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공동체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봉헌하는 미사(세계평화를 위하거나 절대적 빈곤 퇴치, 혹은 공동체에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미사 같은)가 아니라면 일상적으로, 미사는 그 지향에 따라 크게 생미사와 위령미사(연미사)로 구분됩니다.

생미사는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미사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영적, 육적 건강을 기원한다거나, 병환으로 고통 받는 이가 속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청합니다. 혹은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반면, 위령미사는 우리 곁을 먼저 떠난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전엔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라고 해서 주로 연미사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발인 날에 하는 장례미사나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여 하는 기일미사나 모두 위령미사에 포함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추모미사는 누구를 위한 미사이며 언제 봉헌되는지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질문 받았습니다. 사실 추모미사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미사의 한 부류로 둘 수 있겠지만, 위령미사에 분류해 넣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오고 있는데 굳이 다른 용어를 써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년 9월 24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농민 백남기 씨(임마누엘)의 1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저는 그래서 추모미사를 위령미사의 한 종류로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상실했으나 기억해야 할 누군가를 위해 봉헌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위령미사로 봉헌해도 되겠습니다만, 미사에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다른 조촐한 의식을 포함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미사 전례의 어떤 한 부분에 기억하고자 하는 고인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추모예식을 끼워 넣는 것입니다. 이때는 주례 사제와 상의하여 미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누군가가 죽고 나서 시신이 집을 떠나는 (요즘은 보통 병원을 떠나지만) 발인 날 드리는 장례미사 이전에 망자를 위해 봉헌하는 미사는 추모미사이고, 장례미사 이후에 봉헌되는 미사는 위령미사라고 구분하시나 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구분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장례미사 전과 후라는 어떤 특별한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것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들끼리 상의하여 기준을 정하고 용어도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위령미사는 산 사람을 지향에 두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서든 봉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추모미사라는 단어를 쓰신다면) 추모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곁을 떠난 이에게 의미 있는 날, 보통 그 사람이 죽은 날을 기억하여 미사를 통해 그를 기억하고 영원한 평화를 기원해 주는 것입니다.

혹시나 추모미사를 성직자나 수도자, 유명인들을 위해서 봉헌하는 미사라고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세태가 그런 면을 보이고 있으니 아주 큰 오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하지는 않았어도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을 위한 추모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준 사람일 것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아예 가족도 친구도 없이 길에서 사망한 노숙자를 위해서도 우리는 추모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던 시절,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Aux captifs la libération)이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노숙인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때 종종 우리와 안면 있었던 이가 길에서 삶을 마감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렇게 죽은 이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우리 대신 겪어 내고 떠난 이들이었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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