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8]

오사카 거리에서. ⓒ김혜율

오며 가며 수많은 원성이 들리곤 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취지다. ‘그래서 오사카에는 대체 언제 가는데요? 왜 멈춰 있는 겁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이는 내 여행기를 읽는 전국에 몇 안 되는(대략 일곱 명 정도로 파악되는) 훌륭한 독자들이다. 나는 내 글을 읽어 주었다는 이유로 비굴해지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이미 당도했습니다. 어쨌거나 오사카 땅이 보였지 않습니까!’ 라며 눈에 힘을 주며 대들었다. 그랬다고 ‘아.... 그렇군요!’ 라고 부끄러워했다던가,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내 머릿속 오사카는 햇볕에 탈색된 듯 흐릿한 색으로 바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사카가 기억에서 차츰차츰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오사카를 더욱 멀리 내팽개쳐 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 대단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처럼 폼을 잡았지만 사실 오사카에서는 별 게 없었던 것이다! 원래 두께의 세 배쯤으로 부풀어 버린 영수증 장부만이 오사카에서의 내 행적을 말해 줄 뿐이다. 내가 물건을 사는 족족 남편이 영수증을 오리고 접어서 풀로 붙여 놓아 쓸데없이 두꺼워진 장부. 그래서 어쩐지 멀리하고픈 영수증 장부가 있다. 나는 길어야 5월까지만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는 텅 비어 버리는 가계부를 비통한 마음으로 몇 년째 모으고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 가계부를 쓰지 않기로는 남편도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여행지에서는 금전관리에 그토록 열심이었는지! 사진도 메모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빈약한 오사카 여행 기록물 중에서도 두꺼운 영수증 장부는 독보적 위용으로 남아 있다. 

오사카 거리에서. ⓒ김혜율

내가 오사카에서 뭐 했더라, 한 게 있어야지! 하고 고민할 때마다 남편은 내게 영수증장부를 보라고 했다. 거기 다 적혀 있다고. 물론 남편말대로 영수증이란 것은 때로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일면 이중적 인간이라는 걸 버젓이 고발하는 야속한 상대일 뿐이다. 영수증이 고발하는 나의 이중성이란? 나는 어디에 내놔도 시골임에 손색 없는 시골 중의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고로 나는 ‘시골에 사는 촌 애’ 답게 여러모로 촌스러운 편이라 자부하는데, 시골 땡볕에 그을린 촌부의 얼굴 하며, 옷 욕심, 가방 욕심, 구두 욕심 같은 거 없이 되는 대로 입고 다니는 소박하고 올드한 취향이 그렇다. 냉장고만 하더라도 양문형이 아닌 일문형으로 딱 하나만 가지고 있는데도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보태는 데에 부정적인 걸 보면 살림살이 욕심도 크게 없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장소가 바뀌면 금방 취향이 돌변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맨날 거름냄새 맡으며 누룽지를 긁어 먹고 살아도 딱히 불만이 없지만 쉐프의 철학이 깃든 파인다이닝의 세계가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밥때를 알리는 종소리에 반응하는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마는 식이다. 욕심 때문에 신세를 망친 적은 없지만 나는 내면에 음험한 물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백화점을 거니노라면 이 백화점을 통째로 사들여서 모든 것을 누려 보고 싶군 하는 생각도 아직도 장난삼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커서 백화점 주인이랑 결혼할 거라고 했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떠오르고 마는데 과연 그 친구는 백화점의 안주인이 되는데 성공했을까? 

오사카 거리에서. ⓒ김혜율

어쨌든 나는 안빈낙도를 꿈꾸면서도 산해진미를 머금었다 바로 퉤 하고 뱉어 버린 로마 귀족들처럼 한껏 타락하여 흥청망청하다가 결국엔 다 시시하다며 던져 버리는것도 어떨까 한다. 경제적으로 곤궁해도 궁핍한 줄 모르고, 돈 앞에서도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금전 감각이 무서울 정도로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경험상 이런 사람들이 정신 줄을 놓으면 엉뚱하게 오사카 같은 데서 쇼핑으로 얼마 없는 가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니 골치까지 아프다.

그런데 우리가 애초에 일본까지 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갔을까? 여행지 사전 조사를 통해 여행 컨셉을 잡고, 스케줄을 최대한 빡빡하게 잡아서 비용 대비 효율을 따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일본 간사이 지방 특유의 식문화를 탐방해 본다든지, 커피 장인이 내리는 드립커피를 마시며 그 맛의 비밀을 노트에 기록한다든지, 지역 박물관 소장품과 현지 사료를 취합해 일본문화속에 녹아든 백제문화의 숨결을 추적한다든지, 아니면 진주의 헌책방 ‘소소책방’ 주인장의 "오토바이로, 일본책방" 순례기를 흉내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두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방황하고 있는 하얀 눈과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일본어를 좀 해 보려고 챙겨 간 작은 회화책에 의지했던 나는 처음엔 유창한 일본어로 말을 걸어 상대로 하여금 일본인이나 일본어 잘하는 여행자로 착각하게 만들곤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대책이 없었다. 작은 회화책의 예시대로 실제 대화가 이어질 리 없었고, 나는 나를 믿고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스미마셍, 스미마셍’ 하고 싹싹 빌면서 뒤로 물러나곤 했다. 그렇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내 마음이 눈처럼 깨끗하였겠지. 바통 터치하여 남편이 뒷 대화를 영어로 이어갔지만 아마도 남편의 영어는 일본에서 너무 세련된 것이 아니었던가 회상한다. 일본인들은 남편이 커피를 시키면서 ‘커피 주세요.’ 라고 말하면 꼭 뜨거운 거냐, 차가운거냐 물었다. 남편이 ‘핫커피로 주세요.’라고 하면 그들은 꼭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며 예외 없이, 당당하게 ‘아! 홋-뜨 커피요?’ 라고 친절하게 발음을 정정해 주었다. 물론 새하얀 눈은 발자국이 찍히면 찍히는 대로 반영하므로 우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하게 “홋뜨 커피 두 잔 주세요. 네, 홋뜨요.” 하고 말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오사카 거리에서. ⓒ김혜율

그렇게 아무런 컨셉도, 계획도, 효율도 따지지 않고 무작정 걸어다니며 시간과 체력을 허비하던 오사카에서의 여행 이틀째에 나는 진지한 얼굴로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오사카의 한적한 시골 골목길을 걸으며 한일 양국의 육아 트렌드라도 비교 연구해 봐야 되지 않아”라고. 하지만 남편은 약간 당황하더니 나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그건 좀 힘들겠는데. 여기는....” 라고 뒷말을 흐렸다. 오사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덤빈 나와는 달리 남편은 오사카가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있는 곳은 시골 보통 가정의 일상을 엿보기에는 너무나 번화하고 외국인들이 넘쳐나는 국제적 쇼핑특화 도시가 아니었던가. 내가 한 제안은 마치 불가능한 것을 확인함으로써 아무것도 안 하는 정당성을 찾으려고 그냥 해 본 말처럼 작용했다. 

그 이후로는 방황하면서도 한편으론 맘 편하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오사카에 왔으니 어쩔 수 없이 쇼핑이라도 하는 수밖에!‘ 라고 생각하며 “자자, 본격적으로 쇼핑에 매진해 봅시다.” 하고 서로를 독려하며 본격 돈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럭스토어 몇 군데를 털고 쇼핑몰에서 종일 머물렀으며, 매일 밤이면 남들이 열거한 ‘오사카 쇼핑리스트’를 세밀히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네, 그렇게 오늘도 쇼핑, 내일도 쇼핑, 모레도 쇼핑하면서 여행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대로 퇴장한다 해도 아무도 날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오사카여행이 왜 ’방랑여행‘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오사카 거리에서.ⓒ김혜율

우리는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절대 맛집을 검색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강추’는 분명 안전한 선택이겠지만 혹여 줄을 길게 서서 음식을 사 먹은 뒤 타인의 안목에 실망하느니 다소 위험이 도사린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식당에 가서 책임감 있는 실망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자신의 감과 운을 믿으며 모험을 떠나는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마구 내딛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왠지 수상쩍은 다코야끼 가게에서 만든 다코야끼를 먹고는 속이 미식거리고 부글거리거나, 식당에서 큰맘 먹고 ‘패밀리 대게찜 세트’를 시켰는데 그 맛이 영덕대게는커녕 게맛살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맛있구나 맛있어 하고 거짓말을 연발해야 했다. 물론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맛있는 커피를 맛보게 되는 행운도 가끔 찾아왔지만 대체로 운과 감을 믿은 모험을 떠나서 얻은 건 성공보다는 수많은 실패였다. 그리고 그 실패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되었다. 

우리는 방랑여행자답게 매일 도시를 방랑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적도 있지만 당시 우리는 하루 평균 삼만 보에 육박하는 걸음을 걸었다. 남편보다는 내가 1.5배 더 걸은 것 같은데, 내가 쇼핑할 동안에 매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던 남편이 오늘은 2만 3000보를 걸었군 하고 말한 걸 보면 그렇다. 대충 아침 9시부터 자정께까지 우리는 길 위에 있었다. 여행자들의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패기 있는 행보가 아니었던가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이나 다녀온 나보다 열 살 아래 친구는 순례길을 하루 11시간 정도 걷고 7킬로를 감량했다고 하는데, 오사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걷는 양으로 따지면 우리도 엇비슷했겠지만 계속 먹어 댔던 것이다. 

오사카 거리에서. ⓒ김혜율

우리는 먹고 걷고, 걷다가 먹고, 종종 물건을 샀다. 발이나 다리가 아픈 건 당연하고 허리랑 어깨마저 뻐근하고 아파 왔지만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개고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스스로가 바보같기도 했고, 차라리 이 여행이 끝나기를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런 느낌마저 나중엔 다 그리운 시간으로 추억하게 될 테니, 앞으로도 지치지 말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방황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친구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만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는 영수증 장부만 아니라면 더욱 더 전날의 여행을 그리워할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그래도 이쯤에서 지난했던 나의 오사카 방랑 여행기를 마치기로 한다. 뭐 이런 게 다 있냐고. 또 나의 훌륭한 독자께서 반문하신다면 나는 어떤 여행가의 말을 대신 전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 백 개의 여행이 있다면 서로 다른 백 개의 여행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이 여행 또한 백 개의 여행 중 하나였음에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의기소침한 내게도 괴테가 한 말을 전하고 싶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이 말을 ‘오사카 방랑 여행기’ 옆에 살풋 갖다 놓아 보았다. 문득 그때 사지 못하고 지나친 유리로 만든 작은 풍경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짤그랑 하던 투명한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사카에서 파는 풍경들.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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