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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육아에서 빛을 보게 해 준 작은 노래 씨앗 하나[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
오늘부터 매월 격주 수요일마다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이 연재됩니다. 아이들 셋 키우며 만들어 낸 노래들의 이야기와 아이들과 함께 부른 노래를 실어 주신 정청라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6년쯤 전(다울이가 네 살쯤 되었을 때), 밖에서 우당탕퉁탕 꺄아옹꺄아아악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후닥닥 밖으로 나가 보니 고양이들이 패싸움을 벌였던 모양이다. 내가 문 열고 나가는 소리에 놀라 몇 마리는 달아나고 한 마리만 남아 있었는데 얼굴에 상처가 심했다.(눈이 찌그러져 있고 눈가에 피도 났다.) 뭘 어떻게 해 줘야 하나 걱정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그 고양이도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잠자코 있다가 마침내 내가 다가가자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몹시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을 안고 집 안으로 돌아왔는데 다울이는 충격이 컸는지 한참이나 야옹이 걱정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느닷없는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엄마, '야옹이가 다쳤다' 노래해 줘."

"엥? 야옹이가 다쳤다? 그냥 야옹이 노래 해 달라는 거지?"

"아니, 야옹이가 다쳤다 노래."

다울이가 평소에도 그런 식의 요구를 하기는 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도토리를 주우면 도토리 노래를 불러 달라 하고, 냇가 옆을 지날 때는 냇물 노래를 불러 달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때마다 '세상에 더 다양한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노래에 담겨 있다면' 하고 바라며 내 기억 속의 노래들을 다 불러 모으는 작업을 했다. 다울이의 요구 사항에 맞는 노래가 없으면 약간의 개사로 다울이가 요구한 낱말을 끼워 넣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야옹이가 다쳤다'라는 눈앞에서 벌어진 구체적 상황을 제목으로 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나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무슨 노래방 기계라도 되는 줄 아는지.... 게다가 '야옹이가 다쳤다'란 노래는 이 세상 어떤 노래방 기계에도 입력되어 있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다울이한테 "세상에 그런 노래는 없단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뭐든지 다 알고 다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순진한 영혼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않나. 노래 비스무리한 무엇이라도 들려 주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 그날 내 입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노래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야옹이가 다쳤다

친구들과 싸웠다

야옹아, 울지 마

다울이가 호 해 줄게

 

그게 시작이었다. 나에게서 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발견한 것이. 그동안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아서 듣고 흥얼거리는 것까지는 참 좋아했지만 내가 노래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을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애 낳고 난 뒤로는 악보를 보는 법조차 가물가물해져 오선지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나였다. 그랬던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짐작해 보건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온종일 함께하다 보니 덤으로 거저 주어진 선물 같은 능력이 아닐까 싶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노래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 잠투정하는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부터 시작해서 어르고 달랠 때도 노래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말이 트이는 순간부터 툭 하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좋든 싫든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샘에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후로 말라 버린 노래 샘에서 살아 있는 노래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나오는 것!

그러니까 이 연재는 내가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상 가운데 샘물처럼 냇물처럼 흘러나온 노래를 만난 기록이다. 아이들과 노래는 한몸처럼 딱 붙어 있어서 아이들 없는 노래나 노래 없는 아이들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로는 아이들 이야기가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노래 이야기를 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둘은 늘 함께 간다. 노래 요정의 도움이 없다면 난 육아의 길을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노래에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 작고 작은 이야기와 어설픈 노래가 육아를 고생 구덩이나 끝도 없는 터널이라고 여기는 엄마들에게 한 줄기 빛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육아, 진짜로 알고 보면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요 성장과 도약의 발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노래 요정을 깨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울이 친구 유민이가 그린 '야옹이가 다쳤다' 삽화. ⓒ정청라

덧.

'야옹이가 다쳤다' 노래는 첫째 다울이는 물론이고 둘째 다랑이 셋째 다나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우리집 애창곡 1위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지요. (저희 식구뿐 아니라 제 둘레 여러 친구들도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노랫말이나 곡조도 단순하니 누구나 따라해 볼 수 있어요. '다울이가 호 해 줄게' 이 부분에 자기 이름이나 아이 이름을 넣어 노래를 불러 보세요. 익숙한 이름이 들어가면 노래가 훨씬 친밀해져서 노래 부르는 기쁨이 배가 된답니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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