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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즐겁게 놀아 주는 나, 오예![어린이처럼 - 김유진] "간질간질", 서현, 사계절, 2017
"간질간질", 서현 글/그림, 사계절, 2017. (표지 제공 = 사계절)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나의 분신으로 변하는 옛이야기 모티프는 오늘날 동화나 동시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이다. 옛이야기에서는 대개 ‘진짜 나’와 ‘가짜 나’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진짜 나’는, 언뜻 보면 더 진짜 같은 ‘가짜 나’가 실은 가짜이고 자신이 진짜임을 밝히는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오늘날 어린이청소년문학 작품에서도 나의 분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사건은 그리 달갑지 않은, 골치 아픈 일이 된다. SF의 과학적 상상력에서는 복제인간을 분신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이 경우 유일무이한 ‘나’라는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림책 "간질간질"의 발상은 이러한 변신 모티프에 닿아 있다. 어린이의 머리카락에서 여섯 명의 내가 태어난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 머리카락 여섯 올이 떨어져 있고, 바로 옆 페이지에 머리카락이 떨어진 모양 그대로 여섯 명의 내가 바닥에 누워 있다. “머리가 간지러워 머리를 긁었더니 머리카락이 떨어져 내가 되었네”라는 글 없이도, 변신 모티프에 대한 이해 없이도 독자는 머리카락이 곧 다른 ‘나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읽는다.

내가 ‘나들’과 가장 먼저 한 일을 춤을 추는 것이다. 주인공 어린이는 다른 변신 이야기들과 달리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시험을 받지 않는다. 나와 내 분신을 분리해, 분신에게 자기 역할이나 의무를 주고 도망가는 일도 없다. 내 분신은 바로 나인 동시에 나와 함께 놀아 줄 내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나와 즐겁게 놀아 준다. 내가 아닌, 즉 가짜인 분신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나들’이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나는 제일 먼저 엄마에게 가서 밥 달라, 간식 달라, 용돈 달라.... 동시에 일곱 번씩 엄마를 부르며 엄마의 혼을 빼놓는다. 또 일곱 명이 한 번씩 총 일곱 번을 아빠에게 말타기 하자, 숨바꼭질하자 하니 아빠 역시 정신 없이 뻗어 버린다. 누나마저 방문을 닫고 도망가 버리고 집 안에서 더 이상 놀거리가 없는 나와 ‘나들’은 집 밖으로 나선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와 ‘나들’ 사이에서는 큰 변화가 생긴다. 본래의 나와 여섯 명의 ‘나들’은 구분되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반해 ‘나들’은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고 그저 선으로만 표현되었다. 집 안에서는 항상 내가 앞장을 서고 여섯 명의 ‘나들’이 내 뒤를 따랐지만 먼저 밖으로 나서는 건 ‘나들’이고 나는 맨 끝에서 따라간다. ‘나들’의 상상과 힘이 나를 이끌게끔 역전되었다.

"간질간질" 그림책 중에서. (이미지 제공 = 사계절)

나와 ‘나들’은 길을 건너고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고 새와 날고 문어 섬 위에 착륙한다. 또 다시 춤을 추고 머리가 간지러워 머리카락을 긁으니 수십 명의 ‘나들’이 태어난다. 나와 ‘나들’은 그림책에서 쉽게 보지 못한 가장 큰 글자로 외친다. “오예!”

수십 명의 ‘나들’ 속에서 나는 이제 그저 ‘나들’ 중 하나다. 집 안에서 ‘나들’을 이끌고, 집 밖에서 ‘나들’의 뒤를 따라갈 때의 일렬종대는 이제 사방으로 확산된다. 샛노란 몸에 형광 분홍색의 멜빵 반바지를 입고 있는 똑같은 ‘나들’ 속에서 동그란 눈이 그려진 나를 숨은그림찾기마냥, 유명한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마냥 찾아보게 되는 건 또 하나의 작은 재미다.

이 그림책은 지난해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을 수상했다. 서현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간질간질"의 주인공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분신들과 함께 오로지 즐거워하기만 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즐거움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라고 말했다. “위로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웃음으로 위로하는 일”(<한국일보> 2017년 12월 21일자)이라고도 밝혔다.

슬픔이 없어 즐거움에 빠져 있는 게 아니다. 아동학대 사건이 새해 첫 뉴스부터 오르내리고 어린이들마저 ‘번 아웃’ 상태라고 진단되는 요즘 어린이에게는 더 많은 즐거움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내가 오직 나로 인해 즐거울 수 있는 노랗게 환한 기쁨과 흥겨움이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간질간질 피어오르길 바란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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