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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허물기.... 새로운 판 짜기를 위한 숨 고르기[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4] "무경계", 켄 윌버, 정신세계사, 2012
"무경계", 켄 윌버, (김철수), 정신세계사, 2012. (표지 제공 = 정신세계사)

2016년 7월, 흑수저들을 개, 돼지로 폄하했던 교육부 관리의 취중 발언으로 온 나라가 들끓을 때, 평생을 침팬지들과 지내온 제인 구달의 삶과 가르침을 소개하며 인간다운 생활의 자세를 반성했다. 그 기억을 뒤로 일 년 반이 지났다. 책과 함께 세상을 읽기보다 살아있는 광장의 역사를 만드느라, 거대한 변화의 파도로 들이닥친 2017년은 살아내기에도 벅찼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올해 2018년의 목표를 간단하게 정했다: 제대로 밥값을 하며 살자! 그러니 다시 돌아와 글을 통해 소통하고 나누는 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고마움이다.

개, 돼지의 수준으로 폄하되었던 시민들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정권을 교체한 것은 깊이 억압되었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스스로 확인한 역동적인 실험이었다. 마치 유다의 에제키엘 예언자가 골짜기에 널린 죽은 뼈에 숨이 돌아오고 피가 도는 환시를 보았다면,(에제키엘 37,1-14) 지난 겨울부터 한국에서 목격한 것은 자유와 책임을 함께 누리는 성숙한 시민들이 살아난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난 뼈들이 통일을 향해 걸음을 떼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37,15-28) 여전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역사는 거대한 파도타기를 하듯이 벅차다. 오래 만나지 않아서 엇박자가 생기기도 하는 이와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애증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타기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신학적 차원에서.... 우선 개성과 존엄성을 가진 개별 인간으로서 ”나“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는 켄 윌버(Ken Wilber, 1949–)는 통합심리학자와 사상가로서 인간이해의 모든 방법론을 분석하고 동서양의 사상을 통합하여 인간의 패러다임을 종합하였다. 행복하게도 그의 저술 대부분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국내에서도 독자층이 확대되고 있다. 그의 통합적 관점을 펼쳐 낸 "무경계"는 그의 저술들 중에서 사상적 틀을 소개하는 가장 대중적인 2001년의 작품이다. 서문에서 그는 “당신 자신의 근원적인 자각과 정체성 자체는 본래 아무런 경계도 없다. 당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은 물질로부터 몸, 마음, 혼, 영에 이르는 의식의 스펙트럼 전체에 걸쳐 있다”고 전제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나”를 이해할 것인가?의 주제는 의식의 내면에서 우주적 차원에 까지 이어진다.

21세기적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지구 역사적 인간 이해와 달리 우주적 지평을 바라보며 펼쳐진다. 과학이 발달한 덕택이기도 하다. 그의 관점을 빌어 하고 싶은 제안은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경계들의 역사를 분석하고 그 틀을 흔들어 보자는 것이다. 제대로 흔들기 위해서는 늘 성령의 힘이 앞장서 우리를 인도해야만 가능하다는 것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이 에제키엘이 보았던 인간과 신이 함께 만들어 가는 서사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성령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평화의 약속을 향한 실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 온전히 평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고, 그를 위해 사랑과 지혜의 힘(=성령)을 모아야 하는 위태로운 기회의 순간이 우리가 서있는 자리의 좌표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느 수준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

그림과 조각 등에서 시작된 소통수단을 사용하면서 인간과 세상을 넘어서는 우주와 무한의 신비를 설명했던 방식을 오늘날 우리는 종교라고 부른다. 종교는 몸에서 시작하여 개별자의 범위를 넘어서 우주와의 일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체성과 그가 맺는 관계의 성격, 삶의 지평까지를 해명한다. 42억 년이 넘는 지구의 나이에 비해 인간이 지구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00만 년 전이며, 언어, 도구 등을 사용하기 시작한 최근의 신석기는 불과 1만 년 전이라 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종교적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종교들은 인간의 삶 이전과 죽음 이후에 관심을 갖고 현세의 삶을 우주적 관계 안에서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큰 코끼리의 몸을 만지는 장님들처럼 일상과 우주의 실체를 더듬어 가는 종교 활동은 곧 "지금" "여기"에 살아서 활동하는 인간 "나"를 이해하기 위한 관계의 맥락을 찾아내기 위한 놀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렇듯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한 조각 퍼즐처럼 다양한 유산들이 갈등과 통합을 통해서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조각들을 한 줄로 꿰는 통합적 인식의 지평을 전망한 켄 윌버는 역설적으로 해체의 방법론을 사용한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세분화된 각 인간이해의 관점들과 방법론들이 동시에 공존 가능할 뿐 아니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시작된 인간이해의 방법들은 그 인식의 경계를 허물 때 "나"로 인식하던 인격(페르소나)이나 그림자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경계와 갈등이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질문한다: 당신은 이러한가? "영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지 않은"

또 다시 그는 질문한다:

“삶에 왜 대극이 생겨나는지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왜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이 한 쌍의 대극 중 어느 한쪽인 것일까? 왜 모든 결정은 대극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욕망은 대극에 기초해 있는 것일까?”(45쪽)

그리고 15세기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니콜라이 쿠자누스와 20세기 생물 물리학자인 루드비히 폰 베르탈란피의 관점을 빌어서 이야기를 펼쳐 낸다.

“‘대극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전적으로 분리되고 화해 불가능한 반대 극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본래 하나이자 동일한 실재의 ‘상보적 측면들’인 것이다.... 우리가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원인과 결과, 과거와 미래, 주체와 객체와 같은 사물과 사건들이 실제로는 단일한 진동, 단일한 파도의 마루와 골에 해당한다. 하나의 파도는 그 자체로 단일한 사건이지만, 마루와 골, 최고점과 최저점이라는 대극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화이트 헤드가 말한 것처럼 우주의 개개 요소들은 ‘근저의 에너지 혹은 현상’이 진동하는 양상, 즉 밀물과 썰물인 것이다.”(57-58쪽)

아마도 그렇다면 평화는 생명이 갖는 역동성의 근저이며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21세기의 종교들은 "신비"라는 지하 주차장을 공유하는 거대하고 높은 아파트 단지에 비유할 수 있을까? 높이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솟아오른 종교들의 기반에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시작된 인류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지하의 공동구역에 남겨져 있다. "신비"라는 이름 아래 덮어서 어두운 곳에 밀어 둔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을 되돌아볼 때다. 신비와 그에 관심을 갖는 인간의 시선을 함께 연관해서 영성이라고 부른다. 각 종교에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지만 그 다양함은 달빛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에 비유되기도 한다. 종교의 사다리를 내려와 신비의 베일을 벗기고 실체를 만난 이들은 달빛 아래 함께 세마(이슬람 수피파의 춤)를 추는 남성들이거나 함께 강강수월래를 하는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의 영성은 근본적으로 관계적이고 사회적이다. 춤을 추며 나의 경계를 허물고 우주와 일치가 되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열린 이 순간을 겸손과 기쁨으로 맞이하여 진솔한 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질로 이루어진 땅의 생기와 온기를 살아내고 살리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들이 정치, 혹은 경제로 이름 지어진 것은 신비와 관련을 맺는 인간이해의 통합적 방법인 종교가 해체된 이후의 일들이다. 이제 그 이름들을 통합하고 근저의 신비를 향한다면, 대립각들을 면을 구성하는 부분들로 이해할 수 있다면, 새로운 인식의 그물로 새로운 판을 짤 수 있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생존방식이다.

치료기법과 스펙트럼의 수준 (이미지 출처 = "무경계", 42쪽)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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