제순례지 선포식에 항의하는 천도교인들의 시위가 행사 내내 지속되었다. ⓒ최우혁

순교자 성월 기도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 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 주소서.”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는 순교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위한 은혜인가? 순교를 면하게 해 달라는 은혜인가? 순교자의 후손인 것이 자랑스러우면, 순교를 하게 된 이유와 그토록 박해를 받으면서 지켰던 그 신앙의 내용을 아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 책이 조선 천주교회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1. 파리외방전교회의 달레 신부가 1874년에 쓴 프랑스어 "한국천주교사"(원명:Histoire de l’Eglise de Coree)가 첫번째 교회사다. 교회사가인 최석우 신부가 한국 측 사료를 더하고 주석을 달아, 1979년 분도출판사에서 상, 중, 하 3권으로 분책되어 역주본으로 간행되었다.

"한국천주교회사" 5권,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표지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2. "한국천주교회사", 5권(한국교회사연구소, 2009–2014)는 가톨릭교회의 아시아 선교에서 시작하여 조선교회의 창립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천주교회의 흐름을 담는 통사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알고 가톨릭 신앙의 성격과 시대별 흐름을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할 자료다. 교회사의 관점보다는 한국사의 관점에서 신앙선조들의 발자취과 그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여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었다.

1권(2009년)은 가톨릭교회의 아시아선교와 세계복음화에 관한 관점을 담는 동시에 동아시아 삼국과 복음의 만남이 시작된 시점에 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나아가 조선 후기에 서학으로 소개된 천주교회의 신앙내용이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된 과정과 조선 천주교회의 시작과 사회적 갈등으로 시작된 박해의 기원을 설명한다.

2권(2010년 2월)은 시련의 시대로 알려진 1800년대 초반의 신유박해(1801)와 황사영 백서사건, 정해박해(1827), 기해박해(1839) 직전까지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순교하는 상황에서 교우촌이 전국에 확산되면서 오히려 신앙의 전파가 이루어졌으며, 조선대목구가 설정(1831)되어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선교사로 입국하여 활동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3권(2010년 4월)은 기해박해(1839년) 무렵 조선의 정치적 변동과 '척사윤음', 조선인 사제 김대건과 최양업의 활동과 병오박해(1846)에서 김대건 신부의 순교, 흥선대원군의 등장과 병인양요와 박해(1866), 신미양요(1871)에 이어지는 일련의 외세의 침입과 전쟁은 가톨릭신자들의 순교를 가속화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

4권(2011년)은 병인박해 이후에서 1910년까지 천주교회가 비교적 종교의 자유를 누리던 시기를 다룬다. 사회적 갈등을 마무리하기 위한 대 사회활동들과 교회제도의 정비, 교회교육과 출판, 복지활동, 교회건축의 양상을 다룬다. 구체적으로 조선과 프랑스 사이의 조약을 통해서 프랑스 사제들과 한국교회, 개신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에서 천주교의 입장 등을 다룬다.

5권(2014년)은 일제강점 시기인 191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교회의 전반적인 상황, 천주교의 민족운동, 조선 대목구의 분할과 조선 자치교구의 설립, 수도회의 정착과 활동, 전시 체제하의 천주교에 관해 역사적 흐름을 따라 기록하고 있다.

현대 부분은 과제로 남겨졌다.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자취와 신앙활동의 변화, 한국전쟁과 분단시기의 한국 천주교회에 관해 그 역사적 신학적 평가를 담은 교회사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순교 성월은 우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성찰을 요청하는 시기다.

순교를 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 예수가 가르친 복음의 기쁨과 죽음 다음에 오는 부활 영광을 향한 희망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순교는 진리를 따르는 사랑의 행위였다. 하지만 서소문 형장에서 천주교인들은 조선왕조에 적대 세력으로 간주되어 처형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순교에 이르게 하였는가?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함과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이는 동학에서 이야기하는 인내천 사상과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양반과 상민의 계급을 허무는 평등개혁사상을 신앙으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조선은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 의해 국가체계에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왕조사회는 그 열망을 받아 쇄신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열강의 이해관계 안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는가?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6-37)

목숨을 바칠 대상을 만났는가? 21세기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목숨까지 바치려 하는가?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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