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신강협]

-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 함께 서 있는 교회를 상상하며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강우일 주교 덕분에 무명의 4.3에 ‘항쟁’이라는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2018. 4. 7 명동성당 4.3추모미사 중 ‘항쟁’ 언급)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이름은 아닐지언정 이제 어느 누구에게라도 ‘항쟁’이라는 이름을 제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사람들에게 불어넣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다.

이번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가톨릭 교회의 모습은 그간 교회가 보여 준 대사회적 행동에 있어 큰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특별히 제주지역의 교회로서 제주교구가 보여 준 일련의 모습들은 아주 고무적이다. 4.3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4.3을 알려 내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4.3 유족회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들에게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면서도 진실규명 노력에 큰 지지를 보내는 한편, 4.3 평화의 기도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십자가의 길을 평화공원에서 진행하는 등 다소 의외로 느껴질 만큼 전격적이고 전폭적으로 4.3항쟁 기념을 추도하였다. 이와 더불어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도 이에 동참하는 부활절 선언문을 발표했다. 아마 제주교구에서 그간 4.3항쟁을 십자가의 신학으로 이해하고 부활을 희망하면서, 교회에 품으려고 노력한 신학적 성찰과 고민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훌륭한 성과를 이뤄 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제주 4.3항쟁과 관련하여 과거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고 그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겠다. 지난 70년간 교회는 4.3항쟁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사회 분위기에 맞춰,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흐름에 맞춰 나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4.3항쟁에 대한 교회의 행동은 일관되지 못했고, 소극적이며 비주체적이었다. 교회내 사학자인 박찬식 선생의 글(2013.12, 제주 4.3 심포지엄)에 의하면, 70년 전 제주교회는 제주 4.3항쟁에 크게 관여하지도 그렇다고 비협조적이지도 않았으며, 대규모 피해지역에 교회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4.3항쟁에 기여한 공적도 있었다. 비록 미군정의 반공 정책에 부응하기도 하였지만 하느님 백성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고, 군경의 잔혹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따라서 교회는 그 당시 교회의 인식하에서 생겨난 한계점들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한계들 속에서 나름 의미 있는 지점들을 발견해 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 교회의 올바른 관점을 세우는 주춧돌로 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사의 증언자로서 도슨 신부, 나 토마스 신부, 스위니 신부의 서한들과 언론 기사들은 제주 4.3이 폭동이 아니며, 군경의 학살임을 명확히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제주 4.3항쟁이 하느님 백성의 고통이었음을 명확히 선언하고 그에 합당한 부활과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는 근거를 그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올바른 과거 역사의 든든한 받침돌 위에 세워진 교회라면, 교회의 피해 정도와 관여 정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며 절규했고, 기억을 삭제당하고 왜곡해야 하는 고통에 신음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교회가 응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바로 해 주어야 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해 드린 것처럼.

4월 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제주 4.3 70주년 추념미사가 봉헌됐다. ⓒ강한 기자

둘째, 제주 4.3항쟁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더불어 ‘반공’이라는 국시 앞에서 늘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기억을 삭제할 것 그리고 국가 폭력의 정당성을 수긍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왜곡할 것을 요구받았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러한 삭제와 왜곡은 고착되었고 4.3 이후 세대는 듬성듬성 비어 있는 불완전한 부모세대의 옛이야기, 그리고 4.3 어르신 세대의 공포를 물려받았다.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70년을 살았다. 천주교 신자들, 교구 사제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 대중에게 명확한 진실로 4.3항쟁을 알려야 한다. 더불어 교구 사제들에게도 4.3항쟁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이번 4.3 특별위원회의 활동이 분명 교구 사제단의 논의를 거쳐 시행되었을 것이 틀림없겠지만, 개별 본당의 4.3항쟁에 관한 행사와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교구에서 주어지는 행사가 본당의 행사로 이어지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위로부터 내려지는 사업은 신자 대중과 개별 교구 사제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보다 아래로부터 제주 4.3항쟁이 십자가의 고통임을 신앙고백하는 사목적 실천이 필요하겠다.

셋째, 이번 제주 4.3항쟁 관련 교회의 메시지는 대체로 ‘화해와 상생’이다. 올해 4월 2일에는 4.3 항쟁의 희생자들에게 교종께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4월 7일 4.3추모미사에서 강우일 주교와 고용삼 제주평협회장은 정부의 진실규명 노력과 미국의 사과를 주장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2월 22일 열렸던 4.3학술 심포지엄에서 한 교수의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는 필자를 분노케 하였다. 그는 “유공자와 희생자의 구분은 평등한 인간들의 죽음 앞에서 사라져야 하고, 그 삶을 둔 구별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제주도가 화해와 상생의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다는 극찬(?)을 쏟아 낸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필자가 분노한 이유는 피해자의 90퍼센트 이상이 군경에 의한 것이었음이 명확한 상황에서, 그리고 미군정 치하에서 발생한 일임에도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만 종용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진실이 없는 화해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거짓과 화해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이 없는 상생은 불신이 가득한 같은 공간에 그냥 있음일 뿐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진실 위에 화해와 상생을 세우는 이야기는 이미 교회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고 명확히 선언되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다시 한번 더 이 부분을 짚는 것은 교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조차 그러한 위선의 화해와 상생의 주장이 등장하는 등 거짓과 위선이 들어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늘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하겠다.

요새는 신이 난다. 그래도 교회가 그동안 억눌리고 고통에 신음해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다시 사회에 풀어 주니 너무 좋다. 마치 하느님나라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말과 행동을 듣고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4.3항쟁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백성들의 삶에, 속된 말로 ‘시원한 사이다’가 되는,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4.3평화공원. 끝없이 늘어선 희생자 묘역과 추모. ⓒ정현진 기자

신강협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은 제주 땅에서 농사짓고 있으며, 제주지역 인권운동에 투신하고 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들이 사람 답게 사는 세상,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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