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3월 25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르 11,1-10. 14,1-15,47

우리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중심적인 신비를 기념하는 축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구세주인 예수님

주님은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준비한다.(마르 14,1-6) 그분의 적들은 수년간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의 단순함과 정직함은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그분의 사랑의 선포와 실천, 특히 가장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분의 적대자들은 자신들의 증언과 논쟁이 지니고 있는 취약점 때문에 무력을 사용하게 된다.

두려움은 나쁜 충고자다. 이것을 알면서도 주님은 새끼 나귀를 타고 죽음을 향해 간다. 복음서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11,7-10) 바로 이 점이 백성의 지도자가 무서워했던 것이다. 이보다 앞서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처형될 것인지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기”(11,9) 때문이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진실을 감추려는 시도일 뿐이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진실을 공공연히 선포한다.(11,11)

거짓에 찬 논쟁으로 그들은 무엇인가 얻을 것이다. 아마도 전에 예수님을 찬양했던 어떤 사람들은 후에 빌라도의 질문에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르 15,13-14) 힘 있는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때때로 우리들도 이러한 모순들의 전형이 된다. 한순간에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환영한다. 또 다른 순간에는, 그분을 부인한다. 성주간은 바로 회심의 때이다. 우리의 삶이 좀 더 일관성 있고, 충실 하라는 복음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때다. 바라바보다 예수님을 택하는 때이며, 키레네 사람 시몬과 선한 도둑(15,21)과 연대하는 때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부인들처럼 용감해지고 단호해지는 때다.(15,40-41.47)

주님의 종

회심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자의 혀”(이사 50,4)를 주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의 추종자들로서 말하는 능력을 청하는 것이다. 주님의 종이 우리의 모범이다. 그는 어려운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할 말을 갖고 있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하는 귀를 갖고 있고, 부르심에 저항하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으며, 그의 옆에 있는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두고 어려움을 직면한다.(이사 50,4-7) 제자의 혀를 갖는다는 것은, 이사야의 아름다운 표현에 따르면, 우리 자신을 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복종시키는 겸손한 섬김의 태도(필리 2,6-10)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태도 없이, 메시지는 공허하고 도덕적인 권위가 없게 된다. 성주간은 우리의 결단을 강화시키기에 적절한 때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소리친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존재의 고통과 고립이 표현되는 말이다. 비록 예수님은 버림받음을 시편 22장의 시작 말로 외쳤지만, 고대의 전승에 따라 예수님은 나머지 모든 구절들을 당신의 말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불만이지만, 성경의 애도는 희망을 떨구지 않는다. 이 사실은 이어지는 구절(시편 22,5-6)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고통과 희망이다. 십자가 위에는 인간의 고통과 깊은 일치가 있었지만 또한 동시에 생명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있다. “버림받은” 예수님은 아버지의 손에 자기를 내어 맡긴다. 십자가로부터, 주님은 그분의 발걸음을 따르도록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예루살렘 입성', 피에트로 로렌제티, 1320년.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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