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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방랑 여행기 4[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7]

편의점과 면세점을 제외하곤 로비 전등은 죄다 꺼진 상태였고 대신 무대 위 조명만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과 어둠, 그 둘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밝았고, 빛으로 인해 어둠은 깊었다. 구석에선 괴물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 사이로 무대조명이 화살처럼 날아다녔다. 웅성웅성. 쇼가 곧 시작되려 했다. 하지만 얌전히 앉은 채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은 스무남은 명쯤 될까. 멀찍이서 서성대는 사람, 앉은 자리에서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 내 볼일은 오로지 편의점이라는 듯 이쪽을 힐긋 한 번 쳐다보고 가는 사람, 관객이라고 부르기에는 영 모자라 보이는 오합지졸 모두를 다 합쳐 봐도 로비에 있는 이는 서른 명이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쇼는 뭐니 뭐니 해도 관객의 호응인데 이래서는 망조가 들었다고 봐야 한다. 배는 한국과 일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꼭 하룻밤을 그 중간 바다 위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쇼가, 심드렁한 얼굴의 소수 관객을 위해 꿍짜라 작작 성대하게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배 위에서 펼쳐지는 쇼 따위 모르고 살던 예전이 그리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쇼는 결국 쓸쓸히 망해 버리고 밥줄이 끊긴 쇼 단원들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설움을 겪는다는 그런 이야기 하나를 내가 알게 될까 봐서였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가끔 그날의 선상 쇼를 떠올려 보곤 하는데 어쩐지 슬픔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것도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질 않다. 얼마나 내가 매정한 인간이냐면 이젠 쇼가 망한다 해도 별 수 없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마음이 참 따뜻해서 관객을 늘리는 방법으로 분신술이라도 쓰려 했다. 관객을 더 늘릴 수만 있다면, 내 머리털 한 뭉치쯤은 희생해도 상관없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향해 뛰었다. 바로 자신의 안락한 침대 위에 누워 기지개를 펴고 있을 남편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음식도 혼자 먹기보다 여럿일 때 더 맛있고, 자신의 몫이 작아질수록 맛은 더욱 사무치는 것처럼, 쇼도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볼 만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별것 없는’ 쇼도 ‘다시없는’ 쇼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남편은 ‘뭐? 쇼를 보러 나오라니.... 농담이지? 음, 농담일거야.’ 하는 표정으로 몸을 반쯤 일으켜 보더니 이내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 몸은 아주 무거워 보였다. 말 안 듣는 욜라나 로는 이럴 때 보쌈을 해 가면 되는데 남편은 어떻게 들어 올리나. 

나는 문득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걸 떠올리곤, “아니.... 쇼를 본다기보다는 같이 맥주 한잔 하자는 거였지 뭐....”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갓 얼음통에서 꺼낸 맥주 뚜껑을 땄나 보다. 어디선가 맥주가 치이익 뿜어져 나와 나태한 남편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한 방울의 맥주가 남편의 입속으로 굴러 들어갔고 갑자기 타오르는 갈증을 느낀 남편이 옷을 벗.... 아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른바 나그네의 햇볕에 필적하는 환상 속 맥주 샤워였다. 내 뒤 스무 걸음 즈음 남편이 따라나오는 기척을 느끼며 나는 유유히 쇼 장으로 향했다.

쇼는 이미 쿵작쿵작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는 좀 전의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들어갔는데 그 덕분으로 공연장의 열기가 점점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자의 말과는 달리 관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해 보였다. 모두 정자세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양새가 그랬다. 나는 괜히 머쓱해서 현실의 맥주 뚜껑을 힘차게 따 맥주를 꿀떡꿀떡 소리나게 마셨다. 입가에 묻은 거품도 손으로 거칠게 닦아 냈다.

사회자는 관객 분위기는 아랑곳 않고 다음 무대를 소개했다. 그러자 이 배의 여자 승무원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단정한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채였다. 사회자가 말하길 그녀는 노래 실력으로 텔레비전 출연도 여러 번 한, 명색이 실력파 아마추어 가수란다. <아침마당> 000회를 찾아보면 그녀가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과연 그녀는 텔레비전에 여러 번 출연한 사람답게 세련된 무대매너가 돋보였다. 스무 명이 될까 말까 하는 관객이 그녀 눈에는 수백 명으로 보이는 건지 노래에 정성과 열정을 쏟았다. 첫 번째 노래가 끝나자 짝, 짝, 짜자작 하는 드문드문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녀는 이어 두 번째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노래를 관객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부르는 것 같았다. 

크루즈 안에서 보는 창밖 바다. ⓒ김혜율

무대조명이 잔잔하게 그녀를 비추었고 우리 오합지졸 관객들은 저마다의 감동 속에서 숨을 죽였다. 이때 아까 방에서 출발했던 남편이 내 옆에 당도했다. 남편은 이 쇼가 2년 전 자신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갈 때 보았던 그때 그 쇼라면서 내게 쇼의 관람 포인트 하나를 알려 주었다. 그건 무대에 오르는 이들 대부분이 별도 구성되거나 초청된 단원이 아니라 이 배의 승무원들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 잘하는 무대 위 사회자가 어째 안면이 있다. 그는 바로 이 배의 행정실무원이면서 승객서비스 총책임을 맡고 있는 남자 승무원이 아닌가.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저녁밥 먹을 때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반찬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어떤 것을 더 보충해야 하는지 식당을 총괄 지휘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남편은 그의 변신이 여객선 측의 무리한 인건비 절감정책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외부인사로 쇼를 꾸려 가는 건 무리지만 그렇다고 크루즈에 선상 쇼가 빠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경영진의 이율배반적 결정으로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쇼의 사회를 맡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거의가 모이지 않는 쇼의 사회를 무수히 봐 오면서 그는 점차 단 스무 명의 관객 앞에서도 기백을 잃지 않는 사회자가 되기에 이르렀을 거다. 방금 노래를 부른 여자 승무원도 다재다능하긴 마찬가지다. 그녀는 배의 운영 실무를 책임질 뿐 아니라, 틈틈이 면세점에서 물건도 팔고, 밥 때가 되면 식당 일도 거들고, 누가 부르면 얼른 안내 데스크로 뛰어가 환전을 해 주는가 하면 이렇게 쇼가 열리면 노래까지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무대 뒤에선 또 다른 승무원이 조명과 마이크를 책임지고 있을 게 뻔했다.

다음은 단체 춤을 선보이는 무대가 펼쳐졌다. 이마저도 댄서는 이 배의 외국인 승무원들. 일고여덟 명의 여자 승무원과 한 명의 남자 승무원으로 이루어진 댄스 팀은 자신들의 하와이풍 근무복을 입은 채 등장했다. 그리고 훌라춤을 췄다. 그런데 음악에 맞춰 몸에 리듬을 주는 솜씨들이 억지로 동원된 댄서가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춤을 춰 온 사람들인 듯했다. 그들 얼굴엔 진지하게 무대에 임하면서도 무대를 즐기는 프로의 표정이 배어 있었다. 특히 청일점 남자 승무원은 무대 아래에선 시들어 빠진 시금치 같은 표정의 사람이었는데 춤출 때의 표정은 맛있는 캐러멜을 먹기 위해 엄마에게 아양을 떠는 아이처럼 끼가 넘치더니 결국 캐러멜을 얻어먹었는지 나중에 행복감이 폭발하는 듯 보였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우리는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데 그들은 나 몰라라 훌라훌라 훌라를 춘다. 관객석 어딘가에서 할머니 두 분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훌라훌라 할 때마다 어이쿠 으이쌰 하면서 엇박자로 몸을 구부렸다 펴셨다. 마을회관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춤사위였다. 사태는 점점 점입가경이 되어 갔다. 갑자기 곡이 바뀌는가 하더니 몇십 년 전에 유행했던 스페인 노래 ‘마카레나’에 맞춰 댄서들이 일제히 ‘에~ 마카레나’ 하면서 춤을 추었다. 이건 관객 참여 무대인지 댄서들이 춤을 추다 말고 무대에서 내려와 사람을 잡아간다. 할머니를 비롯한 관객 서너 명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댄서들의 동작 시범을 숙지한 관객 일동과 승무원 댄서들이 노래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나는 마카레나가 한창 유행할 때도 일절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인데 춤을 조금 추고 싶었다. 하지만 추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댄스스포츠 수업에서 D학점을 받은 성적표가 떠올랐던 것이다. 어느새 쇼는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맨 마지막 무대는 마술쇼였다. 사회자는 마술사가 짠 하고 포즈를 취할 때마다 박수를 쳐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마술사는 승무원이 아니고 외부초청 마술사인 것 같았다. 마술사는 더운 여름인데도 가죽 자켓을 입고 있었지만 마술을 부린 건지 하나도 더워 보이지 않았다. 마술사는 색종이 마술, 고리 마술, 모자 마술, 불 마술 등을 선보였는데 마술사가 갓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은 마술 수련생인지 너무 티가 났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술은 보자기에서 대형 부채를 꺼내는 마술이었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흥 하고 웃으며 보자기 뒤에 숨긴 부채가 다 보인다고 했다. 아마 관객 모두가 보았을 테지만 마술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온갖 폼을 다 잡으며 마술을 마쳤다. 

승무원들의 아마추어 무대보다 훨씬 어설펐지만 요상한 건 나는 마술쇼 이전에도, 이후에도 배 안에서 마술사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마술사는 어디에서 잠을 자고 무엇을 먹으며 지내는 것일까. 이 배에는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비밀 통로가 있어서 이미지 관리를 원한 마술사는 그 길로만 다니는 것인가. 설마 그 마술사도 변장한 승무원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나는 무대 밖에서 청일점 댄서가 다시 풀 죽은 시금치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을 뿐 마술사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배는 그렇게 사연과 노래와 춤을 싣고, 또 의혹을 안고 밤을 지새워 바다를 떠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창 너머로 희부연 실체가 보였다. 이국의 땅과 건물과 사람, 내가 잠시 살게 될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하루가 걸려서야 오고 만 일본의 오사카라는 땅이었다.

배 안 편의점에서 컵 라면 드시는 할머니가 앉은 창으로 보이는 오사카. ⓒ김혜율

P.S : 여름이 지나 가을도 쌀쌀한 가을입니다. 그런데 이제야 오사카에 오다니.... 저도 제가 너무한 것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엔 바로 여행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한 편만 더 함께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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