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영화 '언노운 걸'

▲ '언노운 걸',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2017. (포스터 제공 = 오드)
한 소녀의 죽음을 뒤쫓는 의사가 있다. 어느 밤 의사 제니는 진료시간이 끝난 뒤 울리는 벨에 응답하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정확한 직무와 책임을 인턴에게 가르치던 중이었고 급한 환자라면 벨을 두 번 울릴 거라 예상했지만 벨은 한 번 더 울리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벨은 위기에 빠진 소녀가 도움을 요청하던 벨이었다. 제니는 그때 벨에 응답했다면 소녀가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신원 미상인 소녀의 이름이라도 찾아 주기 위해 소녀의 죽음을 홀로 추적한다.

제니가 소녀를 죽인 건 아니지만 달리 행동했다면 소녀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물론 제니는 자신의 행위가 불러일으킬 결과를 알지 못했다. 제니가 악행을 저지르거나 선행을 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제니는 결코 사악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환자를 충실하게 진료하고 환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의사였다. 한순간의 행위가 너무나 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은 이렇듯 첨예한 윤리적 질문과 갈등에 처한 인간의 행위를 탐색해 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화를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늘 마음 한가운데에 간직하고 있다. 제니의 죄책감이 지나치고 억지스럽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수긍하기 힘들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우리의 구체적 행위와는 인과관계가 없는 죽음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갖고 살아오지 않았나. 죽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제니의 말처럼 “끝난 게 아니니 이렇게 괴로운 거”다.

소녀의 죽음 이후 제니의 모든 행동 동기는 죄책감이다. 편안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혹시 사건 현장의 실마리를 발견할까 병원으로 살림살이를 옮긴 것도, 탐문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로 겪는 생생한 물리적 폭력에 굴하지 않을 수 있던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그는 가기로 예정되었던 큰 병원의 유망한 직책을 버리며 가난한 이들의 주치의로 살 것을 결심하기까지 한다.

한 인간의 삶이 어떠한 분절점에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우 계기는 다양할 텐데 제니에게선 그 계기가 어떤 열망이나 의욕이 아닌 죄책감이라는 점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풍성히 내린다’는 말은 이런 경우 아닐까. 그 말이 쉽게 남발하는 면죄부처럼 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되지 않으려면.

▲ '언노운 걸'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오드)

영화 내내 제니는 환자들 집의 문을 두드린다. 병원에 찾아오기 힘든 이들을 방문 진료하며 고통을 덜어 준다. 환자들의 육체적 고통은 소녀의 죽음과 관련한 크고 작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제니는 소녀의 죽음을 탐문하며 환자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과 죄책감을 드러내 놓게 한다. 그로써 환자들은 육체의 치유와 아울러 죄를 고백하고 참회할 계기를 갖는다. 예수의 많은 기적들이 바로 아픈 이들을 고쳐 주는 것이었듯. 

제니가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들은 다르덴 형제 감독의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여성 주인공이 동료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 인상을 맞바꾸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설득하던 장면을 기억하게 한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영화의 윤리적 갈등 역시 개인의 상황이 아닌 사회구조적 악과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고 영화는 이를 들여다보게 한다. 제니가 밝힌 소녀의 죽음은 성매매, 불법 체류, 가난, 폭력이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인 흑인 여성에게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소녀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을 밝혔다고 해서 제니의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의 가방을 받아 들고 그를 부축해 진료실로 걸어 들어가는 제니의 마지막 뒷모습은 제니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보여 준다. 저 길을 함께 따라가지 않겠냐고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 '언노운 걸'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오드)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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