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1월 26일(그리스도 왕 대축일), 마태 25,31-46

연중시기의 끝에, 교회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보잘것없음의 관점으로부터

예수님의 설교는,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참 행복을 말하는 마태오 복음 5장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 제자들의 행동에서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 상기시킴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사람의 아들,(마태 25,31) 왕(25,34)은 국가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올 것이다. 그분의 왕국은 권력의 왕국이 아니라 섬김의 왕국이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20,28)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다. 하느님나라, 결정적 생명, 영원한 생명은 제자들이 모든 사람 그리고 특별히 가장 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있어 스승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다루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넘어서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의 삶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다. 그것은 모든 시기, 현재까지 포함하는 모든 시기의 생명을 의미한다. 하느님나라의 요구들은 지금 생명을 주는 것으로 이끈다. 먹을 것, 마실 것 등등을 지금 주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은총을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우선적으로 생명과 은총을 받는 이들은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잊혀진 이들이다. 여기에서 마태오는 메시아가 나타난 보잘것없는 도시, 베들레헴을 말할 때(마태 2,6) 사용하던 단어를 쓰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모든 가난한 무시된 사람들은 베들레헴처럼 보잘것없다. 그렇지만 그들로부터, 주님은 우리에게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말씀은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이 우리 믿음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연대하면서 우리가 사람의 아들의 겸허한 섬김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는”(25,34) 다른 길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길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길을 통해서뿐이라는 것이다.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는 길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walre037)

결정적인 것

하느님의 심판은 개인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다. 수 년 전, 마태오의 최후의 심판구절에 관해 말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심판의 “사회적 차원”을 상기시켰고, 그것은 “불의와 악의 모든 전 우주적 차원을” 의미한다고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경고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빛으로 볼 때, 가난한 남반구가 부유한 북반구를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들-다양한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 단지 식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기타 인권들을 빼앗긴 사람들도 포함된다-은 그들의 소유물을 가로채고, 다른 이들을 희생하여 경제사회적 우월의 상황을 제국주의적으로 독점, 축적하는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1984년 9월 17일 캐나다의 나마오에서 한 강론) 주님과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빼앗은 재화를 자신들을 위해 축적하는 사람들의 무관심, 천박함 그리고 교묘한 잔혹함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

사람의 아들은 왕이다. 그분은 또한 목자이기에, 그분의 양들을 돌볼 것이다.(에제 34장) 그분의 섬김에 의한 다스림은 여기에서 지금 죽음에 대한 그분의 승리의 표현이다.(1코린 15장) 하느님께서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전하셨음을 믿는다고 하여 우리는 역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인해 역사를 온전히 받아들이니,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것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역사, 현재)에 의하여 판단되기 때문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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