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5]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 김윤선, 소명출판, 2016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어떻게 그 긴 겨울을 지냈던가!

해마다 2월은 축축하고 조용하게 봄을 맞이하며 겨울의 추위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녹여 내곤 하였다. 그런데 2018년 2월에 왁자지껄 한바탕 소란을 떨며 오는 봄은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오는데, 그 소리가 매우 요란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겨울 강기슭에 칼바람에 밀려와 와글와글 파도치던 얼음 부스러기들 소리보다 서슬 퍼런 동장군의 기세를 무너뜨리고 녹여 내는 봄의 소리가 더 소란스럽다.

신난다! 봄이다!!!

얼음이 녹기도 전에 올림픽 축제의 불꽃이 터지고 잔치가 시작되었다. 잔치 뒤에 빚은 남을 테지만, 폭죽을 하늘로 쏘며 노는 것은 전쟁의 불꽃놀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흥겨운 한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 대신 올림픽 경기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 놀이판의 무대 뒤에서는 늘 그렇듯이 더 치열한 정치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놀이판에는 여성들이 선봉장으로 등장하는 부드러운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세는 아니다. 암컷 정치의 국정농단을 이미 경험한 터라 여성이 놀이판의 이미지로 사용된다 해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게다가 그 정치의 물밑에서는 냉혹한 경제 전쟁이 녹아 넘치는 강물보다 더 빠르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을 시시각각 뉴스로 전해 듣고 있다.

봄의 소리. ⓒ최우혁

곧이어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많은 사건에 연관되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성폭력을 당하고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쏟아 내는 울분의 고백 'Me Too'와 'With You'의 연대로 고위직 공무원, 거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문학과 연극과 사회 각층의 수컷들이 와장창 무너지는 장면을 올림픽의 금메달보다 더 신나게 목격하면서.... 이 소란스러운 봄을 지나게 될 것이다, 마침내 부활을 향하여!

사설이 길어졌다! 이 시끄러운 봄, 설명이 필요한 봄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란스러운 봄을 진정시키며 함께 읽고 싶은 책은 오래전부터 소개하고 싶었던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이다. 1911-57년까지 <경향잡지>에 수록되었던 신앙고백의 양식으로 엮은 글 300여 편을 현대 한국어의 표기법으로 정리하여 옮기고 주석과 해설을 달아서 한 시대의 문학양식과 언어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훌륭한 작품이며, 신앙의 성숙을 위한 영성 서적이기도하다. 이미 출판된 2016년, <가톨릭 지금여기>에 저자인 김윤선 교수와 함께 소개되었지만, 그 두께와 내용의 무게 때문에 만만하게 도전할 수 있는 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문과 목록, 찾아보기를 합해서 1000쪽 가까이 되는 책이지만, 대개의 미담은 3쪽을 넘기지 않는 짧은 이야기들로 엮여 있기에 매일의 복음을 읽듯이 읽는다면 신앙의 선배들이 마주한 폭력의 상황들, 그 고통 안에서 신앙을 지켜 나간 이야기에 푹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들 안에 들어가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근육에 강한 힘줄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미담’(아름다운 이야기)은 평범한 천주교인들이 신앙을 키워 갔던 이야기들로 일제 식민지시대에 이야기 형식을 빌어서 전개된 천주교 문학이며 민중들의 신앙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야기들을 허구처럼 꾸미거나 허구 이야기 안에서 진실을 말해야 했던 식민지 상황에서 병인양요를 배경으로 하는 군난 때의 미담과 박해시대의 미담은 옛적 고통에 빗대어 현실의 고통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힘이 되었고, 근대화 과정에 있던 천주교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적 서사로서의 가치를 간직한다.

“일상 안에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힘이 결국 큰 권력 앞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힘으로 발현됩니다. ‘미담’에는 독립운동 이야기, 식민지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독립을, 친일에 대한 거부감을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을 때, 논설이 아닌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시대의 아픔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입니다.”

“천주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을 이어 갔는지, 신앙 선조들을 기억했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 좋으면 좋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분들의 삶을 우리의 시간으로 호출해야 한다”며, 그것이 “신앙의 유산”이며 “유산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 박해 시대에 비하면, 일제 강점기의 교회와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연구와 대중적 관심 모두 부족하다는 것이 김윤선 교수의 진단이다. (저자 대담 중에서)

"다시 읽는 천주교 미담 1911-1957", 김윤선, 소명출판, 2016. (표지 제공 = 소명출판)

첫 번째로 소개되는 미담 ‘천주가 위태한 지경에 있는 자를 안위하심’은 17세기 일본에서 배교를 강요당한 가족의 이야기로, 주인공이 굳센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34-36쪽, <경향잡지>, 1911.1. 221호) 엮고 지은 김윤선 교수는 해설에서 “첫 번째 미담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 점이 일제 강점기 <경향잡지>가 통제의 주체였던 일본을 의식한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주인공을 특정 국가의 국민이기보다는 국가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신앙인의 모범으로 강조한 점이 중요하다고 풀이했다.

미담 중에는 병인박해 때 열두 살도 되지 않은 삼남매가 모여 앉아 순교할 궁리를 하는 장면도 있다.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을 나뭇단 속에 숨어 계시던 신부님이 듣고 기록했다는 상황 설명이 있다.(713쪽, <경향잡지>, 1931.9. 717호) 또 헝가리의 은수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악인에게 분노하지도 않고 온유함도 잃지 않으며 악인이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었다는 보람된 결말을 소개한다.(367-369쪽, <경향잡지>, 1918.1. 389호) 비폭력과 온유함으로 신앙의 결을 이어 갈 것을 외국 신앙인들이 살아 낸 모습으로 소개해서 은유적으로 일제식민지 억압 아래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미담 안에서 신앙을 지켜 나가는 교우들의 모습은 매우 소박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군난 때의 미담 한 대목을 소개한다:

“위에 말한 외인과 같이 호기심이 많은 외인이 교우들의 만과통경하는 것을 몰래 가서 듣는데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고 다만 덕서도문(성모호칭기도)에 모친이여 모친이여 하는 말은 알아들었더라, 그러한데 조물주의 모친이여, 구세주의 모친이여 하는 말을 조물조물 모친이여 구석구석 모친이여로 알아듣고 그 자도 역시 짓궂은 자이였던 고로 ”조물조물 모친이여 구석구석 모친이여“ 하며 도망갔더라.”(620쪽, <경향잡지>, 1929.3. 658호)

오랫동안 한국 천주교 안에서 잊혀졌던 ‘미담’, 순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이야기책으로 출판된 것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 내고 천주를 모셨던 박해 시대 선조들과, 그 증언들을 이야기로 곱씹으며 일제 식민지의 고통을 삭여 낸 선배들이 영적 건강을 염려하며 미사를 드리는 오늘 한국 천주교의 신자들과는 사뭇 다른 결의 신앙을 실천했던 것을 깨닫게 한다. 순교자를 신앙의 선배로 모시고 살아가는 21세기의 우리에게 신앙의 일상, 순교의 신앙은 어떤 결로 구성될 수 있을까?

김윤선 교수는 ‘미담’에는 일제 식민 지배의 현실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은 없고, 대부분은 미사 참례의 중요성, 성인 공경 등 전통적인 가톨릭 신심을 담고 있는데 오늘날의 독자는 ‘미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그리고 ‘친일’과 ‘독립운동’이라는 거대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앙의 힘, 순교자가 아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미담’ 연재는 1957년 6월 ‘예수성심의 허락하신 은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김 교수는 ‘미담’ 연재는 1950년대에 끝나지만, 그 맥은 1939년부터 연재가 시작된 윤의병 신부의 미완성 순교역사 소설 “은화”, 그리고 해방 뒤 나온 다른 소설들로 이어진다고 본다. 또한 예수의 성심으로 ‘미담’이 끝나는 데도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다고 평가한다: ‘미담’을 통해 예수의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고 기억하고 배우는 것. 비록 이것이 ‘미담’ 난을 만든 이의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예수의 마음!

신앙을 간직했기에 옹기장이로 숨어 살아야 했던 이들의 19세기,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지만 식민치하의 굴욕을 겪어야 했던 이들의 20세기,
태극기가 있음에도 한반도기를 흔들며 분단 상황을 인내해야 하는 이들의 21세기.

어느 봄날에 얼음이 녹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철책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이산가족들이 여전히 이 봄에 우리 곁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을, 이제는 모두 늙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북한을 탈출해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된 젊은이들이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평화의 가교로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또한 곳곳에서 보인다. 그 추위에 무심히 서 있던 목련 나무는 솜털 가득한 꽃망울을 키워 올리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 꼭대기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 치며 눈이 내린다.
아침에는 해가 뜰 것이다. 봄빛 가득한 햇살로 하얀 세상을 비추며~
눈도 녹을 것이다.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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