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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킹덤’과 ‘매직 캐슬’ 사이―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어린이처럼 - 김유진]

테마파크는 ‘동화’가 현실세계에 가장 화려하고 정밀하게 구현된 공간이다. 오직 꿈과 희망과 풍요만이 형형색색의 헬륨 풍선마냥 둥둥 떠다니는 곳. 전 세계 테마파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광대한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는 그야말로 ‘매직 킹덤’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디즈니 월드 건설 계획이자 최근 플로리다주 홈리스 보조금 지원 정책이기도 하다.(송경원,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현실과 동화 사이에 숨은 것들’, <씨네21> 2018년 2월 28일자 참조)

(사진 제공 = 영화사 오드)

두 개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이에 영화는 자리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디즈니 월드 근처 모텔에서 살아가는 소녀 무니와 친구들인데 모텔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매직 캐슬’, ‘퓨처 랜드’다. 모텔 외벽 색깔인 바이올렛, 핼리의 머리 색인 민트, 무니 옷의 핑크 등 화사하고 달콤한 색으로 가득한 영상 또한 아이러니하다. 모텔에서 일주일 치 방세를 내고, 달마다 다른 호실로 이동해 가며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을 보여 주고 있으니....

여름방학을 맞은 무니와 친구들은 여름 캠프는커녕 겨우 의식주만 해결한 채 교육이나 돌봄 없이 거의 방치되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오버랩된다. 네 남매가 어른 보호자 없이 몇 달간 살아가는 이 영화가 떠오르는 건 보호자와 함께 사는 무니 역시 어린이에게 필요한 삶의 기본 조건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텔이 집인 어린이들은 음식 또한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정성과 품위로 제공 받지 못한다. 무니는 푸드트럭의 빵을 손수 집어 오고, 관광객에게 잔돈을 구걸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는다. 매일 점심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스쿠티의 엄마가 뒷문으로 몰래 전해 주는 와플로 해결한다.

무니가 음식을 먹는 많은 장면 중에서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는 건 엄마와 헤어지기 직전 인근 호텔에 투숙객인 척 들어가 조식 뷔페를 먹는 때가 유일하다. 평소의 패스트푸드가 아닌 맛있는 빵과 신선한 과일을 먹으며 무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런 게 인생이지.” 무니의 음식을 통해 무니의 ‘인생’이 과연 적절하게 주어지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관객에게 물음을 자아내기 위한 가장 손쉽고 익숙한 방법은 무니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겠지만 영화는 그 길로 가지 않는다. 현실을 지나치게 극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현실에서 그럴 법한 만큼을 견지한다.

무니는 넘치는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당당하게 살아간다. 푸드트럭에 실린 빵, 이사 가는 친구 딕키가 나눠 주는 장난감을 전혀 부끄러움 없는 태도로 지체 없이 챙기지만, 거기엔 필요가 있을 뿐 탐욕은 없다. 무니는 어른의 표정을 보면 언제 울지 알 정도로 세상의 비극 가까이에서 살아왔기에, 자신은 요정 레프리콘이 무지개 끝에 숨겨 놓은 황금을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찍이 ‘동화’에서 벗어난 무니의 희망은 “쓰러져도 자라나는 나무”의 현실로부터 온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오드)

영화가 거부하는 판타지는 어른 인물을 향한 시선에서도 발견된다. 20대 싱글맘 중엔 웨이트리스로 성실하게 일하며 매니저가 되길 꿈꾸는 스쿠티의 엄마가 있는 한편, 보호자가 될 능력과 태도를 갖추지 못한 무니의 엄마 핼리도 있다. 그렇지만 핼리는 빗속에서 같이 뛰놀고, 디즈니 월드의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풀밭을 찾아 무니 친구 젠시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하다. 모텔의 관리인 바비가 부모들의 빈자리와 방임을 메꾸어 주는 든든하고 섬세한 파수꾼 역할을 하는 걸 보면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무니에게는 가정에서 제공 받아야 할 삶의 기본 조건이 끝내 갖추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데리러 온 아동보호국 직원에게서 도망친 무니는 젠시의 손에 이끌려 디즈니 월드를 향해 달려간다. 무니와 젠시에게 모텔 ‘매직 캐슬’이 아닌 디즈니 월드야말로 진짜 ‘매직 킹덤’일 것이다.

아이들이 디즈니 월드에 들어갔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엔딩 크레딧 위로 흐르는 음향은 디즈니 월드에서 실제 녹음했을 법한 거리의 소리다. 어린이들이 ‘매직 킹덤’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는 영화가 보여 주어야 할 일이 아니라 결국 현실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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