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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역사는 진보한다[광기와 삶 - 송승연]

정신건강 및 정신장애인 영역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론을 만들고, 실천적 성과를 성취한 수많은 ‘전문가’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소 비공식적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투쟁을 지속해 온 당사자운동의 역사 또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1970년대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몇백 년 전부터 법률, 치료, 서비스, 공공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한 당사자 주도 투쟁은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1620년 악명이 높았던 영국 베슬렘 병원의 환자들은 힘을 모아 ‘베슬렘 병원의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의 수용자 처우에 관한 청원’을 영국 상원에 제출한 적이 있다. 또한 1774년 수용소에서 퇴소한 사무엘 브럭쇼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설 광인수용소(madhouse)의 부당한 학대"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에 많은 노력들은 대개 매우 극단적 존재로 치부되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진 못했다.

19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학생운동 등에 영향을 받아, 1970년대 정신장애인에 의한 당사자운동의 시대가 본격 시작되었다. 당사자운동은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강제적이고 해로운 치료에 저항하기 위해 행동했으며, 주체적 자기옹호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로 ‘생존자'(survivor)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억압적인 정신건강시스템의 다양한 차별과 학대에서 생존한 역사에 커다란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되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인권향상 투쟁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 주디 챔벌린(1944-2010)은 우리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당사자 활동가다. 그녀는 21살이었던 1966년 가슴 아픈 유산을 겪었고, 이후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했다. 처음엔 정신병원에 자의입원 하였으나, 몇 번 입퇴원한 뒤 그녀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뉴욕주립병원 정신과 병동에 강제입원되었다.

“정신병원의 진짜 문제와 진정한 모욕은 일상의 모든 측면들이 통제될 때, 즉 잠에서 일어날 때, 식사할 때, 샤워할 때와 같은 모든 것이 통제될 때이며, 우리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화학물질(정신과 약물)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올 때입니다.”(주디 체임벌린, <뉴욕타임스>, 1981)

그녀는 강제입원 뒤 다양한 학대를 목격하고 경험했다. 예를 들어 격리실은 저항을 하는 환자들에게 적용되었는데, 심지어 그들의 저항이 비폭력적이더라도 사용되었다. 또한 그녀가 복용한 정신과 약물은 피곤함을 느끼게 했고, 기억력에 영향을 주었다. 비자의적 환자로서 그녀는 자유롭게 병원을 나갈 수 없었고, ‘시스템의 포로’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정신과 환자로 경험한 시민권 침해는 그녀가 당사자운동에 뛰어드는 데 자극을 주었다. 퇴원 후 그녀는 당사자 동료들과 함께 보스턴에 기반을 둔 ‘정신과환자 해방전선'(Mental Patients Liberation Front)을 설립했다. 그리고 1978년 "우리 자신에 관하여: 환자가 통제하는 대안적 정신건상시스템"(On Our Own: Patient Controlled Alternatives to the Mental Health System)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이 책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기준이 되는 텍스트가 되었다. 

그녀의 혁신적 작업은 다양한 면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의 균형을 맞추고 존중하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정신과 약물을 사용하여 효과를 본 사람들에서 나오는 경험을 보장해 주었다. 활동가이자 지역사회 리더로서의 챔벌린의 일은 인권과 시민권, 그리고 타인에 의해 강요된 선택을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에 중점을 두었다. 즉 그녀의 실천은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개개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챔벌린 외에도 수많은 당사자활동가가 있었다. 테드 차바신스키(Ted Chabasinski, 1937 출생)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활동가이자 변호사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1944년 6살 때 위탁가정에 있다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벨뷰 정신병원에 입원되었고, 소아기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뒤 ECT(전기경련요법)을 받았다. 10년간 입원생활 후 퇴원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차바신스키는 1971년부터 당사자운동에 적극 참여했는데, 가장 중요한 성과 중에 하나는 1982년 버클리에서 ECT 사용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얼마 가지 못해 APA(미국정신의학회) 소송으로 결국 이 법안은 무효화되었다.

또한 정신병원에 같이 입원되어 있던 동료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탈출을 도왔던 조지 바딜로(George Badillo)도 있다. 바딜로는 17번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이 있으며, 약 300명이 머물렀던 3층으로 이루어진 거대 정신요양시설에서 입소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뉴욕에 있는 ‘PEOPLe Inc.’라는 단체에서 동료지원가를 양성하는 동료훈련가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히스패닉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다. 

또한 대안적 치료법을 모색하고, 당사자의 감춰진 이야기를 공개적인 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한 시도로 <Madness Network News>(광기 네트워크 뉴스, MNN)라는 잡지가 1972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간행되었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1980년에 <Phoenix Rising>(불사조 날다: 정신의료화된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잡지가 창간되었다. 이러한 잡지는 대부분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 등을 기고한 글로 구성되었다.

국내 최초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사 <마인드포스트> 홈페이지 일부. (이미지 출처 = <마인드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약 10년 전부터 미약하지만 서서히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확대되고 있다. 초창기 정신장애인 당사자조직에 대한 자원과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자립을 위해 헌신한 (필자가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김락우 대표. 억눌려 있던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분노를 대변해 주고,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및 자유권을 위해 꾸준히 가열차게 투쟁하고 있는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 국가 지원금 없이 자력으로 시작하여, 현재도 지속적으로 동료지원 및 권익옹호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의 유동현 대표. 그리고 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면서, 당사자조직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자기옹호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수원마음사랑 김순득 대표. 그리고 앞서 언급한 <MNN>, <Phoenix Rising>과 같이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사 <마인드포스트>(MindPost)의 박종언 데스크. 지면상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당사자활동가들은 여전히 조용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분명 이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그리고 국내에서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소수정예 당사자조직. 정신장애인의 인권 및 주체성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정신장애인의 삶도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다소 거창하고, 낭만적으로 묘사했지만,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당사자조직의 상황은 많은 부분 열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현실은 여전히 버겁지만, 그럼에도 당사자운동의 노력으로 인해 앞으로 정신장애인의 권리보장은 진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광기와 삶’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한다. 

'광기와 삶'은 이번 글로 시즌2를 마치고 2019년 초에 시즌3이 시작됩니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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