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남성은 누드에 여성은 무드에 약하다.” “남성은 친밀감이나 사랑의 감정 없이도 스킨십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여성은 대화나 분위기 등 감정을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친밀감이 생긴 후 스킨십 욕구가 생긴다.”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

성차별적인 이러한 문구들은 놀랍게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이다. 정책 보완을 위해 지난달 15일 개최된 공청회에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연구원들은 이 표준안이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할 뿐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성평등교육의 방향성과도 어긋나며 특히 성폭력 예방 관련 권고는, 어떠한 이유와 상황에서도 가해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야지 피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양성평등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의식 수준이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일선 초등학교에서는 양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교과서, 동화, 대중문화 속의 성차별 요소를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며 어린이들에게 잘못 주입된 의식들을 돌아보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홈페이지와 여러 매체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교사들은 어린이들이 즐겨 시청해 온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상황을 분석하며 어린이들이 성차별적 요소를 인지하게 하고 인터넷이나 유튜브의 여성 혐오적 욕설과 발언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사들의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은 양성평등교육의 중요성과 가치 때문일 테지만 요즘 어린이들의 성평등 의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유아기부터 가정과 교육기관에서 성차별적 문화 속에서 자라나는 건 물론이고 특히 요즈음 여성 혐오적인 인터넷 사이트의 영향력에 무차별 노출되어 있다. ‘미러링’의 일환으로 남성 혐오 발언을 해 오던 한 여성 유튜버를 살해하겠다고 공표한 한 남성의 동영상이 최근 유튜브 검색 1위였는데 이 동영상 시청자의 절반 가량이 초등학생이었다고 한다. 여성 혐오와 ‘미러링’ 그리고 살해 위협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얼룩진 동영상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교사와 부모가 어린이들이 접하는 인터넷 콘텐츠를 철저히 규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시각을 길러 줄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 성차별은 '여자'와 '남자'라는 틀 안에 자신을 구겨 넣는 것과 같다. (이미지 출처 = 씨리얼이 유튜브에 올린 '남성에게도 성평등이 좋은 이유' 동영상 갈무리)

이렇듯 가정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어린이 양성평등교육이 시급함에도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서울의 혁신학교인 한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교육하던 여교사에게 가해진 디지털 성폭력은 그 심각성을 방증한다.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가 <여성신문> 2017년 8월 8일자 '여성논단'에 정리한 바에 따르면 이 초등학교에는 교사 20여 명이 참여하는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어 여성주의와 관련한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 사안이 기사화되자마자 인터뷰한 교사를 표적으로 한 악성 민원과 사이버 폭력이 쏟아졌으며 해당 학교 구성원들의 인터넷 공간인 스쿨톡이 온갖 여성 혐오 발언으로 점령당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며 교사와 학교를 지지하기 위한 민원과 스쿨톡의 지지 댓글이 이어지는 중이다.

교사들은 어린 나이일수록 양성평등교육의 효과가 더욱 눈에 띈다고 한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혹시 성차별 의식을 나도 모르게 유아부터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어린 시절 내가 가톨릭 교회에서 느꼈던 성차별은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는 것, 미사 복사를 할 수 없는 것, 미사보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자아이들도 복사를 서긴 하지만 미사보를 써야 하는 것이나 여름마다 여성들의 복장 예절이 도마 위에 오르는 건 여전하다. 교회가 복음 정신과 시대 정신에 맞추어 전통을 변화시킬 부분을 고민해 남자 어린이, 여자 어린이 모두 교회 안에서 좀 더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이를 사회와 공유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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