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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해 주고 싶다[부엌데기 밥상 통신 - 65]

부엌데기 밥상통신 연재를 마치며

해마다 칠팔월을 손님맞이철로 명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올여름은 유난히 많은 손님을 치렀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교사 연수차 오기도 하고, 시댁 식구들, 친정 식구들, 오랜 인연을 이어 온 친구, 심지어 우연히 알게 된 버스 기사 아저씨(와 그 친구들)까지... 한 팀 치르고 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팀이 왔다. 일주일가량 오래 머물다 가기도 하고 하루 잠깐 있다 가기도 하고, 몇 달 전부터 약속하고 오기도 하고 느닷없이 오기도 하고....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속해 온 사람들을 맞고 떠나보내고 연거푸 반복하느라 사실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살았다. (그게 참 신기하다. 다른 누군가가 더울 것을 염려하며 지내다 보면 정작 자신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역대 최악의 더위로 불리는 올여름, 에어컨도 없이 작은 선풍기 두 대가 전부인 좁은 집에 그 많은 손님을 불러들이다니, 돌아보니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누군가 마음을 내어 먼 데서 온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부터 들어 수락했고, 그 다음은 그저 하늘에 맡겼다. (덥다고, 집이 좁고 불편하다고, 그렇게 핑계를 달기 시작하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성 들여 밥을 해 주는 일뿐이라 여기고 기꺼이 밥상을 차렸다.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론 힘들었다. 손님이 오면 해야 할 음식의 양도 많아질 뿐더러 내 나름의 격식을 갖추어 반찬 한두 가지라도 더 장만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물음 앞에서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는 게 원래 힘든 거 아닌가요? 이래 힘드나 저래 힘드나...."

내가 손님들 밥해 주느라 힘들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더워서 힘들거나, 애들 때문에 힘들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사건이 닥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40년 가까이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매 순간 어떤 식으로든 힘든 일이 있었고 그걸 견디고 이기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결국 힘든 걸 피하고 살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힘을 들이냐의 문제인데 나는 내가 힘쓰고 싶은 방향으로 힘을 썼으니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내가 들인 힘이 밥이 되고, 그 밥이 누군가를 잠시나마 살게 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에 있나.

여름 손님을 잘 맞게 한 일등 공신은 들마루! 얼기설기 대나무로 엮은 들마루 위에 모기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 앉아 참 많은 사람들과 한 끼니를 함께했다. 하늘과 별과 바람과 노래도 함께! ^^ ⓒ정청라

재미있고 놀라운 일은 손님맞이철의 끝자락 무렵, 우리 집 암탉이 알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봄부터 이제나저제나 다른 집 암탉 알 품고 병아리 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집 암탉은 왜 알을 품지 않나 조바심을 냈더랬는데, 아무래도 알을 품는 종자가 아닌가 보다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암탉이 알을 품은 것이다. 처음엔 한 마리, 지금은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그 사실을 처음 발견한 다울이는 날마다 생생한 닭장 뉴스를 내게 전해 오고는 하는데 오늘은 알 품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암탉이 수탉을 구박하는 소식이었다.

"엄마, 수탉 꽁지 털이 몇 개 뽑혔어. 암탉은 수탉을 째려보고 있고 수탉은 암탉 눈치만 보고 있는데? 병아리 태어나면 난 이제 닭장 안 들어갈래. 암탉이 무서워서 안 되겠어."

날마다 전해 오는 그 소식 속에서 닭이나 사람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임신한 여자가 괜히 남편을 괴롭히는 거나 알 품는 암탉이 수탉을 구박하는 거나 무어 다를 게 있나. 암탉이 왜 그러는지 말 안 해도 다 이해가 되지 않나. 암탉이나 나나, 나나 암탉이나....

그런 뜻에서 조심스레 추측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집 암탉이 알을 품기 시작한 것이 내 존재의 거듭남을 알리는 신호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지난 여름 내 식구의 울타리를 더욱 넓혀 더 큰 식구를 품느라 애를 썼기에 그 마음이 암탉에게 전해진 것은 아닐까 하고....)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다고 느낄지라도 나는 분명 그렇다고 느끼고, 이제 여기서 이 연재의 매듭을 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재가 끝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밥상을 차리는 부엌데기요, 부엌이 나의 수련장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이제는 글쓰기라는 동아줄 없이도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알고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누가 치켜세워 주지 않아도, 세상이 제 아무리 내 역할과 책임을 없신여기고 무화시키려 하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포장하려 할지라도....

옥수수의 철이 돌아왔다! 옥수수를 들고 "우리집 옥수수가 최고야!"라며 환호하는 아이들. ⓒ정청라

연재를 마치며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부엌에서 길어 올린 나만의 노래, 노래 제목은 '밥을 해 주고 싶다'!

 

만날 밥 사 먹는 사람을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힘든 일로 지쳐 있는 사람을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토라진 얼굴로 등 돌린 사람을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밖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뭐라도 나눠 주고 싶어 하는 사람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을 보면

밥을 해 주고 싶다

 

내가 해 주는 밥이

새 힘을 일으킬 수 있다면

작은 빛이 되어 큰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며

 

덧. 9월부터 본격 노래 이야기 연재가 시작됩니다. 연재명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음표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얼뜨기 아줌마가 어떻게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되었는지 밝혀지는 이야기가 될 거예요. 제 아무리 어설플지라도.... 노래야 흘러라. 얍!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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