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으로 '피젯 스피너'(Fidget Spinner)가 있다. 세 개의 날개를 가진 작은 바람개비 모양에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손가락 끝에 올려 놓고 균형을 잡아 팽이처럼 돌리는 장난감이다. 1997년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으며 2017년에는 사무실에서 유행할 키덜트 장난감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팽이처럼 손가락 끝에서 돌리고 균형을 맞추어 오래 돌아가게 하는 게 꽤 어려운 일이다. 이런 행동이 불안과 스트레스 해소, 집중력 향상, 주의력 상승 등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심리학자들은 별 의미나 치료 효과가 있지는 않다고 한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 장난감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설도 있지만 특별히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보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몇 년 전부터는 '핑거 보드'(finger board)라는 장난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핑거 보드는 이름 그대로 손으로 갖고 놀 만큼 아주 작은 스케이트보드다. 스케이트보드처럼 여러 기술을 구사하는 핑거 보드 세계 챔피언 경주도 있다고 한다.

피젯 스피너가 키덜트 장난감으로 선정되고 유튜브에 핑거 보드를 하는 성인들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것처럼 외국에서 이 장난감들은 주로 어른용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린이들이 갖고 놀기는 하지만 어른이 주 이용자인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보다는 압도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동네 문구점 어디서건 피젯 스피너와 핑거 보드를 구할 수 있고 초등학생이라면 저마다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왼쪽) 핑거 보드, (오른쪽) 피젯 스피너.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Maxpixel)

이 손가락 장난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어린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손가락 장난도 좋아하지만 외국에서는 어린이보다는 어른용 장난감인데 말이다. 그저 짐작할 뿐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외국 아이들보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8시부터 11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말하면 외국인들은 ‘와, 그렇게 조금만 공부하니 좋겠다’고 한단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15시간을 공부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자연에서 뛰어놀며 생명과 교감하고 여러 가지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발견하며 단련해야 할 나이에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진짜 스케이트 보드를 타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고 상황도 안 되니 핑거 보드를 굴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어린이들은 미니어처의 세계를 좋아하고 친숙해 한다. '엄지공주', '구두 요정', '마루 및 바로우어즈',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 등 여러 전래동화와 현대동화에는 작은 요정과 소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인보다 몸집이 작은 어린이들이 작은 존재와 사물들에 더 친밀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 듯하다.

초등학생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대유행인 미니어처 공예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색깔 찰흙과 도구들로 손톱 만한 물건들을 만드는 놀이는 소꿉장난과 다를 바 없다. 성인들이 요리하는 것과 똑같이 아주 작은 조리도구와 음식 재료로 손톱 만한 요리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피젯 스피너와 핑거 보드 등 핸드 토이와 미니어처 공예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상에 앉아 핑거 보드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엉덩방아도 찧고 무릎에 상처도 나는 경험을 해 보라 알려 주고 싶다. 현대의 놀이와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전근대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와 함께 핑거 보드를 타고, 바람개비와 함께 피젯 스피너를 돌리고, 다채롭고 풍성한 재료들을 감각하며 진짜 요리도 해 보는 게 더 소중하고 행복한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버릴 수가 없다.

▲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엉덩방아도 찧고 무릎에 상처도 나는 경험을 해 보라 알려 주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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