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1]

별 계기도 없이 오른쪽 목에 담이 왔다. 내 나이 좀 더 젊었을 땐 담이 오면 ‘올 것이 왔군. 그래, 올 만했지.’ 하고 수긍을 했다. 추운 데서 이불도 없이 웅크리고 자고 일어나 갑자기 헤드뱅잉을 한다든가 학춤을 춘다든가 계단에서 구르든지 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잘 자고도 예고 없이 담이 온다. 담 스위치가 온 오프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세수를 하고 고개 들 때 삐끗, 아이가 불러서 살짝 돌아볼 때 달깍 하는 식이다. ‘삐삐삐-- 이제부터 담이 내릴 것입니다. 준비하세요. 담이 퍼지는 강도와 범위는 지금 당신의 대처에 달려 있어요.’

돌아보지 마라 했으면 돌아보지 말지, 꼭 말 안 듣고 돌아보다가 몸이 서서히 돌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기분이다. 삐딱한 목을 한 채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예를 들면 한 손으로 아이를 업은 채 나머지 한 손으로 국을 끓이며 간을 맞추는 일은 도저히 못할 짓이다. 두 발로 만화책을 지지한 채 한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고 나머지 한 손으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귤을 까먹는 일이라면 목을 부여잡고서라도 할 텐데.... 어느새 만화책도, 산더미같은 귤도 사라지고 로가 어부바를 해 달라고 내 옷자락을 끌며 울고 있는데, 국인지 뭔지가 내 앞에서 신나게 끓고 있는 게 나의 현실이다. 

아아, 이대로 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풀려 행복하게 살 것인가. 나는 지각 있는 현대 여성이니까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방법을 생각해 본다.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건 어떨까. ‘마침 담이 왔으니 월차를 쓸게.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은 내 대직자에게 일러두었어. 근육이 계속 굳고 있는 관계로 그럼 이만 총총’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어째 꿈속에서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담이 내린 나는 천상 담이 내린 채로 애들 학교 보내고, 유치원 보내고, 같이 놀아 주고, 때맞춰 아이를 픽업하고, 장을 보고, 식사 준비를 한다. 개를 키우니 개밥도 챙겨 주고 (메리, 욜라는 개똥을 치우기는커녕 개밥도 잘 안 챙긴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한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결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맡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향해 화를 낼 수 있을까? (내 집 아니면) 갈 데 없는 자신의 처지에다? 내게 다소 무심했던 남편에게? 엄마를 한시도 가만 놔두지 않는 아이들에게?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며 만나는 총체적인 시스템에 대해? 그런데 내 양심은 날 꾸짖었다.

목에 담 내린 기린과 로. ⓒ김혜율

‘안 좋은 자세로 오래 스마트폰 들여다보곤 했잖아. 밤새도록 인터넷 쇼핑만 안 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거야. 그러면서 운동도 안 하고 스트레칭은 더더욱 안 했다고!’

이런 깨끗하고 정직한 양심 같으니. 휴우....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한 것이 엄마 노릇 때문이었다는 이유가 내세우기 쉬운 변명이 되게 하고 싶진 않다. 나는 그만 한심한 생각이 들어 손으로 아픈 데를 주무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나를 남편이 보았다. 남편은 마치 언젠간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어느 용하다는 물리치료사 이야기를 꺼냈다. 근육, 관절, 척추 전문가인 그는 얼마나 용한지 일명 ‘몸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단다. 남편과 같은 체육관을 다닌 몸신은 관원들이 운동 중에 입는 예상치 못한 부상을 손봐 주곤 했는데 그게 어찌나 제대로였는지 다들 ‘몸신 몸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서 실의에 빠진 사람은 바로 눈앞에 있는 희망도 잡기를 주저한다. 몸신과 만날 날을 잡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치료사무실에 방문예약 전화를 하는 남편을 향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안 갈래. 나.... 단순한 담이 아니야. 뿌리가 깊어. 오른쪽 어깨도 아픈 지 한참 됐거든. 암만 몸신이라고 해도 힘들 거야. 그래, 이건.... 못 고쳐. 어흑흑.”

그리고 내가 죽으면 남겨진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나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다는 아이들을 잘 키워 달라는 내 유언이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생각해 보니 나만큼 남편이 아이들을 잘 키울 것 같진 않다. 돈을 벌면서 동시에 어린 자식을 세 명이나 돌보는 건 확실히 무리다. 그럼 아직은 죽으면 안 되는 건가 봐. 나는 결국 살아 보자고, 몸신을 찾아가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몸신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서류를 떼거나 민원인 전용 공짜 팩스를 쓰기 위해 내가 자주 가던 동사무소 건물 바로 옆 ‘oo척추센터’라는 곳이 그의 연구실 겸 사무실이자 치료실이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아 지나칠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작은 자갈돌을 깔아놓은 길고 좁은 마당이 이어져있다. 이곳을 자박자박 소리 내며 걸어가면 의외의 공간이 펼쳐지며 외벽을 황토로 마감해 놓은 건강미 풍미는 척추센터 건물이 나온다. 마당 중간쯤에서부터 건물의 현관문까지는 자갈돌 대신에 목재 데크가 넓게 깔려 있다. 내가 사는 시골집에도 꼭 한 번 깔아 보고 싶은 데크, 하지만 돈이 없어서 아직 못 깔고 있는 데크가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있다. 어딘가 삐었거나 뻐근한 사람들이 몸신을 만나 몸이 다 나으면 이곳 데크에 모여 되찾은 건강을 축하하는 바비큐 파티를 여는지도 모른다. 아아, 나도 거기에 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척추센터’는 몸신 어머니의 건물이라 들었는데 이는 건물주의 아들이자 치료사인, 일명 ‘몸신’이 다달이 나가는 월세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고객들의 건강관리에 힘쓴다는 말이 된다. 사사로운 것에 얽매일 필요 없는 몸신의 치료 기량은 과연 어느 정도란 말인가! 나는 신뢰 가득한 마음이 되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어깨, 골반, 관절, 자세 교정’이라고 쓰여 있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각종 치료기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공간이 열렸다. 몸신은 직접 손으로 몸을 진단하고 풀어 주는 것 외에도 기구를 이용한 운동치료를 병행하는 모양이다. 내가 쭈뼛거리며 서 있으려니, 다른 고객을 치료 중이던 몸신이 운동기구 사이에서 몸을 비죽이 내보이며 인사를 했다. 몸에서 후광이 비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실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길을 걸어간다면 그 누구도 용한 인물임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평범한, 보통의 젊은이가 몸신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비범한 인물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 곁을 무심코 스쳐지나갔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온갖 명의, 달인, 고수, 장인, 무형문화재는 흔히들 평범한 이웃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을 테니 만나는 모든 이를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야겠다. 

"선생님, 저 나을 수 있을까요?" ⓒ김혜율

기분 탓이었을까, 동글동글한 외모로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몸신은 눈빛만큼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몸신은 아픈 데를 정확히 짚어 내고 신묘하게 풀어 주는 재능꾼이었다. 꽤 오래갈 것 같았던 담을 얼마지 않아 풀어 버리고 그것의 근본 원인인 잘못된 자세로 인한 근육 경직을 지적했다. 몸신이 내 어깨 근육을 풀어 주며 말했다.

“새해 들어서 오신 고객님 중에 근육이 뭉쳐 있기로는 고객님이 으뜸이시네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런데서 일등을 먹으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몸신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로 울먹이듯 물었다.

“선생님.... 저.... 나을 수 있나요?”
“....”

몸신은 잠깐 뜸을 들이다 이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요. 충분히 좋아집니다.”
“와아!”

좀 전까지만 해도 죽느니 어쩌니 하던 나는 몸신의 그 한마디에 다 나아 팔팔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몸신의 ‘치료 제안-일주일에 두 번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을 것’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으며, 그런 대신 회당 치료비 오천 원 할인을 받았다.

그렇게 나와 몸신과의 만남은 약 2주 전부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만남 때 몸신이 물었다.

“좀 어떠셨어요?”

“좋아요. 아주 괜찮아요. 그런데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그때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요.”

몸신은 희망에 차 있는 내 상태가 기대 이상이라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됐네요. 마음이 편한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이 세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마음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그와 같죠. 혹시 이런 거 들어 보셨나요? ‘환상통’이라고요.”

몸신은 수수께끼를 내면서 상대가 절대 못 맞출거라고 확신하는 꼬맹이처럼 싱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몸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p.s: 몸신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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