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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나들이[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 일과에서 나들이를 빼놓을 수가 없다. 간혹 집 안팎의 일감이 넘쳐나 나들이를 포기할라치면 아이들 사이 관계가 삐그덕거리거나 내 몸이 삐그덕거리거나 둘 중 하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다랑이 다나 낮잠 자고 일어나서 곧장 나들이 갈 채비를 한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나무 열매나 다슬기 하는 식으로 계절에 따라 나들이 주제가 달라지고는 하는데 요즘 같은 계절에는? 당연히 도토리와 밤이 주제가 된다.

"얘들아, 도토리 주우러 나들이 갈까?"

"엄마, 도롱구테로 가자. 내가 아까 자전거 타고 가면서 도토리 많이 떨어진 데 봐 뒀어."

가을만 되면 자전거를 더욱 즐겨 타는 다울이가 자전거를 타고 앞장을 서고 다랑이는 자기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보라며 형 뒤를 쫓아 부지런히 달려간다. 그러면 나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나 손을 잡고 한가로이 걷는다. 길 옆으로 넘실거리는 누런 들판, 흰 구름을 데리고 흘러가는 가을 하늘, 보란 듯이 하늘을 누비는 잠자리 떼....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밀린 원고에 대한 근심이나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굳어 버린 목덜미와 어깨 근육이 살살 풀어지는 것만 같다. 그러한 때 다나까지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엄마, 우리 뭐 가?"

"도토리 주우러 나들이 가지."

"나들이?"

"응, 나들이."

"나들이 귀여워."

그 귀여운 입으로 나들이가 귀엽다니 기가 탁 막힐 노릇 아닌가?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나들이가 귀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입 안에 나들이란 낱말을 넣고 살살 굴려 발음을 해 보니 과연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나들이, 나들이, 나들이....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놀이(다른 한편으로 노래)가 생각이 났다.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나들이! (나들이!)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도토리! (도토리!)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잠자리! (잠자리!)

....

 

이런 식으로 이어 부르는 놀이(&노래)다. 다랑이가 곁에 다가오기에 들려 줬더니 금세 익혀서 놀이에 빠져들었다. 다울이도 질세라 끼어 들어 놀이에 합류했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노래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달팽이, 밤송이, 다람쥐, 개미, 거미, 나뭇잎, 돌멩이, 흰구름, 냇물, 물고기, 자전거, 신발, 발가락.... 알고 보면 우리는 온통 귀여운 것들투성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저 먼 하늘에 있는 누군가는 이렇게 노래하며 노는 우리들을 귀엽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겠지?)

노래하며 걷다 보니 길 옆에 난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 떼가 와글와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다울이는 까기 좋다며 작은 알밤 만한 대왕 도토리만 골라 줍고, 다랑이는 새끼손톱 만한 아기 도토리가 귀엽다며 자기 가방에 따로 모았다. 다나는 욕심이 많아서 보이는 족족 (썩었거나 말거나) 다 주워 담았다. 도토리 줍는 것만 봐도 셋이 다 각양각색이니 얼마나 재밌고 신기한지....

그렇게 해서 가방에 도토리를 솔찬히 담아 든 채 또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간다. 도토리로 뭘 해 먹을까 군침 도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말이다.

오순도순 정답게 도토리를 까는 오누이. ⓒ정청라

 

덧.

도토리를 신나게 줍고 온 다음 날 아침, 다나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엄마, 내가 노래 만들었다. 도토리 노래야."

그러더니 곧장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꽤 그럴듯한 노래여서 깜짝 놀랐다. 셋째는 정말 뭐든지 빠르구나! 가락을 조금 다듬어서 아주 단순한 도토리 노래도 만들어 본다. 이것도 노래냐 싶지만 노래가 아닌들 어떠하리.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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