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0월 14일(연중 제28주일) 마르, 10,17-30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눈과 우리들의 눈 앞에 우리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여정에서

여정의 형상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중심을 차지한다.(마르 10,17)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주제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 주제는 마태오가 다만 “젊은이”(마태 19,22)라고 표현했던 사람에게 예수님이 던졌던 질문의 의미이기도 하다. 마르코(루카에게도)에게 이 젊은이는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지 물었던(마르 10,17) 더 나이가 든 사람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뿌리에 그분의 선함을 두고 있는 하느님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이런 설명은 계명의 첫 번째 부분들을 요약하는 방식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즉시 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중요한 첨가(오직 마르코 복음에만 있는)를 한다: “속이지 말라.”(10,19) 이 구절은 마치 방금 언급한 부분들에 대한 요약과 같고, 믿는 이들에게 요구하는 최소의 것이다. 그 부유한 사람은 어떤 적의도 없이 이 모든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말한다.(10,20) 이런 태도가 당시 학식있는 사람들의 확신이었다. 율법 전체를 지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요구되는 일이다. 사랑스럽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제자로 초대한다. 재물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 그 부유한 사람은 자기의 재물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10,21) 개인적 차원에서 정의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악의 뿌리로, 불의의 근간으로 가야 한다. 그 근간은 재물을 축적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에게 너무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대부분처럼, 그 부유한 사람은 안락한 평범함 속에서 신앙을 살기를 원한다.(10,22) 그는 믿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믿지 못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선포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거부한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돈과 돈이 주는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데 있어 중대한 장애물이라는 사실을(10,23) 매우 분명하고도 명료하게 밝히는 기회로 삼는다. 따라오는 비교는 혹독할 정도다. 어떤 사람은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하여 예를 들면, 예루살렘에 “바늘의 귀”라고 불리는 작은 문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낙타가 해야 할 짓은 단지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등을 구부려야 했다는 것이다.

바늘귀 (이미지 출처 = Pixabay)

양쪽에 날이 선 칼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잘 이해한다. 그들은 이 메시지대로 실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바늘의 귀를 통과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신뢰를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도전을 개인으로서나, 교회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제자들처럼, 자칭 현실을 내세우며 우리는 의아해 한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마르 10,26) 우리는 돈이 우리에게 안정을 주며, 우리를 효과적이도록 해 준다고 주장한다. 주님께서는 하느님만을 믿는 우리의 역량만큼 은총이 주어진다는 점을(10,27) 상기시킨다.

제자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로서 우리들은 돈과 권력이 주는 안전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지혜의 영”(지혜 7,7)을 가지고 지혜가 우리의 빛이 되도록(7,10) 허용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하여 지혜로 이끌린다. 하느님 말씀의 날은 모든 인간적 특권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 속을 꿰찌른다. 말씀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 우리의 모든 속셈들이 매우 명료하게 드러난다.(히브 4,12-13) 신도들로서, 교회로서 우리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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