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경동현] "신학을 다시 묻다", 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비아, 2018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학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일반인은 제외하더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신앙인들에게 신학은 어떤 의미인가? 연구소 후원자 모집을 위해, 혹은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가톨릭 평론> 구독자 모집을 위해 종종 본당에 나갈 때마다 만나는 본당 신자들에게 신학연구소나 신학 잡지는 그 아무리 대중적이고 쉽다는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나와는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리는 모양이다. “오늘날 신학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근래에 와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 있는 이들도 신학의 쓸모에 대해 의구심을 던진다. 예전에는 신학자라고 하면 적어도 교회에서 만큼은 존경을 받았지만, 오늘날 상당수 교인은 신학자를 복음을 일부러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28쪽)

신학자 후카이 토모아키는 그리스도교가 소수 종교인 일본에서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신학’이라는 학문이 사회 속에서 감당해 온 역할은 무엇인지 시기별로 그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신학은 사변적인 것만을 취급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신학은 교회라고 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가진 실천적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실천의 장소로서의 교회가 어떠한 정황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신학’이 지닌 학문적 성격은 상당히 달라진다. 가령, 국민 대다수가 교회에 속해 있는 나라에서는, 신학은 공립대학교에 신학부를 가질 수 있게 되며, 사회에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교회가 일부 집단으로 존재할 경우, 신학은 소수 집단만을 위한 폐쇄적인 학문으로 간주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도 크지 않다.

신학의 탄생

"신학을 다시 묻다: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비아, 2018. (표지 제공 = 비아)

신학이라는 학문의 탄생은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나라의 도래는 이루어지지 않고, 종말이 지연된 것과 관련이 깊다. 세상이 끝남으로써 하느님나라가 온다고 생각하면 현재 세상의 질서, 즉 로마제국이라는 존재를 정치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교회는 천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하느님과 지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지배자를 하나로 묶었다. 이렇듯 하느님나라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반제국적이고, 소수종교에 불과했던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교회는 아직 세상 문제에 관해 말하려 할 때 적절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종교 공동체 안으로는 자신들의 믿음을 동시대 문화 환경에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고, 외부를 향해서는 예수가 전한 가르침을 헬라 사상과 헬라어를 사용해 사상적, 문화적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맡았다.(61쪽)

중세 신학: 시간과 죽음을 지배한 교회

경제사학자인 앙리 피렌은 로마제국과 함께 성장한 그리스도교가 지중해 지역을 버리고 서유럽으로 북상한 배경으로 로마제국의 붕괴 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슬람교가 등장해 그리스도교가 쥐고 있던 패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서유럽을 그리스도교화할 수 있었던 이유로, 교회가 ‘시간’과 ‘죽음’의 통제를 통해 유럽인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럽인들에게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태양을 신으로 섬긴다거나, 깊은 숲을 지배하는 신들과 정령 신앙의 존재가 그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면서 자연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피조물로 극복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때’를 알리는 수도원과 교회의 종소리를 통해 시간, 요일, 그리고 절기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초월자에게 다가가는 길은 자연이나 개인의 판단이 아닌, 교회로 일원화되었다.(73쪽)

또 한 가지 이유는 ‘죽음의 지배’ 혹은 ‘천국의 지배’다. 도시 외곽에 있던 묘지를 도시 한가운데, 혹은 교회 정원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잘 지켜서 교회가 발행하는 천국행 통행 증명서를 손에 쥐라고 권했다. 평균 수명이 50살을 넘지 않았던 당대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유럽인들에게 죽음과 사후세계는 매우 중요한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교회는 죽음 이후 천국에 갈 수 있는 통행 허가서를 독점함으로써 죽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교회는 실제로는 현세를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 되어 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학은 ‘하나의 유럽’, ‘하나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전제하고 교회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한 보편학문으로 발전해 나갔다. 신학은 정치학이기도 했고, 과학이기도 했으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보편학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그리스도교 세계라는 관념이 교회에서도 무너지기 시작할 무렵, 빠르게는 수도원 개혁이나 교회 개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14세기, 결정적으로는 서방 그리스도교가 분열되기 시작한 16세기에 이러한 신학은 종언을 고하게 된다. 교회가 분열되면서 신학의 의미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편성보다는 각 종파의 올바름과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학문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93쪽)

근대의 신학: 교회에서 인간에게로

중세의 끝과 근대의 시작 즈음에 등장한 세 번째 신학 모델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자리한다. 혁명 이전 교회 성직자 안에서도 신분상의 차이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가령 당시 프랑스 교회의 주교 135명 중에서 평민 출신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귀족 출신이었다는 점, 하급 성직자인 사제 그룹 7만 명 중 대다수가 도시 평민 출신인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중세 피라미드 조직에서 일탈하는 노동자와 서민들과 함께하려던 하위 사제 그룹은, 무너지는 봉건 귀족 사회와의 유대를 청산하지 못하는 주교들에 의해 좌절되거나 교회 밖으로 추방당하였다.

이렇게 종교는 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혁명정부의 통제 아래 놓였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 후카이 토모아키는 종교의 장소가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그리스도교는 ‘교회’에서 ‘인간’, ‘인간의 마음’이라는 곳으로 장소를 옮겨 갔다. 인간의 내면, 혹은 마음은 근대 시기 가장 전형적인 ‘종교의 장소’다. 그 전까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 혹은 서유럽 전체, 한 국가 등 전체 사회의 공공성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사회 전체의 윤리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그리스도교는 ‘개인’으로, ‘개인의 내면’으로 그 활동 장소를 옮겼고 이에 따라 신학도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146쪽)

중세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신학은 모두 당대의 정신적 상황 아래 당시 유행하는 개념이나 철학과 만나 그것들을 활용하곤 했다. 어떤 신학은 특정 교파를 위해서만 서술되는 내부용 신학도 존재하지만, 결국 오늘날 ‘시대정신’을 무시한 신학은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신학의 빈곤이라는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신학이 ‘시대정신’이나 당대의 흐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데 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187쪽)

저자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신학의 존재 이유, 특별히 평신도 신학자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주류 신학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신학의 흐름을 유지하며 안정성과 보편성을 추구한다면, 오늘날 평신도 신학은 시대정신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일탈과 삶의 구체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자리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몸짓들, 채 의미가 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고통의 신음과 속삭임들을 신학이라는 언어로 포착하는 것이 오늘날 신학의 존재 이유, 특별히 평신도 신학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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