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2월 4일(연중 제5주일) 마르 1,29-39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의 한 도시인 카파르나움에서 사명을 시작한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으로 갔다고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말한다.(마르 1,21) “새로운 가르침”이라고(1,27) 불리는 그분의 메시지는 어떤 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나 의심할 바 없이 다른 이들로부터는 거부된다.

제자들은 섬기는 사람들이다

같은 날, 회당을 떠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한 친구의 집으로 간다.(1,29)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르코가 언급한 첫 번째 치유를 행한다. 그분은 베드로의 장모를 생명의 하느님나라 징표로서 치유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이 세상에 왔다. 그런데 이 일을 그분은 휴식과 기도의 날인 안식일에 한다. 허나 바리사이들은 이날 모든 일을 금지함으로써 그들의 규칙을 꼼짝 못하게 하는 보호 옷으로 변질시켰다. 마르코 복음서가 수차례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은 종교를 핑계 삼아 공허한 형식을 지키기보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제자는(베드로의 장모) 섬김으로 받은 선물에 응답한다.(1,31) 모든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이 여인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즉, 우리의 삶을 이웃에 대한 섬김으로 이루어갈 때 우리는 하느님나라를 참으로 환영하는 것이다. 욥기는(욥 7,1) 우리에게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라고 말한다. 치유를 통한 생명의 징표는 계속된다.(마르 1,34) 치유는 예수님이 그분의 가르침을 인증하는 방법이다. 그 당시 병자들은 죄인들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 다가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수와 베드로의 장모', 렘브란트.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기도하고 복음화하기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기도하기 위하여 나간다.(1,35) 수차례 복음은 관상 속에서 주님과 일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기도의 순간들을 말하고 있다. 이 순간들은 복음화에 대한 관심과 연결된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1,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공동체의 강력한 행위다. 구세주는 카파르나움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순회의 교사로서 갈릴래아 전역을 다닌다.

바오로는 복음화의 열렬함에 대하여 말한다. 복음을 선포하러 왔다고 주님께서는 마르코 복음에서 말씀하신다.(1,38) 바오로는 메아리친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이다.”(1코린 9,16) 우리는 자유롭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 태도로, 다시 말하자면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선언해야 한다. 무상으로 받은 것은 자유롭게 그리고 비이기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이 영적인 자유는 바오로로 하여금 그가 복음을 선포했던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해 주고 그들의 조건을 포용하며 그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 준다. 바오로는 복음 선포자들에게 필요한 황금률을 제시한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나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다.”(1코린 9,22) 이렇게 하며 욥처럼 버려졌던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하느님나라의 희망은 그들 안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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