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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가 나를 찾아온다[부엌데기 밥상 통신 - 59]

살림하는 주부들이 곧잘 하는 생각이 '오늘은 뭐 해 먹을까?'일 것이다. 나 역시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살아왔지만 점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왜냐,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곧 내가 먹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녁 준비를 하기 한두 시간 전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일단 밭에 가서 쪼그려 앉는다. 어디에 앉더라도 할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아무 데라도 자리를 잡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면 된다. 가령 딸기밭 앞에 앉았더니 딸기 포기 사이에 빽빽이 자라는 풀이 눈에 거슬린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딸기밭 풀매기에 들어간다. 검은 머리 사이에 있는 새치 뽑아 내듯이 풀을 뽑거나 꺾으면서.... 그러다 보면 딸기 포기들 속에 꿋꿋이 자라고 있던 왕고들빼기가 몇 개 보이고 대가 통통한 달래도 보인다. 자연스럽게 저녁 밥상 메뉴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오호, 달래 넣고 쌈장 맛있게 만들어서 왕고들빼기 쌈싸 먹으면 되겠다!'

자, 조금 더 영역을 넓혀서 딸기밭 옆 보리밭으로 가 보자.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보리 사이로 쑥이 자기 세력을 만들어 활발히 번지고 있는 게 보인다. 보리가 드리우는 그늘에서 자라서 그런가 아직까지도 잎이 꽤 보드랍다. '국거리로 딱이겠다, 국 끓이고 남은 건 갈아서 빵 반죽에 넣어야지' 하고 쑥을 캐서 다듬고 있자니 앞집 할머니가 보고 한소리를 하신다.

"뭐 할라고 쑥을 캐?"
"국 끓여 먹으려구요."
"아따, 요새 쑥은 안 맛나. 써!"
"쓰면 쓴 대로 먹을 만하던데요."
"그라믄 데쳐서 물에 담갔다가 우려. 우려 가꼬 국 낋여."
"왜요?"
"쓴맛 빠지라고."
"쓴맛은 맛 아닌가요? 귀찮아서 우리고 뭐하고 못해요. 그냥 먹고 말지."

이렇게 해서 권위자의 권유에도 굴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쑥국을 끓이기로 한다. 왜냐,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니까 누군가의 맛을 내가 굳이 재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게다가 돈 들여 쓴약 찾아 먹을 것 없이 늘 먹는 밥상에 쓴맛을 담아낼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 나는 꿋꿋하게 쑥을 다듬어 담고 그 옆에 기세등등하게 자라고 있는 소루쟁이 보드라운 잎도 몇 장 뜯는다. 어김없이 앞집 할머니가 인상을 쓰며 한소리를 하신다.

"그것도 먹을라고? 참말로 못 먹는 게 없네이."

우슬초 나물 무침. 국간장과 들기름 넣고 무쳤더니 (내 입맛에는) 시금치 나물보다 맛나다. ⓒ정청라

왕고들빼기쌈과 쑥소루쟁이된장국, 이것만으로 크게 부족할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물에 밥 비벼 먹고 싶다던 다울이 말이 생각이 난다. 눈을 크게 뜨고 쓰윽 둘러보니 텃밭 가장자리로 비죽비죽 올라온 우슬초가 보인다. '심은 사람도 없는데 저 혼자서 잘도 자랐네. 좋아, 나물거리는 우슬초로!' 그렇게 해서 저녁 메뉴가 다 결정이 되었다.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메뉴가 나를 찾아온 거라고 해야 맞겠다.

이렇게 사는 게 점점 몸에 익어 가다 보니 이제 더 이상 이웃집 텃밭이 부럽지 않다. 이맘 때면 시퍼런 시금치와 꽃송이처럼 탐스러운 상추가 얼마나 좋아 보였나. 나도 흉내 좀 내 보려고 몇 번쯤 애를 써 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상추니 시금치 우습게 보지만 그것도 거름기가 많은 땅이라야 잘 자라고 비료 한 주먹이라도 뿌려 줘야 부드럽고 탐스러운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솔직히 말해 내가 게을러서 씨 뿌릴 때를 놓치기도 했고, 가물 때 물을 줘 가며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노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저절로 돋아나는 풀들이 있으니 앞서 말한 왕고들빼기, 달래, 쑥, 소루쟁이, 우슬초 같은 것들! 심지 않아도, 따로 거름을 주거나 물을 주지 않아도 때 되면 저절로 찾아온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맛에 대한 감각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맛있는 먹을거리가 되어 주겠다면서.... 그 덕분에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안 심어도 굶지 않을 수 있으니, 있는 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그러고 보면 자연에 순응한다는 건 단순히 내 욕망을 억누르고 자연스러움이라고 하는 가치나 명분에 질질 끌려가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동적으로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 하는 데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으로! 그 철저한 수동성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건, 그 속에서 마주치는 맛의 세계가 훨씬 더 깊고 풍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쑥 갈아 넣고 쑥빵.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2차 발효 중)가 젤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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