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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물리치는 법 - 영화 '몬스터 콜'[어린이처럼 - 김유진]
'몬스터 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2017. (포스터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는 ‘착한 어린이’였다. 400명이 넘는 한 학년 아이 중 ‘착한 어린이표’를 가장 많이 받은 아이였다. ‘착한 어린이표’가 여러 개 모이면 ‘선행’이라고 쓰인 동전 모양 패치를 주고 이름표에 달게 했는데 내 이름표에는 선행장이 세 개나 달려 있었다. 금메달까지 땄으니 받을 상을 다 받은 셈이었다.

내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착한 어린이표’로 어린이를 억압하고 통제한 어른과 그들의 세계에 분노가 인다. ‘착한 어린이표’에서 ‘착함’은 규율이지 윤리나 도덕은 아니었을 테니까. 내가 규율에서 윤리를 발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함은 분명하다.

영화 '몬스터 콜'의 소년 코너는 위중한 병을 앓는 엄마와 살며 고통과 분노와 불안으로 가득 차 보인다. 우리는 마지막에야 코너가 겪는 고통의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고 그 이유가 밝혀지기 전 코너에게 찾아오는 괴물만을 본다. 수백 년을 살아온 주목나무 괴물은 매일 밤 12시 7분에 나타나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착한 왕이 된 왕자 이야기와 신을 진실로 믿지 않아 두 딸을 병으로 잃은 목사 이야기. 이 이야기는 흔히 ‘동화’에서 예상되는 권선징악도 해피 엔딩도 아니다.

이 두 액자 속 이야기는 항상 좋은 사람도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액자 밖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코너가 병들어 죽어 가는 엄마를 두고 고통스러웠던 건 단지 엄마와 영원히 이별하는 게 슬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죽을 걸 알면서도 나을 거라 믿으며 견뎌야 하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괴롭힘과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이혼한 아빠에게 가지 못하고 싫어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는 상황들. 이 모든 괴로운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엄마의 손을 놓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 죄책감이 괴물을 불러냈다.

하지만 괴물은 물리쳐야 할 존재가 아니다. 세상 누구도 완전히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듯 누구나 괴물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괴물은 괴물이 아니다.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라 인사하고 안아 주어야 할 나 자신이다. 코너가 고통스러웠던 건 괴물 자체가 아니라 괴물을 인정할 수 없어서였다. 어린이에게 괴물은 허락되지 않으니까.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극심한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서 문득 이 고통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괴물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린이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예수 또한 외치지 않았던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달라”고.

'몬스터 콜'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린이들은 어른이 정한 규율 안에서 자라고 살아간다. 어린이들에게 규율 너머 윤리를 보여 주는 어른은 드물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형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공부와 자기 일을 성실히 하면 완벽하게 ‘착한 어린이’가 된다. 많은 동화 역시 그렇게 가르쳐 왔다. 영화의 원작인 동화 '몬스터 콜스'는 그것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큰 죄책감을 안겨 주는지를 말하며 그 죄책감에서 어린이를 해방시킨다. 코너의 마지막 이야기가 엄마를 놓아 버리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코너의 마지막 말은 엄마를 보내기 싫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규율을 지키는 건 안전하고 편하지만 윤리를 질문하는 건 고통스럽다. 어린이들에게 규율을 강요하며 윤리에 대한 질문을 빼앗을 때 어린이는 도리 없이 홀로 고통스러워 해야 한다. 어린이 역시 온전한 인간이기에 윤리 앞에 설 수밖에 없는데도 어른들이 이를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규율을 걷어내고, 함께 윤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종교야말로 오늘날 마지막까지도 규율이 가장 중요하게 남아 있는 사회다. 종교 역시 윤리의 질문을 삭제하고 손쉬운 규율만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규율이 아닌 윤리의 영성으로 진정 자유로운 교회, 그리고 그 교회 안의 나를 만나고 싶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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