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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긴팔 입어도 추우나[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3]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추워져서 불 때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밤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잔다. 오늘 아침엔 글쎄 집 안에서도 입김이 나오지 뭔가. 모기에 시달리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서 날이 추워지기만을 바랐는데 막상 덜컥 추워지니 짧은 가을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도 아침이면 춥다며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내가 아직도 옷 정리를 못한 터라 서랍엔 긴팔 옷보다 반팔 옷이 많아서 아침마다 아이들이 불만을 터뜨리고는 한다.

"엄마, 옷 정리한다고 하고 아직도 안 했지? 긴바지가 얇은 거밖에 없잖아."

"맞아, 나도 너무 추운 거밖에 없어."

"그래 미안해. 이제 정말 여름옷을 정리하고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그러고 보니 반팔 노래도 바꿔 불러야겠는데?"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자 아이들은 잘도 알아듣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왜 긴팔 입어도 추우나

왜 긴팔 입어도 추우나

옛날에는 안 추웠는데 왜 긴팔 입어도 추우나

 

 

이 노래가 원래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환절기에 만들어진 노래다. 지난 여름의 초입, 갑자기 날이 더워지자 다랑이가 사랑방 그늘에 앉아 끝도 없이 노래를 불러 젖혔더랬다.

"왜 반팔 입어도 더우나, 왜 반팔 입어도 더우나, 옛날에는 안 더웠는데 왜 반팔 입어도 더우나....(무한 반복.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일 때까지....)"

"다랑아, 너 지금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있구나!"

"어, 근데 이 노래 진짜 신기하다. 노래를 부르면 안 더워지거든. 엄마도 더울 때 이 노래 불러 봐."

가을 녘 저수지가 아름다워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을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노래를.... ⓒ정청라

다랑이의 첫 노래는 그렇게 해서 완성되었다. (다랑이는 평소에도 워낙 자작곡을 많이 만들어 부르지만 금세 흩어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노래가 되곤 한다. 새장 속에 갇혀 있기 싫어하는 새 같다고나 할까? 잡아서 가두려야 가둘 수조차 없는.... 한데 이 노래는 너무 귀여워서 그냥 날려 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내가 작정을 하고 외워서 곡조도 약간 다듬고 끝도 없는 반복도 자르고.... 그런 식으로 길들여서 곁에 두게 되었다.) 다랑이한테 네가 만든 노래가 엄마는 정말 좋다며 마구 칭찬을 날리고 추켜세워 줬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빈말이 아니고 나는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

왜냐, 노래가 짧고 단순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의 기운이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노래라고나 할까? 자각을 통해서만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함께 변화할 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왜?'로 시작되는 물음이 따라붙어서 변화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탐구심까지 작동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단순히 '날이 더워졌구나, 덥다 더워.' 짜증을 내는 것과 '왜 더울까?'를 질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세계다. 질문을 가지고 있으면 좀 더 깊게 세상의 비밀과 연결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싶기도 하지만 갖다 붙이려고 하면 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 노래의 장점은 노랫말에 일상을 담아 맞춤형으로 바꾸어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노래했듯이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환절기엔 '왜 긴팔 입어도 추우나'로 바꿔 부른다. 아이가 추운데도 반팔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왜 반팔 입으면 안 되나'로 고쳐서 부르며 이유를 설명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참 다양한 상황에서 이 노래를 바꾸어 불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왜 사탕 먹으면 이빨 아프나 (다랑)

왜 청소 안 하면 혼나나 (다울)

왜 물장난 하면 추우나 (다랑)

왜 오줌 싸면 떨리나 (다울)

 

겨울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나와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자주 부를 것이다. 그러면서 계절의 변화에 서서히 적응해 가고 또 그러면서 조금씩 더 자라나겠지. 노래와 함께라면, 그 어떤 변화 앞에서도 두렵지 않으리라.

철부지 다랭이를 소재로 한 다울이의 만화.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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