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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방랑 여행기 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6]
ⓒ김혜율

한 발짝, 두 발짝, 할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차가운 맥주가 식어 버리면 안 되니까 맥주는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뽑지 않고 기다려야지. 어, 그런데 저 할머니가.... 아까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 할머니가 맞나? 아닌가?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목욕탕에서 우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였다. 목욕탕의 수증기로는 가려지지 않는,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직한 몸뚱어리 하나, 하나였을 뿐이다. 할머니는 고작 웅크린 내 등짝을 보셨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목욕탕 탈의실을 거쳐 왔다. 두툼한 뱃살이나 처진 엉덩이 같은 건 모두 옷 속으로 밀어 넣고 변신을 한다. 그것이 외려 자신을 설명할 여러 데이터를 보여 주는 꼴이 되기도 하겠지만 맨몸과는 달리 거짓을 보탤 수 있다는 점에서 변신은 변신이다. 

그런데 이때 할머니들은 어째서 다들 비슷한 파마머리, 비슷한 옷, 비슷한 걸음걸이, 비슷한 주름살을 하고 목욕탕을 나가시는 걸까. 때문에 나는 늘 마을 평상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을 구분하기 힘들다. ‘어디 사는 누구 할머니’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은 몇 분 안 되고, 많은 동네 할머니들을 아직도 잘 몰라 뵙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 시골 오일장이 서는 날 버스 뒷좌석에 앉으면 할머니들의 몰개성이 더 실감 난다. 누가 우리 할머니고 누가 옆집 할머니며 누가 이웃 동네 할머니고 누가 생판 모르는 할머니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꼭 닮은 할머니들의 뒷모습이 앞에 펼쳐져 있을 테니까. 그럴 때 우리 각자는 누군가에겐 분명 단 하나의 장미꽃이겠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바에야 남의 집 화단에 피어 있는 여러 송이 장미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송이의 장미가 먼저 아는 체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등밀이 할머니는 서로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무명의 안도를 넘어서는 서글픔이다.

할머니가 내 쪽으로 다가오신다. 나를 알아보시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나를 지나쳐 가시는 것인지 헷갈려하고 있는데 그만 할머니와 찌릿, 하고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때는 무조건 인사를 하자.

“안. 녕. 하. 세. 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할머니, 절 모르시거든 무심한 얼굴로 바삐 가셔요. 어서요.

하지만 할머니는 “어, 그래.” 하신다. 예상보다 차분하고 온화한 음색. 나는 목소리를 기억하려 했지만 소리가 울리는 목욕탕에서의 목소리와 구별하기 어려웠다. 목욕탕 인연은 이래저래 속세에서 알아보기가 어려운가 보다. 그런데 하필 그때, 내 머릿속에서 줄곧 거품을 부글부글 올리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맥주에 대한 환영이 뜬금없이 내 입을 한 차례 더 열게 만들었다. 말릴 새가 없었다.

“저.... 맥주 드실래여?” 나는 손에 있는 동전을 짤랑거리며 맥주 자판기를 가리켰다.

모르는 할머니한테 이런 수작을 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행히 여기는 국제여객선. 한국과 일본의 중간 바다 위이기 때문에 평소 적용되던 엄격한 규율은 다소 힘을 잃지 않을까.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배는 자국의 영토 연장선으로 보아 그 법을 따라야 한다고 배운 것도 같다. 그렇담 나는 맥주로 선량한 할머니를 꼬시려는 수상한 사람일 텐데.... 혀를 끌끌 차이며 욕지거리를 듣지 않으려면 그저 할머니의 오픈 마인드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시 할머니는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시민다웠다. 나에게 욕을 하는 대신 혹여 내가 술에 취한 사람이 아닌지 면밀히 훑어보시는 신중함을 발휘하셨다. 내 눈빛에서 후회와 망설임 같은 것을 느끼신 할머니는 표정을 한결 누그러뜨리고 나를 쳐다보셨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 할머니는 아까 그 목욕탕 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종합해 보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모르는 사이였다는 말이다. 갑자기 목이 답답해져 오고 땀이 나는 것 같았지만 할머니에게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방금 한 말 취소할게요.’ 할 수는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적극 나가 보자.

“저 지금 맥주 마실 건데 할머니 것도 하나 뽑아 드릴게요. ”

할머니는 도리질을 하셨다.

“어데.... 내가 사 주면 사 줬지, 얻어먹을 수 있나. 난 안 마실란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시원하게 한잔 하세요. 네?”

“아이다, 안 마셔. 지금은 안 마실 끼다. 고마 자네나 뽑아 마셔.”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했다. 이대로 맥주까지 한잔 하고 나면 이 할머니가 나의 장미꽃 한 송이가 되는 거다. 그런데 할머니는 끝까지 맥주가 싫다고 하셨고 남이 싫다는 걸 설득하는 데 재주가 없는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힝....”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가 안 돼 보였던지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 한없이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자아, 여기 동전을 넣어 봐라. 그래야 맥주를 빼 묵지. (나: 더듬더듬 동전을 넣는다.) 그렇지, 그래. 어디 보자. 니 맥주 큰 거 마실래, 작은 거 마실래? (나: 큰 거요) 그럼 이거를 눌리라. 그럼 이리로 맥주가 나올 끼다. (나: 네, 하며 버튼을 꾸욱 누른다. 맥주가 덜커덩 하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옳지, 됐네!”

할머니가 미소를 띈 채 내게 맥주를 건네셨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좀 떨어져 있는 누군가를 부르며 내게는 ‘그럼 간다’ 하시며 훌쩍 가 버리셨다. 내 손에 쥐어진 차가운 맥주 캔 하나. 나는 왜 뜬금없이 할머니한테 자판기 사용법을 배운거지? 할머니가 나한테 자판기 사용할 줄 아는 거 자랑하신건가.... 노인이니까 자랑할 만도 하지만. 아무래도 나를 바보로 보신 게.... 흑. 아무튼 얼른 방으로 가자. 차가운 맥주가 식기 전에 방으로 가자.

방에는 남편이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빈둥거리며 노트에다 뭘 끄적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본 남편은 내 손에 들려 있는 캔 맥주를 보며 내 계획이 실패했음을 직감한 듯했다. 남편이 내게 조심스럽게 미끼를 던졌다.

“좀 있으면 쇼가 시작 될 거야. 그거나 보고 오는 게 어때? 맥주 한잔 하면서.”

쇼라니? 이 배 위에서 쇼를 한다고? 아하하하 세상에. 내가 그런 거에 구미가 당길 것 같아! 사실 나는 과거에 알아주는 축제 마니아였다. 전국의 축제장을 찾아다니며 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가는 곳마다 비슷한 축제에 실망을 거듭하다 5년 전 지역 복숭아축제를 마지막으로 축제를 딱 끊었다. 그리고 지금은 축제 같은 거 기대도 흥미도 못 느끼며 무료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그랬는데 갑자기 쇼란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축제 본능이 꿈틀하고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아니야, 아닐 거야. 여기서 이러면 이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방문을 나서고 있었다. 무엇에 이끌리듯 쇼가 펼쳐지는 일층 로비로 향해 걸어간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무리 궁색한 쇼가 펼쳐진대도 대실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즐기겠노라 다짐하면서. 그런 내 손엔 아직도 차가운 맥주 캔 하나가 들려 있었다.

(네, 아직도 오사카엔 도착을 안 했어요. 하지만 이 배는 오사카로 향하는 중임에 분명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 오사카 방랑 여행기의 끝은 옵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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