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5]

배에 오르자 어두운 피부색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동남아계의 젊은 승무원들이 노란색, 파란색 바탕에 야자수와 열대의 꽃들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서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 발음이었다.

나는 그들이 입고 있는 하와이풍 셔츠를 보며, 배로 하는 여행에는 나름 컨셉이라는 게 있고, 아무래도 이번 시즌엔 그게 ‘여름날의 젊음! 열정! 그리고 휴양!’인가 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수정예로 구성된 몇몇 한국인 승무원들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나비넥타이를 하거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군데군데 공단 천으로 포인트를 준 꽉 끼는 베이지색 유니폼 차림이었는데 승객들에게 미소를 짓느라 내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엔 정색하고 웃어야 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선실 로비로 들어가자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굽이치는 머리칼과,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길고 짙은 눈썹을 가진 이국의 여성이 검은색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여객선에서 마련한 고품격 환영 인사인가 보다. 음악은 공간을 생기 있게 만들었고, 여행객들 얼굴에도 혈색이 돌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는 즐거우면서도 어쩐지 슬픈 느낌이었는데, 타국의 바다, 정박한 배 위에서 연주인생을 꾸려 가는 그녀 자신의 애수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저마다의 객실을 찾느라 분주하다. 객실 문을 열어젖히고 짐을 밀어 넣는다. 그때마다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의 동선이 뒤엉킨다.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에는 선실 통로가 좁기 때문이다. 방은 남녀로 구분되어 3명에서 5명 정도 배정이 되는 것 같았다. 생판 모르는 남과 한 방을 쓰는 일도 있다는 말이다. 열린 방문 너머로 이런 건 일도 아니라는 듯 방바닥에 일인용 매트리스를 깔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프라이버시와 안락함보다는 한정된 공간에 최대의 인원을 배정받는 게 우선인, 말하자면 우리는 3등 선실에 타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약간의 추가비용을 내고 객실 업그레이드를 한 우리는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양쪽 벽면에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침대 사이로 협탁과 텔레비전이 놓인 게 전부인 방이지만 아무쪼록 둘만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바닥에 여행 가방을 눕혀 놓으니 남는 공간이 얼마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방에서 체조 같은 걸 할 수는 없겠다. 두 사람이 동시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가는 보기 좋게 박치기를 할 것 같은 거리감. 그러니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는데, 방문이 열리거들랑 어물쩡거리지 말고 바로 각자의 침대로 점프를 할 것. 벽에는 창문 대신에 파란색 액자가 한 점 걸려 있었다. 언뜻 보면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되는지 볼까 하고 전등을 껐더니 방은 완벽한 어둠에 잠겨 버렸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며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푹 하고 웃었다.


“어우, 거참, 괜찮네.”
“후후. 그러게. 괜찮다아. ”

그때 배가 움직이는 진동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배 엔진을 돌리는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정말로 떠나는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겠지. 배는 앞으로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땅콩을 봉지째 줬다고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일이 일어나면 곤란하지만 다행히 이 배는 땅콩 같은 걸 서비스하지 않는다. 배는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10시면 오사카에 닿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누워서 앞으로의 일을 잠시 고민해 보았다.

일단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남편이 노트북을 켜고 ‘어디 보자. 저장해 논 영화가 어디 있는데’ 하더니 ‘쿵푸팬더’를 찾았다.

“에이.... 나 그거 세 번인가 봤어. ”
“이거 2야.(2는 못 봤을 거야)”
“투? 와아!”

한때는 극장에 걸린 영화란 영화는 다 보고 다니던 우리였는데,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돼 버렸는지. 용의 전사 쿵푸팬더에게 닥친 새로운 위기! 이번 편의 악당은 공작새였다. 악당은 죄다 악당같이도 생겼다. 악당들이 늘 그러하듯 공작새도 세계정복이라는 야욕을 꿈꾸지만 암만 그래도 쿵푸팬더를 이길 순 없을 것이다. (쿵푸팬더 시리즈는 3까지 나와 있으니까.) 그런데 나나 남편이나 너무 졸린 나머지 악당이 망하는 꼴을 못 보고 중간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꼬박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불 꺼진 방안은 캄캄하고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된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 왔다. 나는 안도했다. 한 시간만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탔으면 이렇게 잠도 푹 못 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을 텐데. 그랬으면 어쩔 뻔했냐 말이다.

▲ 오사카로 가고 있는 배. ⓒ김혜율

배 안에는 사우나도 있었다. 몸을 씻을 데는 그곳뿐이다. 말이 사우나지 그냥 조그만 목욕탕이었다. 내가 들어갔을 땐 이제 막 씻고 나가는 사람이 두어 명뿐 나는 곧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 혼자 목욕탕을 차지하고 뜨뜻한 탕 안에 들어가 목까지 물에 잠기도록 몸을 담그고 앉아 있자니 그 또한 괜찮지 아니했던가. 내가 목욕탕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들어오셨다. 아까 배에 탈 때 소동을 일으킨 보따리상 할머니들인 것 같았다. 작은 목욕탕이라 말을 하면 큰 소리로 확대되어 들리기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할머니들의 수다를 생생히 듣게 되었다. 뚜렷한 부산 사투리의 음성들이었다.

“니 등에 벌건 거 뭐꼬?”
“벌레한테 물맀다. 오사카에 있는 이모 집에서 자는데 집에 벌레가 우글우글한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막 손으로 잡는다고 잡았는데, 글쎄, 등을 물맀네.”

한 할머니의 고백에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진다. “에그, 끔찍해라. 더 이상 말 안 해도 상상이 간다. 상상이 가. 으이그, 더러워 죽겠네.” 깔끔쟁이 할머니.
“약을 좀 치라고 해라. 약을 치면 될 것을 왜 그라고 사노.” 문제해결형 할머니.
"고만들 해라. 예전에 일본서 살기 얼마나 힘들었노. 그때 못 살던 습관이 들어서 그런 기다." 동정가 할머니.

나는 팔십 세 할머니한테도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이모가 계시는 데에 놀랐다. 그리고 그 이모님은 한국인일 텐데 왜 일본에서 살게 된 건지 궁금했다. 마침 할머니들도 ‘그때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르신 것 같았다.

"일제 강점기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 다들 살아 볼 끼라꼬 일본에 많이들 건너들 갔다 아이가. 근데 어디 먹을 게 있어야지. 일본인들이 못 먹는다고 버린 거 다들 주워 먹고 그랬지."
"그래 맞다. 근데 일본인들은 우리가 먹는 000는 안 먹대. 000이도 안 먹고. 당시 산에 가면 지천에 널린 게 000라. 우리는 그런 거 뜯어 먹고 살고 안 그랬나."

할머니들의 삶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조각이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저렇게 흘러흘러 어느새 신세타령으로 이어졌다.

“아이구, 다들 남편들 먼저 보내고 혼자가 되셨소? 쓸쓸하지 않소? 홀홀홀.” 한 할머니가 장난을 걸 듯 말했다.
“뭐라카노. 나는 남편 얼굴도 다 잊어 뿟다. ”
"그래, 나도 김 씨 영감이 있긴 했었는데.... 이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도 가물가물한다."
“신랑님 있으면 손 잡고 좋은 데 놀러 다니고 그랄 낀데. 그때는 좋은 줄도 몰랐다 아이가....”

할머니들이 살아온 시대에 비해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미안스러워진 나는 조용히 탕에서 일어났다. 벽면 샤워기 쪽 자리에 앉아 목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는 초록색 때 타월을 살포시 꺼내 들었다. 이 초록색 때 타월은 배를 타기 전 국제여객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득템한 물건이다. 여행하는 동안 몸을 씻을 때 이보다 더 간소하며 유용하고 상쾌하고 요긴한 도구가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악, 사악, 사악, 사아악. 그런데 그때까지 내게 말 한마디 안 건네던 할머니들이 내 때 타월을 보자마자 어떤 영감을 받으셨는지 한 할머니가 내 옆으로 오시더니 물으셨다.

“저기, 아. 가. 씨.... 혹시 한국인이에요?”

나는 아가씨가 아니면서도 한국인이긴 하니까 얼렁뚱땅 공손하게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때 타월을 낚아채시더니 등을 대라고 하셨다. 때 안 밀어도 돼요. 하고 한사코 사양하지만 끝끝내 등을 밀어 주시고 등을 밀리면서 피어나는 목욕탕 속 이웃의 정. 나는 시원해진 등이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미 옆 동료에게 등을 말끔히 밀린 이 할머니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할머니도 목욕 뒤 시원한 맥주 한 잔쯤은 하시겠지? 나는 목욕을 마치자마자 일본 동전을 잔뜩 챙겨 선내 편의점 옆 맥주 자판기 쪽으로 건너가 할머니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내게 등을 밀어 준 할머니가 나타나면 얼른 한 캔 뽑아 드려야지! 나도 한 캔 마시고! 저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보인다. 아아, 과연 나는 할머니의 은혜를 무사히 갚을 수 있을 것인가?!

(오사카 여행기라면서 오사카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오사카 방랑 여행기. 앞으로 계속됩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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