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소식 - 오두희]

뜨거웠던 폭염과 폭우의 어려움 속에서 진행됐던 5박6일의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무사히 끝났다. 휴가철을 맞아 육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정을 방문했다. 한동안 사람들로 북적대던 강정마을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끄럽게 매미가 울어 대는 미사천막에서 강정 생명평화미사지킴이 박미도 씨(유스티나)를 만났다.

그는 소리 없이 미사천막에 와서 미사를 봉헌하고 소리 없이 떠난다. 그런 그를 본 것이 몇 해 전인데, 지금까지도 그렇다.

별로 말도 없다. 옆에 가까이 갈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도 작아지고, 발소리도 조용조용해진다. 간혹 독서를 읽으면 특유의 차분한 저음이 울려, 성인들의 애절한 마음이 전해 오는 것 같다.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이 천막미사에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쉽사리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근조근 말을 한다.

▲ 강정 생명평화미사 지킴이 박미도 씨. (사진 제공 = 오두희)

“2014년 여름이요. 올레7코스를 걷다가 마침 물길이 트여 서건도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놀랍게 섬 뒤편 어디선가 성가 소리가 들렸어요.
그 울림이 신비로웠고 야외미사전례 중임을 알아듣고는 발걸음을 서둘렀지요. 작은 섬이라 소리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았는데 아무도 안 보였어요.
서둘러 섬을 빠져나와 해안가 건너편 성가소리를 좇아 찾아온 곳이 이곳이었어요.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미사는 끝났지만~”

그땐 정말 천국의 노래소리처럼 들렸다는 듯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오는 제게 강정다리 위에서 한 자매가 산야초 넣은 얼음물 한 잔을 주었어요. 지금은 알죠. 지킴이였다는 걸.
강정다리부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노란 깃발과 현수막, 어수선한 이곳 사람들 분위기가 궁금하여 이것저것을 물어보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지요.”라며 긴 시간 속에서 벌어졌던 그 많은 아픔과 놀람, 감격의 순간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 듯 큰 눈망울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저는 지킴이들이 하는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생명평화를 위한 지향을 두고 미사참례는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이곳 11시 미사에 맞춰 오려면 바쁘게 아침 일을 마치고 와야 하거든요. 그날 할 일이 많아 못 오게 되면 할 수 없지만. 
게스트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은 중국 관광객이 줄어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처지가 되었다”며 생활에 대한 불안정보다 행여 이곳 미사에 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길까 봐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특별히 생각 나는 미사가 있나요? 
 
“여기 강정 길거리천막미사 참례가 저에겐 행복이고 감사입니다.
예전엔 종종 미사를 하면 천막에 주례사제와 저밖에 없었어요. 대부분의 미사 참석자 분들이 공사장 정문 쪽에 있었거든요.
혼자서 독서,전례, 초를 들고 성체분배 주례신부를 따라 공사장 정문 앞까지 가는 복사 일까지 하는 날이 많았지요.”

그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 저지 투쟁이 한창일 때 수십 명의 경찰과 용역, 주민들이 지켜보고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순간에 초를 들고 앞장서 성체분배 신부와 함께 공사장 정문으로 온다는 것은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믿음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듯 매 순간들이 쌓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강정 생명평화미사가 자신의 생활에 중심이 되어 버렸다.
 
"본당은 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 천막미사에서는 제 한 자리 메꾸는 것, 그 일이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깝게 지내는 분들은 이런 저를 보고 '아직도 미사를 하고 있나요?' '해군기지가 다 지어지지 않았느냐?'고 묻고는 하시는데, 이곳은 생명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모여 미사를 시작으로 뜻을 나누고 연대하는 현장입니다. 만약 제가 이곳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저도 그들처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라며 이곳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 박미도 씨는 지금까지 강정 생명평화미사를 지켜 왔다. (사진 제공 = 오두희)

변화된 강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해군기지 완공 이후 이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지쳐 보이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며 안타까워 했다. "매일매일 현장에서 반평화적인 상황과 대면하고 있으니 얼마나 몸과 마음이 힘들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요즘은 그들의 마음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며 지킴이들을 걱정했다. 오래 버티고 기쁘게 일하려면 “지킴이들도 자신의 평화를 위해 시간을 내어 기도하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권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니 지치지 말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많은 말이 필요 없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든든하고 편안한 사람이 있다. 많은 덕을 쌓고 친절해서가 아니다.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흔들리면서도 모진 상황을 함께 견디며 곁에 있어 준 그 믿음 때문이다.

길지 않는 시간 박미도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마음도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강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외로운 그 길을 조용히 우리와 함께 걸어와 준 벗을 만나서가 아닐까.

오두희 (강정 지킴이, 평화바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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