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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아가씨[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5]

동네 할머니가 양파 모종 남은 걸 주셨다. 모종을 비닐에 싸 놔서 많이 물캐졌다며(짓무른 상태라며) 오늘 내로 빨리 심으란다. 알겠다고 대답을 해 놓고 밭부터 만들려 하니 일단 다나를 떨어뜨려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자기도 하겠다고 나서서 양파 모종을 갈기갈기 찢으며 놀 게 불 보듯 훤한 일이니까. 해서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이 홀딱 빠져 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동영상을 틀어 주고 25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자, 25분 안에 어떻게든 해 보자!

오랜만에 괭이와 호미를 잡으니 어깨 죽지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듯 신이 났다. 양파 모종 심는 김에 상추도 심어 볼까? 다울이가 심고 남은 완두콩 씨앗이 아직 넉넉하니 완두콩을 몇 두둑 더 심을까? 밭에 있으니 밭에서 할 일이 자꾸만 떠올라 25분으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선심 쓰는 척하고 25분짜리 동영상 하나를 더 보여 주었지만 25분은 어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내가 완두콩을 심고 있을 때 드디어 다나가 나타났다.

"엄마, 뭐하고 있어?"

"완두콩 심고 있어. 다나는 완두콩 엄청 좋아하지?"

"나도 심으고 싶다."

"거의 다 심었으니까 안 도와줘도 돼. 가서 오빠들 쌀 고르는 거 도와줄래? 엄마도 곧 갈게."

(다울이와 다랑이는 아빠의 엄명으로 쌀에서 뉘를 고르고 있었다.)

"나도 심으고 싶다니깐."

이쯤 되면 나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안 돼. 괜히 훼방 놓지 말고 어서 가서 놀아!"라고 소리치며 다나를 밭 밖으로 쫓아내는 것과 일 욕심일랑 버리고 조금 귀찮고 성가실지라도 순순히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것. 그간의 경험을 봤을 때 본능처럼 훅 올라오는 첫 번째 방법을 쓰면 결국 괴로워지는 것은 나였다. 다나가 순순히 물러나지도 않을 뿐더러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앙심을 품고 난동을 부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해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다나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럼 엄마가 파 놓은 구멍에 다나가 콩알을 세 개씩 넣어. 자, 하나, 둘, 셋! 그러고는 '잘 자라라' 하면서 흙을 살짝 덮어 주는 거야."

"세 개씩? 잘 자야야!"

"잘했어. 근데 흙을 너무 꽉 누르진 말고. 알았지?"

"이렇게 살살?"

"응, 바로 그거야. 자, 또 세 개 받아."

내가 완두콩 세 알을 다나 손바닥 위에 건네 주었는데 완두콩이 다나 손가락 사이로 흘러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순간, 서둘러 콩알을 주으며 다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

"어떡해. 완두콩이 울으겠다. 내가 도와줄게. 울지 마 아가야."

순간적으로 튀어 나온 다나의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에서 나는 무지갯빛 찬란함을 느꼈다. 다나가 자기도 심고 싶다고 다가섰을 때 내가 미처 읽어 내지 못한 그 마음의 빛깔이 생생히 읽혀졌달까? 그저 엄마를 귀찮고 성가시게 하려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다나는 정말 돕고 싶었던 거로구나. 아기를 보살피는 엄마의 마음으로! 내가 이 마음을 짓밟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와 동시에 무참히 짓밟았던 지나간 순간들이 떠올라 죄스럽기도 했다.

언제나 "나도 하고 싶은데"라고 나서는 우리 집 땅콩 아가씨 다나 양. ⓒ정청라

대체로 할 일은 많고 몸은 너무 지쳐 있을 때 내가 잔인해지는 것 같다. '안 돼, 하지 마!' 소리치며 아이를 멀리 쫓아버리고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며 아이의 자리를 빼앗고.... 돌아보면 그런 만행을 저지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일을 빨리 끝내려는 조급함에 아이의 존재를 단순히 훼방꾼 정도로만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애 셋쯤 낳아서 키우다 보니 아이 마음의 결이 조금씩 보인다. 돕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마음과 뭔가 자기 자리를 갖고 싶다는 소망까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안 보려 하고 못 본 척하면서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일 때가 여전히 많긴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선택지(다른 길!)를 선택하는 순간도 점차 늘어가는 것 같다. 그 경험이 주는 충만함에 한껏 물들어 감동을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캐 놓은 땅콩을 따야 해서 애들 낮잠 시간도 거르고 애들이랑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순돌이밭(땅에 돌이 많아서 순 돌이라고 순돌이밭)에 갔을 때였다. 잠이 오는지 다나가 자꾸 집에 가자고 칭얼거리며 내가 땅콩 따는 일을 못하게 훼방을 놓았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땅콩을 다 따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더니 내 품에 파고들어 시위라도 하는 듯, 보란 듯이 땅콩을 (따지는 않고) 까 먹으면서 말이다. 그때, 내 안에서 솟구치는 짜증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심술 바람보다 힘이 센 '해님 같은 노래'를 부르기로!

 

땅콩 아가씨 땅콩 아가씨

땅콩은 안 따고 땅콩만 까 먹네

땅콩 아가씨 땅콩 아가씨

사랑스런 땅콩 아가씨

 

즉석에서 만든 그 노래를 몇 번 연거푸 불렀더니 다나가 춤을 추며 뛰어놀기 시작했다. 노래라는 게 워낙 전염성이 강한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도 다 같이 불러 댔다. 상황에 따라 노랫말을 새롭게 바꾸어 부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땅콩 다랭이 땅콩 다랭이 땅콩은 안 따고 먼산만 쳐다보네, 땅콩 다울이 땅콩 다울이 땅콩은 안 따고 비행기만 날리네...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일과 놀이, 지루함과 흥겨움의 경계를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그때 나는 바로소 알게 됐다. 일 노래가 괜히 전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 노래는 한평생 일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원초적 본능과도 같았을 거라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 해서 땅콩 다 딸 때까지 다나는 집에 가자 조르지 않고 무사히 밭에서 잘 놀다 왔다는 해피엔딩 이야기~! 역시, 화내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노래의 길을 선택하길 백번 잘했다는 이야기~! ^^

이쯤 되면 노래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현장에서 얼마나 톡톡히 제 구실을 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구나, 노래여! 고맙구나, 땅콩 아가씨!

 

다나를 향한 애정이 담뿍 담긴 다울이 만화.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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