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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강정이다"해군기지 반대 11년, 이제 진상규명 싸움으로

2007년 6월 제주 강정마을이 제주해군기지 부지로 확정되기 직전, 5월 18일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가 결성되면서 시작된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올해로 11년째를 맞는다.

지난 3월 30일 성금요일, 강정마을 주민과 신자들은 ‘4.3은 강정이다’라는 주제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고권일 대책위원장은 “10년이 무참히 흘렀다. 구럼비 바위는 폭파 매립되었고, 해군기지는 구럼비의 무덤이 되었다. 강정은 아픈 마을, 패배한 싸움으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깃발 여전히 펄럭이고 한결같이 여전히 싸우고 있다. 10년을 버틴 우리의 몸뚱이가 구럼비고, 우리가 흘린 눈물이 할망물이다. 우리가 흘린 땀이 중덕 바당”이라는 기도문을 읽었다.

그동안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던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연행 700여 명, 기소 587건, 구속 50명, 벌금 3억 원, 숱한 부상 등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뿐 아니다. “뻔히 질 싸움”을 한다는, 해군기지가 완공된 지금은 싸움에 패배한 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이들에게 처음부터 가장 큰 두려움과 분노는 연행이나 구속, 벌금이 아니라 대대로 농사짓고 고기 잡으며 살던 마을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제주에서 가장 좋아 ‘일강정’이라 불리던 강정마을은 이전의 모습을 잃었다. 마을 지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물론, 친동기간보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 친구, 심지어 친지와 동기간의 관계가 끊어졌다. 그렇게 마을은 있지만 공동체는 두 동강 난 곳이 됐다.

강정마을 기도 천막에서 봉헌된 부활성야미사. 이 천막에서 미사를 드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미사는 계속될 것이다. ⓒ정현진 기자

지난 11년간, 강정마을이 겪은 모진 일들은 수없다. 주민 의견도 듣지 않고 결정된 ‘국책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주민과 이에 동참하는 이들은 “빨갱이”, “종북 좌파”가 됐다. 감히 국가 안보를 위한 사업에 반대한 ‘종북 좌파’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보장해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과 용역, 해군, 정부에 의해 강정에 살던 모든 생명은 밀려나고 짓밟히고 끌려갔다. 그리고 2016년 2월 말, 결국 해군기지가 완공됐다.

정부는 해군기지가 아니라 민군복합미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7년 3월 해군기지가 준공된 지 꼭 1년이 되지 않아, 미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스테뎀이 입항했다. 그리고 그 뒤 8개월간 외국 군함이 10번 들어왔고, 이 가운데는 11월 22일 입항한 미군 버지니아급 공격형 핵잠수함 미시시피호도 있었다. 이어 4.3 추모기간인 올해 3월 28일, 주한 미육군의 핵심부대인 제2 보병사단, 101공수사단 미군이 목격됐다. 이 부대는 베트남과 걸프전, 이라크전은 물론 IS군사 개입까지 한 특수부대다.

문정현 신부는 "강정마을의 갈등 해소와 공동체 회복은 진상규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강정주민의 저항 뒤 주민들에 대한 종북 세력 규정과 처벌, 마을 공동체 파괴, 생명권과 인권 말살, 그리고 묻혀 있는 진실.... 하나하나 다 쓰지 못한 일련의 과정은 4.3과 빼닮았다. 제주는 4.3 사건 당시에도 지금도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서만 존재하며, 정부는 제주도민의 삶을 지켜낼 의지가 없다.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던 2012년 3월, 당시 강정마을 대책위원회 고권일 위원장은 “해군이나 정부는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해 본 적이 없다. 민주적, 법적 절차를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은 그간의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설계 오류와 이중계약의 실체가 드러난 후에도 정부는 강정 주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이념의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이념 문제로 매도하면서 이끌어 가는 사업은 갈등해소에도,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만약 이대로 사업이 마무리된다면 강정 주민들과 반대하는 이들은 쓰라린 기억을 안고 영영 화합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 안보를 해치는 일이며, 그 주체는 국가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고, 지난 70년 동안 4.3사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정마을 십자가의 길 14처. 문정현 신부는 14처를 모두 서각으로 만들었다. ⓒ정현진 기자

최근 해군기지에서 열리기로 된 국제 관함식을 마을총회에서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과에 대해 고 위원장은 “강정마을 아직 살아 있다”며, “이미 미군 등 외국 군함이 드나들고 있지만 관함식을 계기로 더 쉽게 드나들 계획이다. 관함식 반대라는 주민 의견을 묵살한다면, 해군기지 폐쇄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강정마을 기도 천막에서 봉헌된 부활성야미사에서 문정현 신부는 “(해군기지에 따른 정비로) 기도 천막이 없어질 예정”이라며, “천막이 없어도 미사는 매일 봉헌됐다. 앞으로도 어디서든 미사는 봉헌되고, 싸움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해군 군종사제를 통해 강정마을 내 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문정현 신부에게 물었다. 이에 어떻게 답변했는지 묻자 문 신부는 “진상규명이 먼저다. 정부와 강정마을 등 당사자가 모여 진실을 규명하고, 그 위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며 진실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 신부는 “우리의 싸움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 싸운다면 반드시 변화는 올 것이다. 주저 없이 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가 완공됐지만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은 매일 기지 앞에서 평화의 춤을 추고 인간 띠잇기를 이어간다. (사진 제공 = 강정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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