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3]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50년", "인간의 그늘에서"

며칠 전 초복을 맞으면서 긴 여름이 본격적으로 그 본때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오늘도 국민안전처에서 긴급문자가 핸드폰에 떴다. 폭염주의보! 바야흐로 개들의 수난 시기가 시작되는가 싶다. 개들의 수난과 함께 떠오르는 사건은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 기획관의 취중 발언이다. 술에 취해 경계심이 풀어져 평소의 생각이 독 두꺼비처럼 튀어나온 것이리라. 99퍼센트의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한 그의 취중 고백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고, 오늘은 파면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주인의 가슴팍을 공격하다 몽둥이로 맞은 비루한 개꼴이 되었으니, 개, 돼지가 아닌 1퍼센트 지배 계급에 진입하려던 그의 꿈은 아마도 악몽이었나 보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을 때, "개, 돼지만도 못하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순리를 따라 사는 동물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이 제 몫을 묵묵히 살고 있는 동물들을 폄하하여 인간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교활한 인간의 술수다. 개가 개답게, 돼지가 돼지답게 사는 것이 비하의 이유가 되는가? 왜? 개, 돼지가 어때서?

▲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50년", 제인 구달 연구소 지음, 김옥진 옮김, 궁리, 2011. (표지 제공 = 궁리)
국민을 계급제로 나누고 개, 돼지로 만들려는 인사가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을 주무르고 있었다는 것이 경악일 뿐이다. 누구는 그의 논리를 알고 보니, 이제까지 정부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해된다는 평을 내기도 했다. 개, 돼지가 아닌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와 '연탄 한 장'에서 연탄만도 못한 인간의 교활한 목숨을 자책한다.

온 국민이 받은 모욕감, 그리고 국민적 수준에서 동물들을 학대해 온 자책감을 함께 곱씹으며 이번 달에는 제인 구달과 그가 만난 침팬지들을 소개한다. 과연 우리가 인간 대접을 받을 만큼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인간이란 이유로 짐승들을 어디까지 폄하할 수 있는가를 반성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과연 다른 생물들과 공존할 능력이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인간의 공존 능력이 없다면, 지상의 평화를 위해서 인간종이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지구는 인간이 독점한 별이 아닌 까닭이다.

1960년 7월 14일, 24세의 용감한 제인은 그의 어머니 밴과 함께 야생 침팬지를 찾아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지역의 곰베 강에 이르렀다. 그리고 반 세기가 넘는 그의 활동을 통해서 인간들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만났고, 자연을 만나는 법을 배웠으며, 마침내 인간의 오만함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활동 50년을 간추려 담은 화보집,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50년"은 그래서 침팬지가 아닌 인간의 성장과 성숙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의 겸손하고 끈기 있는 애정이 인류의 시야를 넓히고 성숙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으며, 그의 연구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동물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 지음, 최재천, 이상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표지 제공 = 사이언스북스)
그가 쓴 많은 책들과 기록물들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다른 한 권은 "인간의 그늘에서"다. 197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곰베의 침팬지 플로의 가족을 중심으로 침팬지들이 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침팬지들은 대략 50년 살 수 있으며, 침팬지 부족에는 으뜸수컷이 지배하지만 모계 혈통으로 가족을 형성하고 인간의 일생과 비슷한 주기의 삶을 살아간다. 암컷 침팬지는 성년이 된 뒤 5년에 1번 가임기를 갖게 된다. 인간의 아이처럼 8개월의 수태기간 이후에 태어나는 어린 침팬지는 엄마 품에 달려서 살거나 등에 업혀 다니고 3년 이상 젖을 먹는다. 인간처럼 침팬지 또한 동물을 잡아먹고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알 뿐 아니라, 포옹하거나 털 고르기를 통해서 애정을 표현한다. 또한 어미를 잃은 어린 침팬지를 입양해서 키우기도 하며, 수컷들은 싸움을 통해서 우두머리를 바꾸고, 집단 싸움을 통해서 한 집단을 전멸시키기도 한다. 다른 침팬지의 아기를 잡아먹는 암컷도 발견되었다. 인간과 유전학적으로 1퍼센트의 차이가 있다는 침팬지들이 인간과 유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제인은 관찰 대상인 침팬지를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렀고, 그가 만난 수많은 침팬지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이름과 함께 소개되어서 인간과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공감 능력을 보여 주었다. 늙었지만 아이를 아주 잘 키우는 플로와 큰딸 피피, 사춘기의 아들 페이븐과 피건, 어린 아들 플린트, 제인의 귀중한 침팬지 친구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 공격적인 수컷들에게 빈 깡통을 흔들며 허풍을 떨어서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한 마이크와 그에게 밀린 골리앗 등, 서열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인사에서 그 서열을 확인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야생 침팬지 사회를 인간들에게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은 침팬지와 다른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할까? 제인 구달의 생각을 들어 보자.

▲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나는 아주 최근에 와서야 문득 침팬지와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비슷한가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의 고유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침팬지와 매우 다른 방법으로 자아를 인식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줄곧 진실을 추구해 왔지만 신과 영혼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밤의 적막 속에서나 떠오르는 태양을 홀로 바라보며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가 있을까? 그리고 우리들 중 영혼의 영원함을 믿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더 풍요로울 것인가. 그렇다. 인간의 그림자가 침팬지를 뒤덮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인간의 그늘에서", 385-386)

▲ 제인 구달과 침팬지. (이미지 출처 = www.youtube.com)
제인 구달의 보다 더 큰 공로는 인간에게 억류된 동물원의 침팬지, 즉 침팬주들이 다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한 것에서 시작하여 야생동물과 파괴된 자연의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여전히 그 희망을 위해 노력하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람의 인권처럼 동물의 권리, 나아가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의 권리인 생명권에 대해 고민하고 각각의 개체들이 고통에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식한다면,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공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든지 인간이 침팬지를 억압하고 동물원 우리에 가두듯,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짐승처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영혼을 가지고 신의 향기를 맡는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겠다. 게다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니 개, 돼지만도 못하다는 것이 당연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HD0hUjOX6nQ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립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립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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