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9월 23일(연중 제25주일) 마르 9,30-37

예수님은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당대 권력가들의 적의가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두 번째로 선언한다.

누가 가장 위대한가?

마르코는 사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제자됨의 요구조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가장 자주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복음사가다. 마르코는 말한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마르 9,32)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지막 도약을 하도록 돕기 위하여 그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9,33) 그러나 그 질문에도 제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9,34) 수많은 군중을 거느리는 스승의 가까운 동료들이 된다는 것은 이미 갈릴래아의 이 소박한 주민들에게 어떤 특권처럼 되었던 것이다. 혼란 한가운데에서 이제 그들은 예수님이 약속하는 변화가 올 경우 모두가 가장 좋은 자리를 탐내고 있다.(야고 4,2)

제자들은 주님께서 종교질서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음을 실제로 알고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종교계에서조차, 특권과 권력에 대한 야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추락은 반드시 세속의 왕국을 믿지 않아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매일 우리들 가운데에서 보고 있다. 명예의 추구, 결정의 중심에 있으려는 요구, 우리에게 위탁된 권위에 자기도취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혹들이다. 그것은 다시 한번 제자들의 표징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는 것”(9,35)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주님의 메시지를 결정적으로 곡해하는 것이다.

제자는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위선 없이

예언자적 자세로,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이 가치를 두지 않는 존재를 껴안으시며 아이와 그분 자신을 동일시한다.(마르 9,36) 보잘것없는 어린이 하나를 환영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를 환영하는 것이다.(9,37)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마태오 복음 25장 31절의 유명한 구절을 기억나게 한다.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려면 사회에서 가장 꼴찌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로부터 오는” 지혜다.(야고 3,17) 이 지혜는 단지 내적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열매들은 “의로움”의 결실이며, 평화를 이루는 이들(3,18)의 행동의 결과다. 이 평화는 다른 말로 하자면, 생명과 온전함을 의미하는 하느님의 샬롬(평화)이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지혜다.(3,17)

이러한 지혜의 자세는 온갖 저항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탐욕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야고 4,2) 권위를 섬김으로 행하지 않고 권력과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인들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볼 것이다(지혜 2,19). 그들은 의인들의 말과 행위의 성실함을 의심하고(지혜 2,19), 의인들이 “얼마나 온유한지 그리고 얼마나 인내심이 있는지” 시험해 볼 것이다(지혜 2,19). 그들은 심지어 의인들을 “수치스러운 죽음”(지혜 2,20)에 처할 것이다. 예수님이 암묵의 종교적인 합리화를 내세우며 권력을 오용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때 그분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이런 일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주님은 권위를 섬김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택함으로써 반대되는 증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에게 그분의 모범을 따르라고 초대하신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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