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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4.3 항쟁, 진실, 화해” 강조명동성당에서 제주 4.3 추념미사 봉헌

4월 7일 주말을 맞아 천주교는 제주 4.3 추념미사를 봉헌하고, 많은 신자들이 서울 도심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여했다.

강우일 주교, “이제 4.3을 항쟁이라 불러야”

이날 오후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강론에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제주 4.3을 그 전의 민족사와 연결해 해석하며, 이 사건은 “항쟁”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4.3은 해방 뒤 미군정 하의 경제난, 청산되지 않은 친일경찰, 그리고 부정부패에 분노한 제주도민 3만 명이 모인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대회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주교는 “이 대회는 일제강점에 대해 벌인 끈질긴 저항과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며 “제주도민들은 일제에 이어서 다시 이 땅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또 다른 외세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1947년 3월 1일 대대적으로 전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의 촛불이 있기 전에, 1987년의 6월항쟁이 있었고, 그 전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또 그 전에 4.19혁명이 있었고, 4.19혁명 전에 제주 4.3이 있었고, 그 이전에 3.1운동이, 그 이전에 동학혁명이 있었다”면서 “이제는 제주 4.3에 '항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지금까지 우리는 4.3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며 “4.3의 3만여 명의 희생은 결코 개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순교자들의 행렬”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4월 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가 봉헌됐다. ⓒ강한 기자

고용삼 제주 평협 회장 등 제주교구 신자들 참여
“4.3 완전한 해결 위한 정부 노력, 미국 사과 있어야”

이날 미사는 신자들이 명동성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봉헌됐다. 제주교구에서 온 신자 250여 명도 함께했다.

제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고용삼 회장은 “4.3 추모를 전국화하는데 신자들이 앞장서서 동참하기 위해 서울 행사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가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미군정의 무력 진압에 대한 (미국의) 사과도 있어야 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고 회장은 자신의 친지 중에는 4.3 사건과 직접 관련된 사람이 없지만, 주변에는 친지 중 관련자가 없는 경우가 드물다고 덧붙였다.

4월 7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신자들이 "강정(제주도 강정마을)은 4.3이다"라고 쓴 현수막을 펼쳐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강한 기자

주교회의 민화위, 정평위, “진실과 화해” 촉구

미사 말미에 문창우 부교구장 주교(제주교구 제주 4.3 70주년 특별위원장)가 지난 4월 1일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가 발표한 '제주 4.3 70주년 기념 부활절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 이은형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는 “지난 역사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이 밝혀져야 하며,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풀려야 하고, 그동안 숨죽이며 살았던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 다시는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경원 신부(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는 “죽은 이와 산 이, 모두가 손을 잡는 화해의 역사가 되기를 기도한다”며 “제주 4.3 희생자들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상생을 원하실 것으로 확신하며 우리도 하나 되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4월 7일 강우일 주교, 고용삼 제주교구 평협 회장 등 천주교 신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3항쟁 제70년 광화문 국민문화제'에 참여했다. ⓒ강한 기자

이날 저녁 강우일 주교, 고용삼 회장 등 신자 다수가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개최한 '4.3항쟁 제70년 광화문 국민문화제'에 참여했다.

한편, 천주교 미사에 앞서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4.3 분향소에서 불교(4월 3일), 개신교(4일)도 추모의례를 했다.

현재 제주 4.3 특별법상에서 부르는 4.3의 공식 명칭은 '제주 4.3사건'으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봉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신고된 희생자는 1만 4000여 명이며, 잠정적 인명피해는 2만 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대다수는 진압군경과 서북청년회에 의해 학살됐다.

4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제주 4.3사건을 상징하는 동백꽃으로 장식한 우산을 들고 걷고 있다. ⓒ강한 기자
4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4.3 분향소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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