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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목수의 아들 예수, 조성만 요셉[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1987년 5월 대학 축제 때 광주 사진전이 열렸다. 물론 전두환 군사정권이 불허한 불법 전시였다. 1학년이었던 난 중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를 통해 보았던 이른바 ‘광주사태’의 실체를 보았다. 축제가 시작되었지만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며칠을 앓았다. 겨우 일어나 서점에 가 당시 가출판본이었던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찾아 밤새 읽었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 3층 먼지 가득한 신문 보관고에서 1980년 5월 18일 당일 신문을 찾았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로 기억하는 신문에는 커다란 활자로 ‘광주, 폭도, 폭력사태’가 나왔고 검디검은 광주의 밤을 찍은 1면 사진을 난 기억한다. 더 이상 내게 5월의 축제는 없었다.

다음 해 5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식당 앞 게시판에 벽보가 붙어 있었다. 조성만 요셉, 명동성당 교육관.... 익숙한 단어들이 적힌 벽보였다. 불과 세 살 많은 같은 신자 대학생이 명동성당에서 양심수 석방과 조국 통일, 그리고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무력진압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할복 후 투신했다는 사실. 그가 유서에 쓴 팔레스티나 목수의 아들 예수의 마음을 읽으며 난 말을 잃었었다. 1988년 5월 15일이었다.

다음 해 난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노래패를 만들어 축제 때면 ‘민중연대전선’을 부르고 “반전 반핵 양키 고우 홈”을 외쳤다. 학보사 기자를 하며 통일 축전에 다녀와 구속되어 풀려난 임수경 씨를 인터뷰하고 판문점으로 함께 내려온 문규현 신부를 인터뷰했다. 그래야 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 조성만 30주기,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위한 미사', 5월 31일(목) 저녁 7시, 명동대성당. (이미지 출처 = 통일열사 조성만 30주기 추모사업위원회)

지금도 5월이 오면 캠퍼스에 흐드러졌던 붉은 장미의 진한 향보다 도서관 3층의 먼지 냄새가, 식당 앞 게시판의 먹먹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이 있었다. 문규현 신부가 넘어온 그 길에 남북 두 정상이 만났다. 조성만 요셉이 유서에 적은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판문점 선언에서 확인했고, 1988년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를 그토록 바랐던 요셉 열사의 염원을 평창올림픽에 이어 다시 아시아 경기대회 등 국제대회의 공동 참여로 남과 북은 약속했다.

다시 5월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한 조성만 요셉 형제의 마음을 감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올해로 꼭 30년, 한 세대가 지나서야 요셉 형제가 꿈꾸었던 일들이 비로소 이루어지려 한다. 그랬다. 그렇게 시대의 거름 되어 떠난 이들이 있었기에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의 꽃은 다시 붉게 피고 있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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