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는 "빨간 모자"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서 오늘날 어린이에게 들려 주어야 할까. 빨간 모자는 엄마 말을 어기고 숲에서 놀다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사냥꾼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뒤 이제 엄마 말을 잘 듣겠다고 결심한다.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일까.

"옛이야기의 발견"(김환희, 우리교육, 2007)에는 "빨간 모자"에 대한 여러 학자의 해석이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먼저 베델하임을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은 "빨간 모자"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초자아(super ego)인 어머니의 가르침에 반발한 소녀가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이드(id)의 유혹에 빠졌다가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 좀 더 현실원칙에 충실한 자아(ego)를 갖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자이퍼스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의 자연적 성향을 억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남성의 성적 판타지가 투사되었다고 규정한다. 한편 분석심리학자들은 늑대를 여성 속에 존재하는 남성성으로 파악하고 빨간 모자가 통합된 자기(self)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녀는 자립적인 인격 형성을 위해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서 남성적 요소와 만나야 하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결말은 성장의 실패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해석들에 비추어 보면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 "빨간 모자"(그림 형제 원작, 김미혜 글, 비룡소, 2014)는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렸는지 궁금해진다. 이 그림책에서 늑대는 성욕과 탐식에 시달리는 남성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과 이야기 속 늑대의 역할은 그림 형제의 원작과 같지만 요안나 콘세이요는 조금 새로운 해석을 하는 지점이 있다. 숲에서 만난 빨간 모자와 늑대는 함께 뜀뛰기를 하며 즐겁게 논다. 비스듬히 누워 빨간 모자를 바라보는 늑대의 눈빛에는 새로 시작하는 관계에 대한 긴장된 관심이 드러나 있고 늑대 무릎에 앉아 실을 감는 빨간 모자는 늑대의 몸에 움츠려드는 기색 없이 늑대와의 적절한 거리를 편안하게 느끼는 듯 보인다.

'빨간 모자', 그림 형제, 김미혜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비룡소, 2014. (이미지 출처 = 예스24)

이번 전시 차 방한한 작가와의 다양한 만남과 행사 자리는 이에 관해 작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시회장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었고 작가는 "빨간 모자"에 대한 자신만의 특별한 해석을 내리거나 담고 있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늑대와 뜀뛰기, 실 감기 놀이하는 컷은 그저 어린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경계심 없이 친해지는 과정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인의 "빨간 모자" 그림에 이탈리아 글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를 붙인 이탈리아판 "빨간 모자"를 받아 보고는 자신의 생각과 똑같은 스토리여서 놀랐다 하니 작가의 해석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니까 요안나 그림의 "빨간 모자"는 한국판과 이탈리아판의 글이 다르다. 이탈리아판 "빨간 모자"가 번역 출판되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에서 빨간 모자와 늑대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단다. 이들의 만남은 서로 이질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두 존재의 만남으로 빨간 모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는 숲에게 그 만남을 질시받고 배척당한다.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늑대가 죽는데 반해 빨간 모자는 성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한겨울의 그림 정원', 요안나 콘세이요 전시회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알부스 갤러리 홈페이지)

요안나 콘세이요는 1971년 폴란드 북부 스웁스크에서 출생, 2004년 볼로냐 책 축제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히고 유럽 전역에서 전시와 그림책 작업을 해 온 작가다. 한국에서는 그림책 "빨간 모자"와 "백조 왕자"가 출간됐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에서 18종의 책을 출판했다. 2월 25일까지 알부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빨간 모자"와 "백조 왕자"를 비롯한 그림책 원화와 스케치, 그가 페인팅한 도자기를 만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대개의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오래되어 빛바랜 종이에 색연필로 작업한 그의 작품에서 섬세하면서도 음울하고 단조로운 표정의 인물과 언뜻 잔잔해 보이나 비밀스런 기운으로 들썩이는 꽃과 풀은 독특하고 신비롭다. 그의 그림이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으로 출간된다는 사실은 어린이 책의 그림은 밝고 활기 넘치고 맑아야 한다는 편견 하나를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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