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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시간 속에 머물기- 조현철

2018년, 무술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서울 종로의 보신각 주변에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으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지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이때, 시간은 여느 때와 무척 다릅니다. 우리는 시간 자체에 마음을 모읍니다. 순간과 순간을 새롭게 느끼며, 온전히 시간 속에 머뭅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관심은 잠깐뿐입니다. 시간의 새로움은 이내 바래고 우리는 어느덧 그렇고 그런 일상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이 아니라 공간에 관심을 쏟습니다. 공간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곳입니다.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확장합니다. 무엇을 만들어 내고, 다른 대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이럴 때, 시간은 공간에서 무엇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일 뿐, 자체의 의미는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습니다. 공간에서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우리에게 시간은 늘 모자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너무나 바쁩니다.

비록 잠시라도, 우리가 온전히 시간 속에 머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때, 우리는 소유보다 존재 자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때, 우리는 사물이 아니라 삶을 생각합니다. 무엇을 얻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말연시 같은 때만 잠시 관심을 받을 뿐,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공간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현대 산업문명의 특징이자 폐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됩니다. 서로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내는 데 전념합니다. 모두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풍경입니다. 그렇게 우리 일상은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공간 속에서 열심히 일할 때가 있다면, 시간 속에 온전히 머물 때도 있어야 합니다.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탈출 20,9-10) 공간 속에서 하던 분주한 일을 멈추고 시간 속에 머무는 것, 바로 ‘안식’이 뜻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우리가 공간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시간의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식은 사물들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인 창조주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안식은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제, 끝없이 경쟁과 효율의 증대를 요구하는 체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 하느님의 모상임을 우리가 알게 해 줍니다. 안식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우리를 욕구를 채워 주는 자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소중한 피조물임을 알게 해 줍니다. 안식은 사람들의 탐욕으로 일그러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를 구현합니다. 그렇게, 정의의 열매인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시간 속에 머물기. (이미지 출처 = Pixabay)

새해 첫날,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나 자신의 평화, 이웃의 평화를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 평화의 날 메시지가 말하는 이주민과 난민들의 평화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 몰두하는 한, 자원은 유한하고 욕구는 무한한 이 세상에서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합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우리가 공간을 벗어나 시간 속에 온전히 머무는 때가 필요합니다. “관상하는 안식”은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노동의 의미를 일깨워 우리를 맹목적이고 “공허한 행동주의”에서 보호합니다. “배타적 개인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끝없는 탐욕과 고립감”을 막아 줍니다.("찬미받으소서", 237항) 우리는 안식을 통해 자신을 벗어나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안식은 탐욕과 고립감에서 비롯되는 무관심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됩니다. 그래서 안식은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가장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은 사람은 물론 공간 속의 어떤 피조물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거룩하게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다 이루신,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쉬신 이렛날, 바로 ‘시간’입니다.(창세 2,2-3) 거룩하게 하신 안식의 시간에 온전히 머물 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안식은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우리가 성화되는 때입니다. 안식은 우리의 성화로 세상도 그만큼 성화되는 시간입니다.

새해, 안식의 시간을 자주 경축하고 그 속에 머물렀으면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더욱 온전히 우리 자신이 되고, 세상은 더욱 평화로워졌으면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합니다.("복음의 기쁨", 222항 참조)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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