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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생명평화미사 지킴이 2 - 양재희 편[강정소식 - 오두희]

성실하게 일하고, 세상을 걱정하면서, 기도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

어느 본당에나 꼭 이런 분이 있다. 그런 분들의 삶이 밖으로는 교회 모습으로 비쳐 교회를 지켜 준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계가 분명해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사회의 주류가 만들어 놓은 정치적 틀에 맞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틀에서 벗어나 복음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양재희(요한, 81), 제주도에서 태어나 1956년에 영세하고 60년이 넘는 신앙생활을 해 왔다. 강정 천막미사에서 문정현 신부가 본당 사제 같은 위치라면 이분은 본당 평신도 회장 같은 분이다. 해군기지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2011년부터 오늘까지 강정 생명평화미사와 함께하고 있다.

2012년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할 때 경찰과 용역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이들과 매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거룩해야 될 미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난이 공공연히 쏟아졌다. 강정 길거리 미사에 참석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중해지거나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순간에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설 것을 선택한 분이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데는 얼마 만큼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절실히 원하고 있는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이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는 몸으로 역사를 기억한다고 말하는데, 이분은 몸으로 강정미사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구럼비 첫 미사부터, 강정사거리 공터, 공사장 정문, 간이식 접이탁자, 비치 파라솔, 비닐 덮개, 간이용 천막에서 고정식 천막까지.... 집에서 공구를 가져와 비닐하우스용 비닐도 깔고, 비 새는 곳이 확인되면 비닐을 덧대고, 바람에 펄럭이면 끈으로 고정시키고, 꿰매고, 박고, 혼자서 조용히, 조금씩, 조금씩.... 오늘의 미사 천막을 완성시켰다.

양재희 씨가 미사때 평화의 인사를 하는 모습. ⓒ오두희

요즘 농사철이라 바쁘실 텐데....

“이제는 무더위가 한풀 꺾여서 할 만해요. 여름에는 비닐하우스에서 한라봉 매달기 작업을 하는데 중간에 하던 일을 끊고.... 이곳에 와 미사하고, 돌아가 점심 먹고 달구어진 비닐하우스 안에서 매달기 작업을 하는 게 엄청 힘든 일이에요.”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 송인아 씨(아녜스, 82)가 말을 거든다. “난 소독하는 날은 오지 말자고 해요. 오후에 소독하게 되면 한라봉 꼭지 부근에 약이 고여 마르지 않아 썩게 되니까. 그래도 기어코 가요. 그럴 땐 난 싫어...” 하며 소녀같이 웃는다. 천생연분이시다.

강정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도. 단지 미사 참여하는 것 하나밖에 없어 미안하지만 본도민(제주도민)이 없으면 안 돼서 노인네라도 같이 합세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와요. 여기는 목적 자체가 강정의 평화잖아요. 그동안 나를 위해, 가정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과 기도를 했어요. 하지만 이 해군기지는 불법으로 시작했지요. 불법은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특권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원상회복되어야 하고 다시 논의해야죠.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아주 단호하다.

천막 만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하자 부인 송인아 씨가 “어깨 다친 사람이 집에 가면 아퍼 죽어 가” 하고 말하자 “지금은 호텔이야. 십자가도 걸게 되었어!” 하며 다른 말이 나올까 봐 막는다.“ 정문 앞에 오랜 시간 있지는 못하지만 미사 시간 1시간은 희생으로 있는 것이죠. 우리가 단합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는 공사장 정문미사를 지키기 위해 어깨 인대가 나가 병원에서 수술까지 했다. 지난 2013년 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강정 사정이 급변했다. 공사 속도를 내기 위해 기지사업단만 사용하던 차량들을 공사장 정문까지 개방해 양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경찰이 대거 투입되었다. 공사장 정문에 혼자 앉아 있던 양재희 씨는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무릎 위에 큰 돌을 올려 놓고 그 돌을 껴안고 버텼다. 하지만 경찰이 사정없이 어깨를 잡고 폭력적으로 끌어내는 바람에 어깨 인대 3개가 끊어져 뼈가 뛰쳐나와 큰 수술을 받았다. 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많은 지킴이들이 연행, 구속되는 상황에서 경찰의 사과나 치료비를 받아 낸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당신 때문에 우리들이 걱정할까 봐 숨겼던 것이다.

양재희, 송인아 부부가 영성체를 하는 모습. ⓒ오두희

가장 기억에 남는 미사는

“구럼비에서의 강주교 님 미사, 육지에서 많은 신부님이 온 강정포구 미사 등 잊을 수 없어요. 하지만 구럼비에서 봉헌한 새벽미사가 제일 생각납니다”라며 감격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12년 2월 구럼비가 봉쇄되어 갈 수 없을 때 새벽 5시에 카약을 타고 가 봉헌된 마지막 미사)

“본당 미사나 이곳 미사나 똑같은 미사지만 현장에서 하는 미사의 의미는 상당히 크게 느껴집니다.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죠. 30퍼센트는 마음속에서 울고 있어요. 오랜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이러한 체험은 없었습니다.” 며 오히려 감사해 한다.

“신자라면 어떤 곳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으나 강정 평화를 위한 지향을 두고 현장에 와서 기도한다면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각 본당 차원에서 미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짧은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신자 생활을 하는 사람이 탄압받는 곳, 아픈 곳, 심지어 교회로부터 소외된 곳에 와서 미사천막을 지켜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강정미사에 온다는 것은 상당히 신변에 위험이 따르고,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행위인데도 몸과 마음을 둔다는 것은 자기 희생, 이웃을 섬기는 마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분처럼 서귀포 시민으로서, 서귀포 복자 성당 교우로서 강정미사에 긴 시간 거의 매일 참석한다는 것은 강정미사 천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이 없었더라면 강정 천막미사가 얼마나 허전하고 초라했을 것인가. 존경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분이 신자인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켰다는 것이 아닐까!  

오두희 (강정 지킴이, 평화바람 활동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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