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대학 복학 후 학생회 활동을 하며 나는 처음 제주 4.3을 알게 되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으며 ‘삼촌’이란 말이 제주서는 먼 친척 어른을 구별 없이 부르는 말임을 알았다. 빈 강의실에서 혼자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르며 그 비장함에 빠지기도 하였다. 지금은 삼청동으로 옮긴 인사동 학고재에서 강요배 화백의 4.3 전시를 보며 어렴풋이나마 그 시절 제주민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 4.3은 광주와 같이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어, 찾아 읽고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그런 먼 섬의 아픔이었다.

동백꽃은 피었고, 부활이 왔고 제주 4.3도 70주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제주교구 4.3 70주년 특별위원회의 70주년 부제가 ‘제주 4.3 죽음에서 부활로’다. 죽음과 부활, 제주 4.3 70주년 기도문은 그 죽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미 군정은 사람들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의 외침을 우선 먼저 듣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총칼로 막아버렸습니다. 무장대는 잔혹한 폭력에 견디지 못해 주님의 가르침을 잊고 폭력으로 대항하였습니다. 군경은 성급하게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단정하고 비무장에 저항도 하지 않는 수많은 우리들의 아빠와 엄마와 아들과 딸과 남편과 아내를 무차별적이고 집단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정부는 악행과 죄를 뉘우치고 사죄하기보다는 오히려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단죄하고 배척하였습니다.”(제주 4.3 70주년 기도문 가운데)

미 군정의 총칼로 저지른 과오, 군경의 무차별적인 집단 학살과 무장대의 폭력 대응. 그리고 이승만 정부와 이후 군사 정권의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단죄와 배척으로 4.3을 정리한다. 안타까운 죽음의 상황.

지난 2월 22일 명동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박명림 교수(연세대)는 제주 4.3의 화해와 상생 사례로 제주 애월읍 하귀 마을 사례를 말한다. 하귀 마을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정도로 당시 인명 피해가 컸다. 죽음과 비극, 고통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은 최종적인 4.3 진상 보고서가 채택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항일인사와 전몰 호국영령과 4.3 희생자 영령을 위해 각각의 위령비를 세웠다. 제주 4.3 평화재단이 만들어지기도 전의 일이었다.

제주 4.3 70주년 추념 미사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제주교구 4.3 70주년 특별위원회)

당시 만들어진 4.3 위령시는 그 상생과 화해의 의미를 말해 준다.

“죽은 이는 죽은 대로, 살아남은 이는 살아 있는 대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에 발 디디고 살아오기 50여 년. ...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제 하늘의 몫은 하늘에 맡기고 역사의 몫은 역사에 맡기려 한다. 오래고 아픈 상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함께 살아남은 자의 도리로 그 위에 한 삽 고운 흙을 뿌리려 한다. 그 자리에서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아 뽀얀 새살마저 살아날 날을 기다리려 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앞에 예외는 없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조차 겟세마니에서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으니. 신의 아들이었지만 인간으로 낳아 자라온 그 역시 죽음의 공포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마태 14,32)

제주 4.3 당시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 죽음의 길에 서 있었다. 십자가 길에 선 예수처럼. 죽음 당시 미처 몰랐을 수도 있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을 위해 죽음의 잔을 마신 이들. 하여 그들을 인간의 존엄한 인격과 자유와 평등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친 ‘순교자들’이라 말한다.

“4.3에서 사라진 수많은 무명의 희생자들이 비록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하였어도 자신들의 무의미한 것 같았던 고통과 죽음 안에서 이 세상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빛내는 순교적 여정을 걷고 있다. 반세기 이상을 어둠에 묻히고 침묵 속에 매장된 억울한 희생을 통하여 자신들 안에 감추어졌던 하느님 닮은 존엄과 영광을 이제 70주년을 맞이하여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4.3 영령들은 이 땅의 인간해방을 위하여 자신들을 아낌없이 봉헌한 하늘나라의 역군들이었다.”(제주 4.3 70주년 심포지엄, 강우일 주교 기조 강연 가운데)

봄날, 다시 동백꽃이 피었다.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아 뽀얀 새살마저 살아날 날이 되어 동백꽃들이 붉게 피었다. 죽음을 넘어 4.3 순교자들의 꽃이 피었다. 부활이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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