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신학연구소, 평신도희년 학술회의

평신도 희년을 맞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평신도의 삶과 사명을 위해서 남성주의와 성직자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구체적 실천이 제안됐다. 

서강대 신학연구소는 9월 28일 한국 천주교 평신도 희년을 기념해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날 신우식 신부, 김영훈 신부, 심현주 씨(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주원준 씨(한님성서연구소)가 각 주제로 발제했고, 이에 대해 하성수 씨(한국교부학 연구회), 박유미 씨(전 예수회인권연대 연구센터), 김우선 신부(서강대), 박지은 교수(이화여대)가 각각 논평했다.

서강대 신학연구소장 조현철 신부는 여는 말에서 “평신도 희년은 평신도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기쁜 해이고 동시에 희년의 정신에 따라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해”로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구현하는” 사명 앞에서 평신도의 삶과 역할을 생각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첫 발제를 한 신우식 신부(원주교구)는 초기 교부들이 단지 직무를 설명하기 위해 성직자과 평신도를 구분해 부르던 옛 문헌의 용어들을 소개하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보다 그리스도인인가 비 그리스도인인가가 더 중요”했으며 “평신도들은 단지 수직적 구조의 최하위에 자리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본당 주임사제를 해 보니 “사제는 피라미드 위에 올려진 사람으로 (평신도는) 신부가 무엇을 시키거나 가르쳐 주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수직적 인식을 넘어 “제도화, 세속화된 한국 교회가 구원의 장소가 되도록 평신도가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하성수 박사는 “성직자와 평신도는 동등한 그리스도인으로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인이란 말에는 평등성과 보편성이 담겨 있다“고 논평했다.

두 번째 발제에서 김영훈 신부(예수회)는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가 여성들과 협력했던 역사적 사례들과 교회 문헌에서 찾은 여성 평신도와의 협력 모습을 통해 수도자와 평신도가 함께 남성주의와 성직주의에서 벗어난 미래교회를 만들어 갈 것을 당부했다.

그는 “호르헤 베르골리오(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는 평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묻지 않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먼저 물었다”면서 바티칸공의회 직후에 나온 제31차 예수회 총회 문헌에도 “평신도에게 배우고 평신도를 존중하며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경청의 자세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의 발표에 대해 독일에서 가톨릭사회론을 전공한 박유미 씨는 “여성 평신도의 목소리가 커졌다 해도 여전히 교회에서 소외되는 이유는 대부분 성직중심주의 때문으로 꼽힌다”면서 “사회 변화에 따라 의식과 태도 변화를 받쳐주는 교회 내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독일교회가 도입한 ‘평신도 사목자 및 공동체 사목자 제도’를 사례로 들어 평신도가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교회 안에서 봉사직을 넘어 전문적, 체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28일 서강대 신학연구소는 "교회와 더불어 느끼고 인식하기"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김수나 기자

세 번째로 생명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인 심현주 씨는 평신도 희년에 대해 “주교회의는 평신도 희년을 맞아 평신도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와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지만 “교회 안 어디에서도 평신도의 위상을 드높이고 역할을 북돋우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신앙이 온전히 개인과 하느님의 관계로만 이해되는 한국 교회의 “심각한 개인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평신도가 “죄인”이나 “봉사자”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화, 전문화된 사회변화에 맞춰 평신도가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회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다변화하는 사회에서 “세속적 특성을 지닌 평신도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면서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따라가기 바쁜 현실에서 “평신도는 교회가 사회복음화에 참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심 씨는 이어 평신도들에게는 과도한 시장주의적 가치에 따라 왜곡, 단절된 사회적 병폐 앞에서 공동선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한 복음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동선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제도화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심 박사의 발표에 대해 김우선 신부는 “평신도의 역할을 가로막는 성직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짚어 본다면 더 깊이 있는 논의가 될 것이라면서 “성직주의는 사제만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또한 성직주의를 양산할 수 있다는 교황의 경고”를 언급했다.

네 번째로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인 주원준 씨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고대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 유배 시절 때의 원로들의 역할을 하나씩 살피면서 한국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을 발견한다.

그는 원로들이 사제출현 전부터 평신도 사제역할, 행정과 사법적 판단의 주체, 갈등 중재, 약자를 도움, 신앙의 정체성을 세워 주고, 유배시기 성서 편집에 참여하는 등 평신도로서 지도자와 지식인으로서 활약했다면서 이 시기 원로와 순교시대 한국 평신도 지도자들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지은 교수는 “원로 집단을 새롭게 조명한 것과 구약성서로부터 평신도의 지도력과 역할을 찾는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로가 평신도라는 의미보다 하나의 권력집단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삶의 자리와 경험에서 찾는 구약성서의 평신도 이야기가 더 많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및 종합토론에서 김영훈 신부는 “평신도가 수도자, 성직자의 협력자라는 발상을 뒤집어 수도자, 성직자가 오히려 평신도의 협력자라고 가치를 전환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사제직이 실현되어야 평신도나 여성 소외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의견에 하성수 씨는 “신학자들이 여성 사제직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가톨릭에는 고대에 여성 부제직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 부제직을 위해 먼저 투쟁할 것”을 제안했다.

신우식 신부는 “우리가 보편사제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직무사제직이 더 좋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여성 사제가 나타난다고 해도 의식의 성숙이 없으면 문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현주 씨는 한국 교회가 사회문제를 공론화하는 방식에 부족함이 있다면서 특히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교회의 충분한 토론 없이 생명윤리를 근거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면 상대는 자연히 반생명주의자가 돼 버리는 폭력이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주원준 박사는 “평신도의 참여가 늘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교회가 더 좋아지고 복음화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평신도 간의 세속주의가 훨씬 강하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씨는 “실제적 변화를 위해서는 더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의 문제에 연결되는 다양한 구조의 문제를 함께 보아야 한다”면서 “교회 안의 구조에서도 보조성의 원리가 작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각자 자신의 영역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천주교의 권위주의, 주교선출제, 공동선의 가치, 교회의 관료화, 평신도 양성 문제 등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질의응답이 오갔다.

평협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에 따라 교회와 사회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평신도사도직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968년 전국적인 평신도 단체로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그동안 “내 탓이오 운동”,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 “똑바로 운동” 등을 펼쳤고 2015년부터 지금까지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평협 설립 50주년을 맞아, 평협의 건의로 한국 교회가 2017년 11월 19일 평신도 주일부터 2018년 11월 11일 평신도 주일까지를 평신도 희년으로 지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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