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0월 7일(연중 제27주일) 마르 10,2-16

이번 주일 말씀의 중심주제는 성경에서 보여 주는 인간 부부의 중요성이다.

부부

다시 한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당대의 율법과 반대되는 입장에 놓으려고 모색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여성들을 가치 있게 대하는 태도를 목격하고, 바로 그것에 대해 예수님을 시험한다. 그들은 묻는다: “사람이 그의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율법에 타당한 일입니까?”(마르 10,2) 그들은 이혼이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이런 질문으로 예수님이 함정에 빠지기를 기대한다. 주님은 이런 간교를 알아차리고, 권위 있게 모세의 가르침 뒤에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왜냐하면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10,5) 그러나 더 중요하게 예수님은 “천지창조 때부터”(10,6)를 말씀하면서 이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여성들은 물건이 아니다: 그들은 남성들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인격체다. 결혼이란 양쪽 당사자들이 모두 하느님께 속한다는 사실에서 본래 똑같이 평등한 존재들의 결합이다. 예수님은 창조의 두 이야기들을 말하면서 그분의 입장을 세운다. 이렇게 복음은 우리를 창세기로 돌아가게 한다.

부부 (이미지 출처 = Pixabay)

하느님을 위한 존재들

창세기의 첫 장들은 남자와 여자 창조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창조의 첫 번째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평등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마르 10,6에 인용됨)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평등하게 지어졌고,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평등하다.

두 번째 창세기 이야기는(제1독서에서만 언급된) 여성이 남성의 도움자라는 사실, 그래서 평등성보다는 보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는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중심 메시지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하느님을 위한 존재들이며, 그분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기본 모습이다. 또한 동시에 그들은 서로를 위한 존재들이다. 남성과 여성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이 사실이 그들의 관계를 보증한다. 평등성은 보완성의 기초이며, 보완성은 평등성 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사랑에 기초한 동반관계이며, 두 평등한 존재 사이에는 오로지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히브 2,11) 이번 주일의 말씀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성을 강력하게 상기시키고 있으며, 이 평등성이 없는 부부 사이에 건강하고 인간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삶은 있을 수가 없다. 오늘의 말씀들은 소위 남성우월주의를 거부하며, 우리의 문화적 사고방식 속에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자주 여성들에게 모욕적 차별을 가하도록 합리화하는 “남자다움, 강한 남성의식”을 뿌리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모든 다양한 조건들을 이런 말씀으로 조명해 볼 때에, 우리들은 배우자들 사이의 존경과 평등함에 근거하는 책임들의 새로운 나눔이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생명의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은 서로를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