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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싹을 틔운 판문점 회담[특별기고 - 백장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양 정상이 도보다리를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적대국 정상 간 회담이라기보다는 부자간 대화 모습이었다. 통역 없이 단둘이 마주 앉아 격의 없이 대화하는 장면은 아마 한 민족인 남북 정상회담 외에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두 정상이 합의한 남북관계의 발전 방안,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 및 전쟁 위험 해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3항 13조로 이루어진 ‘판문점 선언’은 형식부터 내용까지 언론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다.

먼저 남북 정상 간 신뢰 구축과 정상회담 정례화 합의는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끌고 갈 핵심 동력일 뿐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정상회담이 수시로 열리고 여기서 합의된 사항을 장관급 회담 등 후속회담을 거쳐 실천하면 남북관계는 유럽연합(EU)이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처럼 국가연합이 된다. EU는 6개월마다 ASEAN은 1년에 1번씩 정상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외무장관회담 등 후속 회담을 거쳐 이행한다. 합의문대로 올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올해에만 정상회담이 두 번 열리는 셈이 되며, 향후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4년 동안 계속된다면 이는 곧 정례화이고 남북관계는 사실상 남북연합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둘째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 합의는 65년 동안 우리 민족을 옥죄며 괴롭혔던 ‘53년 정전협정 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정전체제’는 남북 간 적대적 대치를 바탕으로 한 미, 일, 한 대 중, 러, 북의 동북아 냉전체제로서, 남북한은 양 진영의 전초이자 선봉부대로서 끊임없는 소모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인한 상시적 전쟁 위기는 우리 사회에 독재정치와 군사문화의 독소를 심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타난 남북 기득권 세력 간 ‘적대적 공생관계’는 통일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 정상은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올해 3자 또는 4자가 모여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로 대표되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맞물리는 사안이다.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요구하는 것이 자국에 대한 군사위협 해소와 제제 안전보장인데, 이는 곧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 안에 남, 북, 미, 중 4자 정상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과 북미 간 국교 정상화 논의를 시작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는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반목과 대립의 냉전이 사라지고 협력과 공동 안보의 새로운 장이 열리며,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차원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 2018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셋째로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점을 선언문에 명시한 것은 6월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성과다. 비핵화를 합의문에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문제는 이번 회담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언론이 거론했던 사안이다.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명확하지 않기에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공격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였기에 핵 폐기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양자 담판을 통해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핵 폐기나 비핵화 논의는 북미 간에 논의할 사안이지 남북 간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한미 측의 의구심을 해소시켜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북미 간 사전 접촉 결과는 회담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기간’ 및 ‘비핵화 및 보상에 대한 기본적 원칙’ 등 핵심 사항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고, 구체적 이행 로드맵은 이후 후속 실무회담을 통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문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합의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날 수많은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걱정스러운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 고조로 이득을 보는 미국 내 군산복합체다.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에 또 다시 리비아식 해법을 거론하였다. 리비아식 해법이란 북한이 먼저 핵폐기를 일방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인데 이는 2005년 6자 합의인 ‘9.19 공동성명’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관되게 반대했던 방식이다. 볼턴은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군축차관을 4년이나 했는데, 군축차관이란 말만 군비축소이지 실제로는 무기 판매에 깊이 관여된 보직으로서 군수산업체와 긴밀한 커넥션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의의 이행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시간이 지체될 경우 북미 간 불신과 피로감을 배경으로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게 분명하다. 더욱이 색깔론과 안보상업주의로 정치, 경제, 언론의 기득권 동맹체제를 구축해 온 국내 수구보수 세력이 여기에 가세할 경우 이행과정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와 연대가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온 세계 크리스천들의 기도는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나타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자.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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