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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상의 삶에서 ‘세례’를 살아가기- 조현철
조현철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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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1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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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교회는 전례적으로 성탄 시기를 마치고 연중 시기로 들어간다. 연중 시기는 일상의 삶을 말한다. 그러니 세례 축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는 것은 세례와 우리 일상의 삶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우리 일상의 삶에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뒤, 본격적으로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세례는 예수께 자신의 일상의 삶을 위한 일종의 결단의 순간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의 결단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세례를 받을 때, 우리의 결심을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 “끊어 버립니다.”, “믿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나의 삶 속에 두 가지 대립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마귀와 하느님이다. 이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우리에겐 양자택일만 가능하다. 그래서 마귀를 끊겠다는 결심과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마귀를 거부하고, 하느님을 선택하겠다는 결단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 또한 세례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 하느님의 힘으로 살겠다, 하느님의 가치를 선택하겠다는 결단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세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65. (이미지 출처 = wikiart.org)
하느님의 뜻은 ‘해방’에 있다. 다시 말해,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는 것이다.(이사 42,7) 그렇다면, 세례는 하느님의 뜻인 억눌린 사람들의 해방, 나아가 억압 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뜻한다. 세례는 찢겨 나간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보전하여,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겠다는 다짐이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은 세례 때 우리가 했던 다짐을 되새기고 실천할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대한 힘이,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마구잡이로 억압하고 수탈하는 세상에서, 함께 힘을 모아서 이들의 해방, 우리들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요청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마귀는 아주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 모두에게 아주 필요하고 좋은 것들로 다가온다. 돈, 권력, 명예가 대표적이다. 모두 이냐시오 성인이 "영신수련"에서 마귀의 전략으로 언급했던 것들이다. 세례 후, 예수께서 광야에서 겪은 유혹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이런 것들을 수단으로 추구하지만 어느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수가 많다. 오늘 우리 대부분은 돈과 힘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골몰한다. 계속 돈을 벌고, 계속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한다. “얼마나?” 여기에 대해서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한계가 없다. 다다익선이다. 돈과 힘은 수단이 아니라 이미 목적이 되어 버렸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교회마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느님은 화려하게 나타나지 않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이사 42,2) 하느님은 외적으로 돋보이지 않지만, 온유하며, 끈질기다.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이룰 것이다.(이사 42,4)

세상에는 마귀와 하느님에서 나오는 대조적인 힘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자기 쪽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선택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은 언제나 각성과 식별을 수반해야 한다. 언제나 깨어 식별하면서,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가치를 세상에 실현해야 한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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