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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명동성당에서 조성만 추모미사 봉헌'군사정권 반대, 한반도 통일' 등 외치며 교육관에서 투신했던 청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의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가 '고 조성만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하여'를 주제로 5월 31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됐다.

조성만(요셉, 1964-88)은 1988년 5월 15일 '군사정권 반대, 양심수 석방, 한반도 통일,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할복, 투신해 숨졌다. 사망 당시 23살이었던 조성만은 문정현 신부(전주교구)에게서 세례 받은 천주교 신자로 명동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했고, 1987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었다.

그가 숨진 지 30주기가 된 것을 기리는 뜻도 가졌던 31일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에 참석한 유가족과 지인들은 명동성당에서 그를 추모하는 미사가 봉헌되는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400명 이상이 참석한 미사가 끝난 뒤에는 조성만이 떨어졌던 교육관 옆에 그의 영정을 세워 두고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당시 조성만은 자살했다는 이유로 천주교 장례미사 대신 명동성당 앞에서 고별식이 거행됐다.

5월 31일 '고 조성만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하여'를 주제로 봉헌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를 마친 뒤, 조성만이 떨어졌던 명동성당 교육관 옆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한 기자

유경촌 보좌주교, “조성만은 우리에게 도전이고 질문이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유경촌 보좌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는 강론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지난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라며 “그 빚을 갚는 방법은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를 잘 가꾸고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 주교는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는 그것이 언제라도 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주교는 특히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 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고, 천주교 사제가 되기를 꿈꿨던 조성만의 삶을 소개하며, “그가 왜 그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야 했을까 안타깝다. 제가 고인의 생전에 만났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결정을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주교는 조성만이 “살아남아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리고 고인이 그토록 바라던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참 사제의 길을 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경촌 주교는 조성만이 “시대와 민중의 아픔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살고자 애쓴 모습”,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고뇌와 성찰을 잃지 않고, 청빈을 선택하고, 성경을 묵상, 기도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며, 이러한 그의 자세가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의 도전”이며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조성만 요셉 형제가 염원한 통일, 민주주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아갈 몫이 중대함을 여전히 느끼며 옷깃을 여미도록 하자”고 말했다.

미사 말미에 독서대 앞에 나선 조성만의 아버지 조찬배 씨는 30주기 미사를 준비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그동안 암울한 세상을 살았지만, 30년 된 그날부터는 웃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하는 구약성경 코헬렛(전도서) 말씀을 인용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명동성당 조성만 30주기 추모미사가 유가족에게 위로와 힘이 됐다고 말했다.

고 조성만의 아버지 조찬배 씨가 아들이 지금은 서울대 교수가 된 친구에게 1985년 보낸 편지를 돌려 받았다며 미사 참석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강한 기자

조성만 투신 장소에서 추모식 열려

미사가 끝난 후 조성만을 기억하는 명동성당 동료, 학교 동창, 사제, 유가족들이 조성만의 추락 장소를 둥글게 둘러싸고 촛불을 든 채 추모 모임을 했다.

이 모임은 호인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제)가 '통일열사 조성만 요셉을 기억하는 기도'를 이끌며 시작됐다.

조성만이 투신하던 모습을 명동성당에서 지켜봤던 동료 신자가 울먹이며 당시 이야기를 들려 줬고, 조성만의 어머니 김복성 씨는 “30년간 한 번도 안 빼고 미사를 드려 주셔서 감사하다. 아버지(조찬배 씨) 말씀대로 앞으로는 기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한 형제가 되고자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 조성만 열사”라고 말했다. 그는 조성만이 숨진 1988년은 “광주민중항쟁이 가장 큰 숙제였을 때”인데 “조성만 씨의 유서는 광주민중항쟁을 뛰어넘어 통일을 그렸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조성만의 바람대로 이제 우리나라에 봄이 완전히 올 수도 있겠다”면서 “우리는 조성만이 가졌던 희망을 간직하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일열사 조성만 30주기 추모사업위원회'가 5월 15일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위원회는 5월 19일 조성만이 안장된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순례했고, 9월에는 '한반도 평화와 조성만'(가제)을 주제로 심포지엄, 평화콘서트,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준비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의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가 '고 조성만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하여'를 주제로 5월 31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됐다. ⓒ강한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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