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월 28일(연중 제4주일) 마르 1,21-28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래야 활동 중심지다. 제자들을 동반하면서 예수님은 하느님나라의 오심을 선포한다.

새로운 가르침

예수님은 그분의 가르침의 시간과 장소를 안식일에 회당으로 선택하는 도전을 감행하는데,(마르 1,21) 이런 일은 복음에 보면 자주 일어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선포와 율법학자들의 가르침 사이에, 사랑의 초대와 종교적 형식주의 사이에 차이를 본다.(1,22) 예수님의 행위는 종속, 거짓 이념, 거짓 신들, 그리고 기만적 행위들의 굴레를 풀어 주는 해방의 특징을 보여 준다.(1,23-26) 주님께서는 하느님나라의 도래에 참여하라는 -바오로의 표현에 따르면,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되라는- 초대에 헌신할 수 있도록 우리가 자유롭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이 들은 것은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1,27)같이 보인다. 변화에 닫혀 있는 사고에 새로운 것은 가짜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랑의 메시지는 늘 새롭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는 우리가 이기심과 형식주의를 버리고 관대함과 일관성의 길을 걷도록 초대하기 때문이다. 마르코가 표현하듯이, 예수님은 지금 사명의 초기에 있고 이런 맥락을 따라 사명을 성취한다. “나자렛”의 예수로 알려진 그분은,(1,24) 모든 악의 세력에 반대한다. 그분의 생명은 죽음의 현존을 밀어낼 것이다. 그분의 증언은 알려지고 “주변의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1,28) 우리는 평화와 정의의 하느님나라를 갈릴래아를 넘어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그리고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에까지 선포해야 한다.

'가르치는 예수', 제임스 티소. (1886-1894)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예언자와 벗

예언자는 우리들 중 하나이고, 사람들 중 한 사람이며, 친구로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도록 주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다.(신명 18,15) 예언자의 이런 역할을 통하여, 사람들은 주님께 충실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하느님은 그분이 보내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은 말씀을 마련해 주신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말해 준다.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18,19)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이 예언자들과 똑같이 행동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8,20) 하느님께서는 또한 세계 도처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라고 예언자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오늘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최고의 예언자이시고, 그분의 예언은 우리 삶의 규범이다. 그분의 가르침은 항상 우리에게 새롭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예언자들에게 위탁하신 말씀들에 우리가 어떻게 귀 기울이는가를 알 수 있도록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가 요청하고 있는 내용이다.(1코린 7,32-35) 다른 책임들이 아무리 고결하고 중요하다 해도, 그것들은 가장 근본적인 과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과제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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