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56]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집은 잘 못 먹고 살기로 유명하다. 아이들 한창 클 때 괴기(고기)를 많이 먹여야 하는데 안 먹인다고, 다른 건 몰라도 우유를 먹어야 빨리 클 텐데 우유 안 먹여서 애들이 잘잘하다고, 뭣이든지 잘 먹어야 하는데 왜 과자 같은 걸 안 사 주냐고.... 온갖 걱정을 다 듣고 산다. 걱정은 때로 비난과 조롱으로 이어지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찍힌 채 먼 마을까지 소문으로 날아다니기도 하는 모양이다.

"애들한테 아무거나 안 먹인다면서요? 종교가 뭐예요?"

"청학동에서 살다 왔다던디? 이슬만 먹고 산다믄서...."

"왜 그렇게 짠하게 살어. 젊은 사람이 말여."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일일이 변명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마는데 가끔은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정말 유별나게 구는 건가? 아무렇게나 먹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음식을 너무 가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어쩌다 조미료 범벅 음식이나 바깥 주전부리를 먹은 날은 몸이 신호를 보낸다. 머리가 무겁거나 배가 아프거나 손등이 가렵거나... 맨 처음 한 입 먹을 때는 '세상에 이렇게 감칠맛이 넘쳐 흐르는 황홀한 맛이라니!' 싶은데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이 개운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해지면서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친정 엄마는 그런다.

"늘 먹어야 하는데 안 먹으니까 그래. 자꾸 먹으면 면역이 생겨!"

뭐지? 내성이 생기는 게 아니고 면역이 생긴다고? 왜 일부러 그런 면역을 길러야 하지?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 온갖 산해진미를 다 맛보고 음미하며 누리기 위해서? 하긴, 음식 앞에서 벌벌 떠는 자세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내 집에만 있을 때는 거리낌이 없지만 어딘가에 가서 함께 무얼 먹을 때는 이런 나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해서다. (여럿이 어우러져 있을 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재미가 얼마나 큰가!) 그런 이유로 밖에 나가 어울릴 일이 있으면 '어쩌다 한 번인데 뭐'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맛있게 먹기로 했다.

요즘 우리 집에서 인기 있는 간식 찐빵! 보통 빵은 갓 구웠을 때가 맛있지만 찐빵은 식어도 촉촉하니 맛나다. 먹었을 때 속이 편하고 똥 누는 데도 지장 없다. ⓒ정청라

얼마 전 마을 행사가 있는 날도 그랬다. 아이들이 보나 마나 바깥 음식에 침을 질질 흘릴 것 같아서 밥을 든든히 먹이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할머니들이 주는 과자 맛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한테 눈치를 주기도 하고 할머니들에게 그만 주라 당부를 하기도 했겠지만 그날은 모르는 척했다. 어디 한번 질리도록 먹어 봐라 하고 말이다. 그냥 슬그머니 과자 봉지 뒷면에 적힌 원재료를 확인하기만 했다. 밀은 당연히 수입산 밀이고, 쇼트닝, 팜유, 유화제, 정제염, 액상과당, 합성향료... 당장 눈에 들어오는 낱말만 보아도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도저히 알고는 못 먹는 재료들이다. 금쪽 같은 내 새끼들이 지금 저런 걸 먹고 있구나. 얼마나 맛있길래 그런가 하고 나도 하나 먹어 봤더니 과연 부드럽고 달달하고 고소한 것이 매혹적인 맛이다. 너무도 강렬한 유혹의 맛이다. 다만 목구멍에서 잘 내려가질 않는다. 그래도 좋다고 먹어 대는 아이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밥상 앞에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다울이는 억지로 꾸역꾸역 먹고 다랑이는 먹는 척만 하고 다나는 밥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예상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딱 한마디만 했다.

"엄마가 과자를 왜 싫어하는지 알아? 밥맛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야."

밥상 앞에서 신명이 나지 않으면 밥 차리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기운이 빠진다. 밥상이야말로 날마다 마주하는 최고의 선물 아닌가. 그런데 선물을 무거운 숙제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된다면 어찌 밥 짓는 일이 기쁨이 될 수 있겠는가.

다음 날, 다나가 똥을 눴는데 똥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평소에는 구리지만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이건 코를 톡 쏘는 독한 냄새였다. 게다가 시커멓고 끈적끈적하게 엉덩이에 달라붙어 있어서 씻어 내기도 힘들었다. 기저귀를 빨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다른 때는 똥이 기저귀에 달라붙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았다. 덕지덕지 들러붙어서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 통에 운동화 빠는 솔로 벅벅 문질러야 했다.) 역시 그랬구나. 나쁜 건 속일 수가 없구나.

원료의 성분이 뭐고 그게 어떻고 저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똥은 정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비틀거릴지언정 멈추지 말고 가야 할 밥의 길을 말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똥을 만나 이야기 나눠 보시라. 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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