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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가족[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0]

새해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에 식구 하나가 더 늘었다. 나는 좀 더 신중하자고 머뭇거렸는데 남편이 불같이 달려들어 일을 내고 만 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이 셋으로도 모자랐던 것일까. 그동안 아이 낳고 키운다고 나도 할 만큼 했는데 이제 와서 왜 또! 아니, 잠깐만. 지금 여러분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 또 아이가 생긴다면.... 이라는 생각만으로 현기증이 올라오니까 상상조차 그만두자. 그렇다고 어디서 양자를 들인 것도 아니다. 그럼 초가삼간 본체에서 마당을 보았을 때 11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별채에 수상한 식구라도 들어온 걸까? 

하지만 그곳은 불도 안 들어오는 냉골. 책장에 꽂힌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꽁꽁 언 채 겨울잠을 자고 있을 뿐, 결코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니다. 그러나 새로 온 식구는 찬 데 더운 데 가리지 않는 호방한 자였다. 그는 마당 한 켠에 마련된 자그마한 목조 주택으로 들어갔다. 짐작하실지 모르지만 새로 들어온 그 식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멍멍하는 개. 그 녀석은 남편이 책장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목으로 만든 번듯한 목조 개집에서 살고 있다. 

개집은 내구성이 좋고 더없이 친환경적이다. 문득 개집을 탕탕 분해해 이장님 댁 화목보일러 땔감으로 보내면 손녀아기가 자는 방이 퍽도 뜨뜻할 텐데.... 라는 비뚤어진 생각이 든다. 개가 그곳에서 호의호식을 하든지 별빛 달빛을 이불 삼아 풍찬노숙을 하든지 내 알 바 아니다. 아무튼 나는 그 녀석이 어색하고 못마땅한 것이다. 개를 키우는 데 또렷하게 찬성한 적이 없는 내가 어쩌자고 새 생명을, 새 가족을 맞게 됐는지 아직도 아연하다. 이 사태의 발단은 약 3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들 중 특히 욜라에게 애정을 보내 주시는 지인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욜라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차츰 귀여운 느낌을 잃어 가고 촌스러워지는 데 반해 비교적 세련된 외모로 치고 올라오는 로가 주위의 인기를 독식하는 판국에도 변함 없이 ‘욜라 사랑’을 외치시는 지조 있는 분이다. 또한 내가 아는 한 가장 강인하고 아름다운 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날은 그분이 보낸 맛있는 커피콩이 우리 집에 당도한 날이었다. 커피를 맛있게 마신 나는 그분께 전화를 드렸었다. 대화는 조금 길어지는가 싶더니 그분이 키우고 있는 개에 이르렀다.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오고 있는 욜라. ⓒ김혜율

아아, 그 분 개는 어쩌자고 그리 성품이 깔끔하여 오줌을 아무 데서나 싸지 않고 영특하고 온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가. 애견인들의 흔한 레퍼토리였지만 그날 따라 나는 개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런 개라면 키워 봄 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눈치 채셨던 것일까. 그분은 내게 개를 키워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마당이 있고 아이들이 있으니 개를 키우면 좋을 텐데 하시는 말씀이 너무도 타당하게 들려 나는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네.... 그렇겠네요. 선생님이 키우시는 개쯤 된다면....” 하지만 이어서 덧붙였다. “그런데 강아지를 구할 데가 없어서요. 저희 동네만 하더라도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은 없으니까요.” 역시나 난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에 개를 키우더라도 그건 한참 먼 훗날이겠거니 조심스럽게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자마자 소파에 앉아 딴짓을 하는 것 같던 남편이 말을 걸어 왔다.

“무슨 재밌는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어. 젤뚜르다님이 개를 키우신다네. 무려 16년째! 그런데 그 개는 오줌도 아무 데나 안 싼대. 꼭 밖에서 누고 온대.”
“우와, 대단하네! 그래, 그래서?”

남편은 이때 이미 뭔가를 계획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유달리 들떠 있었는데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남편이 원하는 말을 술술 불고 있었다.

“응, 그래서 내게도 개를 키워 보지 않겠냐고....”
“그래? 그럼 키워 볼까?”
“아니, 무슨. 개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겠어? 애 하나 키우는 거랑 같다고 하잖아. 개는....” 하는데 남편이 박력 있게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키우면 좋지! 참 좋지!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강아지 키운다고 그러면, 아마 우리 애들도 엄청 좋아할 거야.”

나는 굳건하다가도 아이들 정서, 그쯤에서 늘 흔들린다.

“아아, 그래. 아이들은.... 그렇겠지. 아이들한테는 좋겠지....”

남편만 내게 ‘개 개’ 거린 게 아니라, 메리도 가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옆에서 욜라도 덩달아 키우자고 졸라 댔다. 로도 누나나 형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뭐라도 남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같은 편이 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철옹성처럼 견고한 표정으로 메리, 욜라, 로를 주욱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개? (아이들: 아니, 강아지!) 강아지가 개야. 개.... 물론 키울 수 있지.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밥도 주고. 개똥도 치워야 해. ”

아이들 일동 “엄마가 하면 되잖아!” 이, 이런! 때끼 순!

“아니! 못 해. 엄마는 너희들 밥 주고 똥 치우는 것만 해도 힘들어. 흥. 엄마가 지금 로 똥만 치우는 줄 아니? 메리랑 욜라, 너희 아기였을때도 똑같이 했어. 하루에 한 번씩 똥을 씻겨 줬다고 치면 일년이면 365번. 그걸 대략 2-3년.... 애가 세 명이니 3으로 곱해야지. 어우, 그러면 대체 몇 번이야? 천 번? 아니, 삼천 번도 더 넘겠네. 삼천 번! 으아아....! 허억 허억. 그런데 엄마 보고 개똥까지 치우라고? ....으하하. 으하하하. 으으하하하!” 어쩐지 괴로워하면서도 실성한 듯 웃는 나를 아이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쳐다본다. 이럴 때 확실히 하자. 매서운 눈빛으로.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오고 있는 욜라. ⓒ김혜율

“메리, 너가 개똥 치울래? (메리: 어? 으으으.... 아니.) 욜라, 너는? (욜라: 에헤헤, 나도 아니.) 그래. 그럼.... 강아지는 너희들이 개똥을 치울 수 있을 때 키우는 걸로 하자! 알았지?”

아이들은 시무룩하여 “응....”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개 키우자는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개똥 블로킹’을 통해 개 키우는 걸 의연하게 막아 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이라도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도 개를 키우면 개똥을 누가 치우겠냐고 말하려는데 남편은 이미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내가 이미 열 번 정도 들어 본 이야기를 또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워 봤잖아. 아버지가 어느 날 장에 가셨다가 강아지를 사 오셨어. 거 참. 그때 아버지가 강아지를 안고 있던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네. 참 예뻐했는데....! 강아지 줄 거라고 학교에서 주는 우유도 안 먹고 남겨 오고 그랬어. 그럴 때마다 할머니한테 혼났지만.... 훗훗.”

남편이 개와의 추억을 더 음미하도록 나는 말없이 텅 빈, 마당을 눈으로 거닐었다. 그리고 늘 그래 왔듯이 화제선상에 올랐던 미지의 개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해야 할 것들도 자꾸 잊어버리던 그 다음 날, 남편이 내게 강아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본인 sns 친구의 친구가 키운다고 했던가. 나는 그날 따라 무척이나 바빠서 ‘어어, 그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걸 강아지 입양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인 남편이 개 주인과 접선하여 다음 날 개를 보러 간다고 했다. 개를 데리고 오는 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하고 그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걸 나중에야 후회했지만 일이 되려고 했는지 개는 단숨에 우리 식구가 되고 말았다. 

개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역사적인 순간을 아이의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남편은 아침 일찍 자고 있는 욜라를 깨워 차에 태우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가 기어이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 버린 것이다. 그렇게 행동이 빠를 수가 없었다. 싱크대 하부장 손잡이를 달아 달라던가, 세탁기 뜨거운 물 담당 호스를 새로 갈아 달라는 요청은 바쁘다고 일 년이 넘게 미루고 있으면서 개는 이야기 나오자마자 단 3일 만에 데리고 오다니. 하필 그때는 내가 무슨 일로 굉장히 바빠서 개에 대해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때이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는 아직 없는 어린이 중창단을 결성해 보려고 지도 선생님과 학부모들과 논의를 하고 의견을 조율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남편이 데리고 온 개는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은 수컷 진돗개라고 했다. 나는 개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어쩌지. 개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맘에 안 드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못된 시어머니처럼 집 안에 앉아서 창 너머로 개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개는 주둥이 쪽이 거뭇하고 몸통은 전체적으로 누런색이었다. 개의 외모를 중시하는 나는 조금 실망하였다. “진돗개 맞아? 그냥 똥개 같은데. 누런 털에 거뭇한 입하며.... 완전 똥개네, 똥개.”

내 말에 남편은 당황하며 그 개는 분명 진돗개가 맞다고 하면서 마치 혈통보증서라도 되는 듯 강아지를 분양해 준 집에 가서 찍어 왔다는 강아지의 엄마와 외할머니개 사진을 보여 주었다. 부숭부숭한 꼬리털를 말아 올린 채 먼 데를 응시하는 참으로 기품 있는 풍모를 한 하얀 진돗개가 외할머니고, 카리스마 있고 몸매가 잘빠진 검정 진돗개가 엄마라고 했다. 털 색깔이 왜 제각각이냐고 따지자 남편은 개의 전 주인이 했다는 말을 전했다. 털 색깔은 랜덤으로 유전 발현된다나 어쩐다나. 

누런 진돗개의 엄마는 검정색이다. ⓒ김혜율

그래도 품종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지 이틀째 되던 날, 우리 집 마당에 산꼭대기 두 번째 집 아저씨가 키운다는 노루 잡는 개가 나타났다. 그 개는 사람으로 치면 키가 팔척 장신 근육질의 남자로 밭 작물을 해치는 노루를 잡는 역할을 맡은 검정 사냥개였다. 말로만 듣던 그 개가 내 눈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 무서워라! 개가 순하다고 믿는 아저씨가 묶어 놓는 걸 소홀히 하신 걸까. 그래도 절대 내려오는 법이 없던 개였는데 우리집에 새로 온 개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 그 개를 보자마자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상하며 설마설마하며 온몸이 얼어붙은 채 말도 못했다. “어어어, 저.... 저! 저기. 아아. 어어어....”만 하던 그때였다. 우리 집 개가 그 개를 향해 으르렁 대며 힘차게 짖기 시작한 것이다. 복슬복슬하고 통통한 앞발을 낮추고 엉덩이를 드는 도전적인 자세를 잡은 채 미친 듯이 짖었다. 어머, 세상에! 입에 침이나 질질 흘리던 아기 강아지가 용맹도 하여라. 그리고 놀랍게도 검은색 사냥개는 우리집 개가 짖는 기세에 슬슬 뒷걸음질치더니 제 집이 있는 산 쪽으로 도망을 가 버렸다. 오호, 이 자식, 제법이다! 정말로 집을 지키는 영특하고 용감한 진돗개가 맞긴 맞나 보구나.

개 이름은 원래 ‘누렁이’였다. 흔하고 흔한 이름이군 생각했는데 누렁이를 ‘누룽지’로 잘못 알아들은 로가 ‘누룽지?’라고 하는 바람에 하루 만에 누렁이에서 누룽지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 집 식구들에게 누룽지를 돌보는 각각의 임무를 맡았다. 개밥과 개 물 담당은 메리, 산책 등 놀아 주기는 세 아이 모두, 특이하게도 개의 털이나 외견상 건강을 살피는 건 욜라. 개똥 담당은 아이들의 추천으로 남편이 된 것 같다. 후후. 나는 그 어떤 직책을 맡는 것도 사양했다. 나는 누룽지하고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었고 대신 함부로 할 수 없는 주인 중의 주인, 최상위 주인 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 노력할 뿐이었다. 

나를 만만히 보지 않도록 눈에 힘을 주고 다녔고 화난 듯한 음성으로 ‘안녕’ 하고 가끔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신상 털 슬리퍼를 보란 듯이 물어뜯고 심지어는 신고 있던 신발마저 벗겨 물고 도망가는 꼴을 보니 어째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이러저러하여 졸지에 개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무술년이다. 무가 황이고 술이 개니까 ‘노란 개의 해’가 되는데 사람들은 황금개띠 해라고 부른다. 현실적으로는 ‘누렁이의 해’정도가 되려나. 바로 우리 집에서 살게 된 누렁누렁한 진돗개 ‘누룽지’가 마치 올해의 상징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나를 보고도 주저 않고 망망! 짖으며 달려든다.

“이이익.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야! 야! 내 신발 줘어!”

p.s 다사다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 해가 또 열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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