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내 삶 전체에서 단 하나의 기억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았다. 사망 후 저승으로 가기 전 일주일 동안, 사람들은 임시 거처에 머물면서 자신의 전 생애에서 하나의 기억을 고르도록 요청받는다. 단 ‘하나’의 기억! 선택한 사람들은 일주일이 지나면 저승으로 간다. 그 하나의 기억과 함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 그 단 하나의 기억이 자신의 삶이 되는 것이다. 어떤 기억을 고를 것인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기억인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선택을 못하고, 어떤 이는 선택을 거부한다.

자신의 삶의 전부가 될 하나의 기억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럴 만한 삶의 순간을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아, 내 삶도 이만하면 괜찮았구나!” 그 선택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살아 있는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너는 삶에서 무엇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가?” 이어지는 물음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가? 무엇에 나를 전부 바치고 있는가, 봉헌할 것인가? 내게, 그 기억 하나만으로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비행 중에 본 구름의 모습을 선택하는 조종사. 디즈니랜드를 선택한 십대 여학생. 모두, 자신에게 어울리는 기억이고 선택이다. 수도자로서 나에겐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 어떤 순간을 나의 삶 전체로 기억하고 싶은가? ‘주님 봉헌 축일’이자 ‘봉헌 생활의 날’, 부끄럽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안다미로)

돈보다 강한 것은 무엇일까? 연극 '노란봉투'를 보았다. '노란봉투'는 손해배상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그 피해를 고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자본가들은 돈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우리 노동자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과 맞먹는, 돈보다 더 강한 말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을까?” 연극에 나오는 대사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무엇엔가 자신을 바치며 살아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려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돈’일 것이다. 돈에 자신을 몽땅 바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소비할 수 있는 한, 자신을 자유롭다고 여기게 되었다. 소비 능력이 성공의 척도고, 소유의 정도가 행복의 척도다. 소비하려면 먼저 소유해야 하고, 소유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돈에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아니, 섬긴다. 돈으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할수록, 자유롭다고 여기며 스스로 노예가 되어 간다. 돈과 소유와 소비의 노예. 노예이면서도 노예인 줄 모른다. 무서운 현실이다.

수도자는 예수를 따라 자신을 밖으로 쏟아내는 삶으로 초대받은 사람이다. 수도자는 물신의 시대에 이건 사람의 길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수도자는 자기 비움에서 오는 참된 자유와 행복과 만족을 내면 깊은 곳에서 체험하고, 그 체험으로 가짜 자유와 행복과 만족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세상에 단호히 맞서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단호한 맞섬에 요구되는 희생과 결과를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님 봉헌 축일’이자 ‘봉헌 생활의 날’, 부끄럽지만 피할 수 없는, 다짐이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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