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김난주), 비룡소, 2016. (표지 제공 = 비룡소)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제목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베스트셀러 그림책이다.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고양이 목숨은 여러 개라는 말처럼 이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프게 운다. 하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고양이의 주인은 임금님, 뱃사공, 서커스단 마술사, 도둑, 할머니, 어린 여자아이였다. 임금님‘의’ 어린 여자아이‘의’ 고양이였다. 즉 그들‘의’ 소유였다. 고양이는 임금님, 바다, 서커스를 싫어했지만 주인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고양이를 귀여워했지만 그들 방식대로였다. 임금님은 고양이를 전쟁터에 데리고 가 화살에 맞아 죽게 했고, 뱃사공은 바다로 데리고 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었다. 마술사는 마술 도중 실수로 고양이를 톱으로 베어 버렸다.

그들은 고양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양이를 자기 삶 속에서 살게 했다. 그들은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기도 했지만 고양이는 끝내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양이에게는 처음부터 자유의지라고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주인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상대에게 종속되거나 소유되지 않고 각자 자유로운 존재인 가운데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고양이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주인이 아무리 자신을 귀여워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와 주인의 관계는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 또한 돌아보게 한다. 어른인 나는 부모고 교사라는 이유로 어린이를 통제하고 훈육한다. 일상은 물론 꿈의 경계까지 좌우하려고 든다. 어린이는 자유의지에 따라 나의 어린이로 내게 온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임금님과 바다를 싫어하더라도 임금님의 전쟁터에서, 뱃사공의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고 헤엄도 못 치면서 일렁이는 파도를 견뎌야 한다. 그 어린이에게 어른은 끊임없이 전쟁터와 바다에 나가라고 종용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나를 만들었다고 하는 신조차 내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우리는 말한다. 우리가 설령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해도 그것조차 허락하는 게 신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 가장 친밀한 남녀 간의 사랑에서, 가장 오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에서 정말 상대를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상대에게 투신하는 사랑을 하고 있을까.

한때 고양이는 도둑고양이가 된다.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하는 암코양이가 많았지만 관심이 없다.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의 소유에서 벗어난 도둑고양이가 되었지만 고양이는 자신의 옛날 주인들처럼 다른 존재를 사랑할 마음이 없다.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자랑하며 자기중심적인 자기애에 빠져 있을 뿐이다. 아마 한 번도 인간에게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에 그럴 법한 고양이가 가엾다.

어느 날 고양이는 하얀 암코양이에게 빠져 버린다. 하얀 고양이는 다른 암코양이들처럼 고양이에게 다가가 애정을 구걸하지 않는 점이 다르지만 고양이가 왜 하얀 고양이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기애에 빠진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존재로 향하게 하는.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으며 새끼 고양이를 많이 낳는다. 이제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나 봤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기애는 사랑으로 허물어졌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숨을 거둔다. 고양이도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춘다. 두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는다. 사랑의 사명을 다해서였을까. 고양이가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태어나야 했던 건 바로 그 사랑을 발견하고 수행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사랑하지 않는 한 고양이는 끝없이 죽고 태어나며 세상을 떠돌아야 할 것이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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