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송승연]

가슴이 철렁했다. 임세원 교수의 비극적 사건을 접하던 순간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전에, ‘가칭 임세원법’이라는 명분으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윤일규의원안)이 순식간에 발의되었다. 

임세원 교수는 생전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그러나 윤일규 의원의 개정안은 입원을 손쉽게 강제하는 데에만 중점을 둬서 오히려 임 교수의 뜻과 반대로 가고 있다.

이에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와 같은 당사자단체 그리고 가족단체, 일부 전문가단체가 연대하여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촉구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고, 법안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본 글을 통해 윤일규 의원안의 어떤 쟁점들이 논란이 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권리의 평등을 침해하는 윤일규의원안(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능력이나 체력의 차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권리의 평등이 더욱 필요합니다. 지혜와 힘이 불평등한데 거기다 권리마저 불평등하다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받는 폭압은 더욱 커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한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리의 평등’은 중요하지만, 윤일규의원안은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에서 ‘자의 입원’은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입원과 퇴원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이는 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100퍼센트 반영한 가장 친인권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일규의원안을 보면 심지어 자의 입원이더라도, 퇴원은 자유롭게 할 수 없다.(3일 동안 퇴원 거부 가능, 개정안 제42조) 그리고 ‘비공식입원'(개정안 제41조)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는데, ‘중증정신질환이 아닌 경우’로 이용자격이 한정되어 있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하겠다는 것 자체도 모호할 뿐더러, 집단을 구분하여 권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권리의 차별’을 낳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강제입원’에 대한 내용은 어떨까? 일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강제입원 절차가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 표현은 적절치 않다.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2016.09.29. 전원일치)에 따르면 강제입원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 내지 박탈하는 ‘인신구속’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그에 맞는 절차가 ‘부재’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즉,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해야 하는 절차를 ‘복원’시켰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윤일규의원안의 경우 강제입원 신청권한을 ‘정신질환자의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동거인’으로 ‘확대’하였고, 기존의 2명의 정신과의사 중 1명은 ‘국공립정신병원 소속’이어야 한다는 요건은 ‘삭제’되었으며, 입원요건으로서 자타해위험과 치료 필요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에서, 둘 중에 ‘하나’라도 해당이 되면 가능한 것으로 ‘완화’되었다.(개정법률안 제43조)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 정신보건국 과장 미쉘 풍크(Michelle Funk)는 2008년에 발효된 UN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강제입원 폐지를 천명(CRPD 제14, 15, 17조 등)하고 있으므로, 강제입원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위해 자타해위험과 치료필요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요건 유지를 권고하였다. 현재 대다수의 선진국은 UN CRPD를 ‘지향점’으로 삼고 정책을 수립 중에 있다. CRPD를 준수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하는 현실이다.

2018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임세원 교수는 자신의 환자를 진료하던 중에 피살됐다. (이미지 출처 = JTBC 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또한 이 외에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이하 입적심) 폐지, 사법입원(개정법률안 제47조) 도입, 외래치료명령제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법입원은 가정법원에 의해 결정되는데, 고지 전까지 합법적으로 강제입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입원 기간이 현행법 3개월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입적심의 경우 시행이 채 2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성에 대해 쉽사리 단언하기에는 이르며, 입적심에는 ‘당사자, 가족, 인권전문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입적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면심사'(국립병원 소속 조사원 방문)라고 생각된다. 현행법에서 당사자(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권익옹호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대면심사비율은 16.5퍼센트로 낮은 편이다. 사법입원 시스템 구축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하기 전에, 당사자 권리강화 측면에서 입적심 대면심사비율을 100퍼센트로 끌어 올리는 것을 먼저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외래치료명령제는 한 사람의 ‘주체성’ 측면에서 보면 ‘강제적 치료’ 범주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철학적 고민과 토론이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윤일규의원안 발의 과정에서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제외하고 우리에 관해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 당사자운동의 핵심 슬로건이다. 윤일규의원안은 당사자를 제외하고 정신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만 논의해 발의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법에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상은 ‘정신장애인’이다. 자신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데 당사자를 배제하고 결정된 것은 정신장애인을 또 다시 대상화시켜 버린 것과 같은, 무의미한 행위일 수 있다.

권리의 보장이 곧 회복

2018년 12월 9일 미국 내 정신장애인 관련 진보적, 대안적 담론을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Mad In America’에서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약 50퍼센트가 정신과 병동에서의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답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정신장애인의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번이라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환자의 자살률은 국가에 상관없이 일반 인구보다 44배나 높다는 연구결과(Chung et al., 2017)가 있으며, 이는 강제입원 그 자체가 정신장애인 자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일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제 ‘상처’를 확대 재생산하는 강제적 치료 구조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권리보장과 치료접근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시범운영 중인 ‘절차보조인 사업’은 정신장애인 의사결정지원을 통해 자기결정권 강화와 권익침해 최소화를 지향한다. 이 시범사업은 경험과 공감의 힘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관점에서 듣고, 설명하고, 전달하는 역할 수행에 최적의 조건일 수 있는 ‘당사자활동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절차보조인은 치료를 막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진정한 치유’로 가는 길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권리의 보장’과 ‘치료’가 같이 갈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였고, 이는 ‘정신과적 사전의료 지시서'(Psychiatric Advance Directive, PAD)라는 것으로 실천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정신과 병원 내 안정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TV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PAD는 자신이 어떤 치료를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입원 때 어떤 병원을 선호하는지 등을 적는 서류로, 현재 미국 27개 주에서 법적 권한을 받았다. 관련 연구를 보면 239명의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PAD를 제공한 결과, 전체 중 약 62퍼센트 당사자의 강제입원, 강제적 약물치료, 강박 등의 경험이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Swanson et al., 2008) 또한 정신과환자의 입원치료 결과에 대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연구에 따르면 강제입원 환자에 비해 자의입원 환자의 입원기간, 재입원 위험률, 자살률 등이 낮았으며, 치료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Kallert et al., 2008) 이처럼 권리와 치료가 같이 가는 것, 그리고 자발적이며 주체적인 치료 참여가 당사자 회복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급작스레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사람’의 존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임세원 교수 사건은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개인'(혹은 질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행위에 그칠 수 있다. 실제 현재 제기되는 대안들(예를 들어 외래치료명령제 등)의 대부분은 ‘정신과 약물’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약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약물을 ‘만병통치약’으로 믿는 것 또한 왜곡된 환상일 수 있다. 다소 이상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구조적 요인을 ‘드러내는’ 것을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주거, 직업 등의 복지서비스 확충, 동료지원가(peer support)와 같은 일상생활 지원서비스, 위기상황 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쉼터’ 등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버몬트에 있는 ‘알리숨(Alyssum)’은 당사자가 주도하는 단기거주형 위기쉼터(평균체류기간 7일)로, 한 이용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리숨은 나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전통적인 병원 환경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내 입장이 되어서 그들이 직접 경험한 효과가 있었던 조언을 해 주는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McSherry et al., 2018) 지역사회 내 더불어 삶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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