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1월 19일(평신도 주일), 마태 25,14-30

자유방임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가 우세하는 요즈음, 돈의 저축과 투자, 유동자본과 비밀구좌에 대하여 말할 때에 탈렌트(탈렌트는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의 주제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탈렌트의 비유는 다른 어떤 것을 지적하고 있다.

두 가지 태도들

비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 태도들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과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그들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는 사람들의 태도들이다. 뿐만 아니라, 비유의 초점은 두 번째 태도의 비판에 있다. 비유의 시작부터 “먼 길을 떠나는 사람”(마태 25,14)이라는 부재의 이미지에는 역사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감이 상기된다. 그들은 복음의 선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좋고 나쁜 순간 속에서, 긴장과 갈등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을 증언해야 한다. 그것이 탈렌트를 받는다는 것의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 성인은 우리에게 “깨어 있어야 한다”(1테살 5,6)라고 말한다. 첫 번째 두 종들은 깨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깨어 있음은 섬김으로 변화되었고, 그 노고 덕분에 주님의 선물들은 열매를 맺었다. 제1독서는 전통적 잠언서로부터 뽑은 것이다. 이 구절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특정한 비전으로 강요된 한계를 넘어서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관대한 행동의 찬미를 접하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주님의 참다운 즐거움

비유에 나타나는 세 번째 종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마음이 좁고 두려움에 가득 차, 세 번째 종은 자신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마태 25,18) 하느님과 자신이 좋은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신앙의 삶이 오직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만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요구하는 까다로운 분이고, 가혹한 분이며, 사랑보다는 징벌에 더 관심이 있는 존재다.(25,24-25) 세 번째 종은 복음의 요구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단지 정확하고 형식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종교 규범으로만 해석한다. 다른 사람들, 자신의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있을 자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 것은 그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들은 그가 의도하고 있었던 길에서 그를 빼내고, 신자로서 의무라고 생각하던 것들에 순응하는 그를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위험 부담도 갖지 않으려고 하고, 주님한테서 받은 것만 정확하게 돌려주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처신하면서 그는 더 안전하게 느낀다. 바오로 성인은 이런 경우 그 사람이 “잠자고 있다”(1테살 5,6)라고 말할 것이다.

종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런 길을 택할 때 빛이 아니라 어둠으로 인도될 것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25,30) 편협한 마음속에서 그는 하느님을 오직 보상과 징벌의 관점에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예수님의 하느님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요구를 하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는 분이다. 그분의 사랑의 은총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과 가짜 안전의 둑을 무너뜨리며 흘러넘친다. 신앙(믿음)이란 그것 자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금고 속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생명이며,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물로 표현되는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두려워한다는 것은 신앙이 없는 것과 버금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 생명을 위한 권리를 갖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나라의 빼앗긴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들과의 연대는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갈등으로, 그리고 아마도 우리 가족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도 오해를 받는 지경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러나 탈렌트의 비유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쁨은(25,21.23) 그리고 우리 자신의 기쁨도, 형식, 자기보호, 두려움에 근거하기보다 은총, 용기,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에 근거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